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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아끼지 말고 먹어라”…김신영, 14년 독한 강박 내려놓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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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진 기자 sjk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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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자 한 봉지로 끼니 때우며 자신을 옥죄던 제자에게 눈감기 전 “쫓기지 마라” 남긴 스승 전유성의 마지막 유언

어린 시절 컨테이너 박스에서 잠을 청해야 했던 소녀가 있었다. 부모와 떨어져 친척 집을 전전하며 눈칫밥을 먹던 아이는 하루에 과자 한 봉지로 끼니를 때우며 결핍을 견뎌냈다.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된 이 발자취는 훗날 대한민국 예능계의 독보적인 자리에 오르고 거장 감독의 영화를 통해 칸 국제영화제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는 결과로 이어진다. 방송인 김신영의 이야기다. 최근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그녀는 과거의 모진 풍파를 지나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담담한 일상을 공개하며 대중의 시선을 다시금 사로잡았다. 화려한 조명 뒤에는 끊임없는 고초를 오직 성실함으로 돌파해 온 치열한 여정이 있었다. 

거장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을 통해 배우로서의 잠재력을 증명해낸 방송인 김신영. 세계일보 자료사진
거장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을 통해 배우로서의 잠재력을 증명해낸 방송인 김신영. 세계일보 자료사진

김신영의 유년 시절은 생존이라는 단어와 직결되어 있었다.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면서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그녀는 오빠와 함께 컨테이너 박스에서 생활해야 했다. 비가 오면 물이 새고 겨울에는 살을 파고드는 추위와 싸워야 했던 공간이었다. 가난은 학창 시절 내내 그녀를 따라다녔다. 급식비를 내지 못해 매번 선생님의 눈치를 봐야 했고 돈이 없어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날이 허다했다. 당시 그녀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일은 매일 일기를 쓰며 현실의 고통을 잊는 것뿐이었다.

 

이러한 가난은 그녀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지만 한편으로는 세상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관찰력과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한 생활력을 길러주는 계기가 되었다. 개그맨이 되겠다는 일념 하나로 상경했을 때도 그녀의 손에 쥔 것은 단돈 몇 만원이 전부였다. 대학로 극단 시절에는 차비가 없어 몇 시간을 걸어 다녔고 선배들이 남긴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하면서도 무대 위에서 관객을 웃기는 순간만을 바라보며 버텨냈다.

2003년 데뷔 당시, 특유의 관찰력으로 전 국민을 사로잡았던 ‘행님아’ 시절의 김신영.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
2003년 데뷔 당시, 특유의 관찰력으로 전 국민을 사로잡았던 ‘행님아’ 시절의 김신영.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

2003년 SBS 개그 콘테스트를 통해 데뷔한 그녀는 ‘웃음을 찾는 사람들’에서 천재적인 연기력과 디테일한 묘사를 선보이며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행님아’라는 코너로 전 국민적인 사랑을 받으며 예능 프로그램 메인 MC 자리를 꿰찼고 라디오 DJ로서도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했다. 그러나 돈과 명예가 쏟아지며 마침내 가난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한 순간 몸과 마음은 동시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쉴 틈 없이 돌아가는 스케줄과 대중의 시선에 대한 압박은 결국 공황장애라는 고초로 찾아왔다. 무대 위에 서면 숨이 쉬어지지 않았고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공포가 매일 그녀를 덮쳤다. 라디오 생방송을 하던 중 대본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공황 발작이 심하게 와 방송을 중단해야 했던 순간은 그녀의 커리어에서 가장 큰 위기였다. 은퇴를 고민할 만큼 깊은 절망에 빠졌으나 김신영은 도망치는 대신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자신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인정하고 전문 치료를 병행하며 방송 분량을 줄이더라도 철저하게 자신을 보호하는 행동 양식을 다듬어 나갔다.

 

그녀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축은 체중 관리다. 데뷔 초기 78kg에 육박하는 체구는 그녀의 강력한 캐릭터이자 무기였다. 하지만 병원에서 “이대로 살면 10년 뒤에 위험하다”는 경고를 들은 후 그녀는 생존을 위한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캐릭터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주변의 만류와 두려움을 뒤로한 채 오직 살기 위해 독하게 식단을 조절하고 운동에 매진했다. 결과는 34kg 감량이었다. 78kg이었던 그녀는 44kg까지 몸무게를 줄이며 건강을 위한 몸을 만들어냈다.

 

그녀는 철저한 자기 관리를 통해 지난 14년 동안 감량한 체중을 유지하는 ‘유지어터’의 대명사로 불렸다. 하지만 최근 그녀에게 다시 체중이 증가하는 요요가 찾아왔고 대중은 “대체 왜”라는 물음을 던졌다. 이에 대해 김신영은 최근 방송을 통해 혹독한 식단 강박을 내려놓게 된 결정적인 계기를 고백했다.

무려 34kg을 감량한 뒤 철저한 자기 관리를 통해 ‘유지어터’의 대명사로 불리던 시절. VOGUE 제공
무려 34kg을 감량한 뒤 철저한 자기 관리를 통해 ‘유지어터’의 대명사로 불리던 시절. VOGUE 제공

그 변화의 중심에는 스승이었던 故 전유성이 있었다. 김신영은 전유성의 임종을 지킨 제자였다. 당시 투병 중이던 전유성은 마지막 순간 제자에게 먹먹한 한마디를 남겼다. “신영아, 짬뽕이 너무 먹고 싶은데 내가 지금 못 먹지 않냐. 너는 아끼지 말고 맛있게 먹어라. 먹고 싶은 거 먹고살아라.” 14년 동안 스승의 앞에서조차 “지금은 안 된다”, “빵은 못 먹는다”라며 철저하게 자신을 옥죄던 제자의 고생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남긴 스승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스승을 떠나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김신영은 지난 14년의 세월을 돌아보았다고 한다. 정해진 시간 외에는 음식을 입에 대지 않으며 참고 또 참았던 시간들이 과연 합당한 선택이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찾아왔다. 항상 “네가 행복해야 한다, 누구에게 쫓기지 마라, 어차피 끝은 같다”고 말했던 스승의 철학은 그녀의 행보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임종 직전 제자에게 “아끼지 말고 먹어라”라는 말을 남기며 김신영의 인식을 바꿔놓은 스승 전유성. 김신영 SNS
임종 직전 제자에게 “아끼지 말고 먹어라”라는 말을 남기며 김신영의 인식을 바꿔놓은 스승 전유성. 김신영 SNS

이제 김신영은 요요를 실패나 자기 관리의 부재로 규정하지 않는다. 완벽한 몸매를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살이 찌는 모습 역시 자신이 감당하고 수용해야 할 단면으로 받아들였다. 마른 모습도 뚱뚱한 모습도 결국 모두 자신이라는 사실을 직시한 것이다. 극단적인 자기 관리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비로소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게 된 그녀의 화법은 타인의 시선에 맞춰 스스로를 가두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묵직한 울림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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