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 취재에 대한 트라우마가 깊다. 2022년 대구 변호사 사무실 방화 사건 때의 일이었다. 기자는 장례식장에 머물며 유족 취재를 전담했다. 속보 경쟁 속에 유족에게 고인에 대한 기억을 반복해 물어야 했다. 자괴감이 밀려왔다. 그날 자정, 다시 장례식장을 찾아 유족에게 사과했다. 누군가의 죽음을 책임 있게 다뤘는지 스스로 답할 수 없었다.
피하고 싶었던 주제를 4년 만에 다시 마주했다. 자살 유족 취재였다. ‘자살예방법, 국가의 책무’ 시리즈를 취재하며 이번에도 유족에게 가장 아픈 기억을 깊숙이 물어야 했다.
2004년 제정돼 세 차례 개정된 자살예방 보도준칙은 자살 사건을 가급적 보도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자살 보도가 정신적으로 취약한 사람의 심리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자살 방법을 보도하지 않는다’, ‘고인의 인격과 유족의 사생활을 존중한다’. 이런 권고는 마땅하다. 그러나 기자는 준칙의 경계를 거듭 마주해야 했다.
유족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많았지만 보도준칙은 그 말을 막아섰다. 준칙을 모두 수용하려 할수록 자살유발정보 유통의 위험성과 유족의 상처를 말하려던 기사의 본질은 흐려졌다. 자살에 대한 의도적인 침묵이 날것의 현실을 오랫동안 가렸다.
세계보건기구(WHO)가 2023년 펴낸 자살예방을 위한 미디어 가이드라인은 보도 제한에 초점을 둔 한국과 달리 ‘어떻게 책임 있게 보도할 것인가’를 묻는다. 위기를 극복한 이들의 회복 경험과 도움 요청 경로를 공중보건의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다루는 것이다.
WHO는 한국 언론이 자살 보도에 일률적으로 닫아 두는 댓글창도, 언론사의 관리 체계가 갖춰진다면 안전한 공론장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한국 언론은 보도준칙에 지나치게 얽매여 자살 문제에 대한 정책적 논의마저 축소해온 것인지도 모른다. 최소한의 준칙을 지키되 문제를 정면으로 드러내야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
자살유족 자조모임 자작나무 손지연 대표는 13년 전 스물셋 장남 선상우씨를 잃었다. 기자와의 두 번째 인터뷰가 끝나던 날 손 대표는 “오랜만에 속 시원히 이야기를 했다”고 말했다. 그가 풀어놓은 말들은 보도준칙의 경계를 자주 넘었지만, 한층 후련해 보였다. 돌아서는 손 대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기자도 비로소 4년 전의 트라우마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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