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워싱턴처럼 큰 인물 되길” 뜻에서
아들 이름에 ‘조지’ 붙인 것으로 유명해
변호사 자격 딴 뒤 1960년대 정계 진출
1973∼1986년 하와이 주지사 3선 달성
미국 역사상 아시아계 주민으로 처음 주지사를 지낸 조지 아리요시 전 하와이주(州) 주지사가 10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20일(현지시간) AP 통신에 따르면 조시 그린 현 하와이 주지사(민주당)는 이날 성명에서 “1973년부터 1986년까지 우리 주를 이끌었던 민주당 소속 아리요시 전 주지사께서 전날(19일) 밤 호놀룰루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운명했다”고 밝혔다. 그린은 아리요시를 향해 “겸손과 규율 그리고 책임감으로 평생을 하와이에 바쳤다”며 “선구자이자 공직자로서 고인의 유산은 대대로 지속될 것”이라고 찬사를 바쳤다.
아리요시는 1926년 3월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둘 다 일본에서 하와이로 건너간 이민자였다. 특히 부친 료조 아리요시는 후쿠오카 출신으로 원래는 스모 선수였다. 하와이 이민 후 청소부로 일하며 어렵게 가족을 부양하다가 나중에는 세탁소 주인으로 자립에 성공했다.
아들 아리요시의 이름 ‘조지’(George)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이자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 장군의 이름을 따 지었다. 장차 미국을 빛낼 위대한 인물이 되었으면 하는 부모의 간절한 바람이 담겼다.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아리요시는 훗날 자서전에서 “우리 집안에 돈이 없다는 점을 장애로 인식하진 않았다”며 “어떻게 하면 로스쿨에 진학해 변호사가 될 수 있을까 고심했다”고 털어놨다.
1944년 아리요시가 고교를 졸업했을 때 미국이 참전한 제2차 세계대전은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었다. 미 육군에 입대한 아리요시는 정보 병과를 받고 정보 부대에 배치돼 일본어 통역 임무를 수행했다. 2차대전이 일본의 항복으로 끝나고 군복을 벗은 아리요시는 제대 군인들에게 정부가 학자금을 지원하는 법률 덕분에 하와이 대학교에 진학했다. 이후 미 본토의 미시간 주립대로 편입한 그는 1949년 역사학 및 정치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 1952년에는 미시간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그토록 꿈꿨던 법조인이 되었다.
하와이에서 변호사로 개업한 아리요시는 곧 정치에 뛰어들었다. 그는 1960년대 민주당 소속의 주의회 상원의원으로 활동하며 자신과 같은 소수 민족의 권익을 옹호하는 일에 앞장섰다. 1970년 12월 아리요시는 마침내 하와지주 부지사로 선출됐다. 그리고 암에 걸린 주지사가 자리에서 물러난 1973년부터 1974년 12월까지는 주지사 직무대행을 맡았다. 1974년 선거를 거쳐 정식 주지사가 된 뒤로도 1978년, 1982년 잇따라 연임에 성공해 1986년 12월까지 3선 주지사를 지냈다.
부모가 둘 다 일본계 이민자인 만큼 아리요시는 어려서 일본어를 배웠고, ‘아리요시 료이치’(有吉良一 )라는 일본식 이름도 있었다. 훗날 정치인으로 성공한 뒤 그는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 그리고 일본인 대상 강연에서 유창한 일본어 실력을 발휘해 큰 화제가 됐다. 유족으로 1955년 결혼한 부인과 세 자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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