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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보낸 시간만큼… 커져 버린 마음의 구멍, 익숙해진 어른의 빈자리 [탐사기획-사각의 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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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보도2팀=백준무·이예림·최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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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방임 피해자 생태도 분석

20세 수빈
이혼 이후 연락 끊어버린 아빠
‘별거’ 엄마와는 가끔씩 연락만
떠안은 두 동생 향해 일방 돌봄

19세 다은
경제적 착취 아빠 볼 생각 없어
나이차 큰 오빠·언니 교류 안 해
반려동물 키우면서 ‘위안’ 받아

16세 민준
중학생 때부터 ‘혼자살기’ 선택
전문가 상담 전화 받아본 적 없어

평소 교류가 없던 사촌 언니로부터 연락이 온 것은 지난해 어느 날이다. “이벤트에 당첨됐어. 향수와 책을 공짜로 준대.” ‘체험 단체’에 같이 가자는 말에 수빈(가명·20)은 의심 없이 따라갔다. 단체는 수빈에게 ‘심리 치료’를 해준다며 매주 나오라고 권했다. 엄마의 아동방임 혐의 재판이 막 끝난 시점이었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도 포기했던 수빈의 일상은 공허했다.

 

만남 횟수는 갈수록 늘어났다. 일주일에 한 번이 어느새 월·수·금요일 세 번이 됐다. 수빈에게는 소속감이 생겼다. 4개월 가까이 지난 뒤 같은 학원에 다니는 언니에게 “요즘에 이런 곳을 다니고 있다. 너무 좋은 것 같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언니는 화들짝 놀라며 사이비 종교라고 말했다. 수빈은 그날 이후 그곳에 나가지 않았다.

 

수빈의 경험은 사회적 고립의 틈새에 유사 공동체가 파고드는 전형적인 사례다. 금방 빠져나올 수 있었던 수빈은 그나마 운이 좋았다. 청소년 방임 피해는 평생에 걸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성인이 된 뒤에도 사회적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거나, 차라리 고립되는 쪽을 택하기도 했다.

 

20일 세계일보가 수빈을 비롯해 과거 방임 피해 경험이 있는 다은(가명·19)의 사회적 관계망을 각각 생태도로 시각화한 결과에서도 이들의 정서적 공백이 뚜렷이 드러난다.

 

생태도는 한 사람을 중심에 놓고 가족과 지역사회 등 외부와의 관계를 시각화하는 사회복지 분석 도구다. 수빈과 다은 두 사람의 생태도에서는 부모와의 연결 관계가 약하거나 갈등에 놓여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일반적으로 청소년들이 함께 거주하는 부모로부터 강한 지지를 받으며 안정적으로 연결됐다는 것과 차이가 있다.

 

수빈의 경우 이혼 후 연락이 두절된 아빠와는 완전히 단절된 관계다. 별도로 거주하는 엄마와는 약한 연결 관계로 평가할 수 있다. 수빈은 엄마가 자신을 귀찮아한다고 느꼈다. “정신과에서 진료를 받으려면 부모님 동의가 있어야 돼서 (엄마가 진료 사실을) 알고 계셨다. 그런 데 다니는 걸 싫어하셨다. 몸이 아픈 자기도 잘 버티고 있는데, 너는 뭐 그거 가지고 힘드냐 식으로 말하셨다”고 떠올렸다. 엄마도 수빈이 자신을 반기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우리 큰애가 (집에) 오지 말라고 그래요. 잔소리한다고. ‘거기 있어, 엄마.’”

 

다은 역시 마찬가지다.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 현재 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아빠는 수감 이전에도 다은을 경제적으로 착취했다. 아빠와의 관계는 파탄에 이르렀다. 아빠의 가정 폭력과 이를 수차례 경찰에 신고하는 과정에서 두 사람은 감정적으로 크게 어긋났다. 아빠가 출소한 뒤에 연락이 오더라도 다은은 다시 만날 생각이 없다고 했다. 다은은 “(아빠가) 보자고 하면 안 보겠죠. 근데 전화가 오면 무슨 말 하는지 들어보긴 할 것 같은데”라고 말했다.

 

다른 가족들과의 관계 또한 위태롭다. 수빈은 함께 거주하는 초등학생 동생 수현·수아의 보호자 역할을 하고 있다. 수빈의 생태도에서 가장 강하게 연결된 관계다. “동생들한텐, 제가 좀 더 엄마 같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돌봄은 일방적이다. 수빈을 챙겨주는 사람은 없다.

 

다은은 스무살 가까이 차이 나는 언니, 오빠와 교류가 거의 없다. 가끔 오빠와 통화를 할 때가 있지만, 실질적인 도움을 받지는 못한다. “잘 몰라요. 연락도 아예 안 하고, 어머니 돌아가시기 전에도 딱히 막 연락이 있는 편도 아니었고, 자기들 급할 때만 연락하고.” 수빈과 다은이 반려동물로부터 정서적 지지를 얻고 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동물은 배신하지 않는다. 수빈에게는 강아지가, 다은에게는 고양이가 있다.

 

두 사람의 생태도에서 공적 연결망의 부재도 두드러진다. 일반적으로 청소년들은 부모와 학교라는 두 축이 탄탄하면 공적 기관의 도움 없이도 성장 과정을 버텨낼 수 있다. 그러나 방임 피해 청소년에게는 그 두 축이 모두 비어 있다. 가장 절실한 자리에 공적 지원이 없다.

 

수빈은 “초등학교 때부터 괴롭힘을 당했는데, 중학교에서도 2학년 때부터 당하기 시작해서 그것 때문에 제가 좀 힘들었어요. 선생님들은 위클래스(교내 상담센터)에 보내주는 정도였어요. 제가 괴롭힘 때문에 학교에 잘 못 나가다 보니까”라고 말했다. 대학 진학을 택하지 않은 수빈의 경우 고등학교 졸업을 기점으로 지역사회와의 연결도 거의 사라진 상태다.

 

다은은 과거 아동보호전문기관과 청소년 안전망을 이용한 경험이 있지만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돌이켰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방임 등 아동 학대가 일어난 가정을 대상으로 상담과 치료, 사후 관리, 예방 교육 등을 전담하는 곳이다. “담당 선생님이 바뀔 때마다 처음부터 얘기를 해야 돼요. 기억하기로는 한 서너 번 바뀐 것 같은데. 그만두시거나 해서. 인수인계는 하신 건지 대략적인 건 아시는 것 같은데. 그래서 연락이 오면 연락을 안 받고 그랬어요.”

 

위기청소년에 대해 상담과 보호 등 맞춤형 서비스를 지원하는 청소년 안전망도 나쁜 기억만 남겼다. 다은은 “제가 우울증 걸린 것도 아니고 엄마도 이미 다 망가졌는데, 지금 와서 심리 상담을 받아서 뭐하나 (싶었다)”라고 회상했다. “그분들한테 전화가 오면 얘기를 하는 것도 스트레스받고, 좀 싸가지 없게 얘기를 했어요. 그분들도 ‘네가 더 어렸으면 보육원 같은 데로 보냈을 것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죠. 중학생 때였는데 그게 너무 기억에 남는 거예요. 이런 말을 하는 의도가 이해도 안 가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고, 그래서 그런 데를 더 싫어하는 것 같아요.”

 

기초생활수급을 제외하면 이들에게 별다른 국가의 개입은 없다. 아동복지법은 만 18세 미만을 아동으로 규정하기 때문에 성인이 되는 순간 각종 지원체계에서 벗어난다. 자립수당 월 50만원, 자립정착금 1000만원 등 자립준비청년 지원은 아동복지시설 및 가정위탁 보호종료 아동을 대상으로 한다. 수빈처럼 가정 내 방임을 당했지만 시설에 입소하지 않은 경우, 다은처럼 보호자와 함께 살았지만 사실상 방치된 경우는 이 체계 안에 없다.

 

수많은 불행 중에도 가끔 다행인 날들이 있었다. 수빈이 사이비 종교 단체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지인의 한마디 덕분이었다. 다은도 마찬가지다. 원룸을 알아봐 준 자원봉사자의 도움이 없었다면 다은은 지금도 전기와 가스가 끊긴 아파트에서 지냈을 것이다. 비슷한 가정환경을 공유한 친구 두 명을 만난 것도 행운이었다. “그들 2명이 저랑 가정사가 비슷한 면이 있어서. 학생 시절을 같이 버텨온 그런 느낌이 있어서.” 아빠의 방임을 신고하고, 장학금을 연계해주고, 고양이 수술비를 빌려준 고등학교 담임교사도 다은에겐 은인이었다.

수빈과 다은 모두 우연히 곁에 있던 사람 덕에 최악의 상황에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부모의 방임으로 중학생 때부터 혼자 산 고등학교 1학년 민준(가명·16)에게는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천운이다. 지난해 두 번째 시설을 ‘탈출’하듯 나와 지금껏 혼자 지내는 민준의 생태도에는 어른의 자리가 비어 있다.

 

청소년 안전망 상담 전화는 받아본 적도 없다. 민준의 시간이 수빈의 반지하와 다은의 원룸에서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수빈과 다은이 만난 우연이 민준에게 닿지 않으면 민준의 처지는 두 사람의 현재보다 더 나빠질 수 있다.

 

방임은 세상과 연결되는 방식 자체를 망가뜨린다. 방임의 기억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성장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기도 한다. 청소·빨래 같은 기본적인 생활 습관에서 사회적 관계에 이르기까지 성인기에도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주연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청소년기까지 계속해서 방임 등 학대를 받았을 때 그 결과로 성인기까지 이어지는 어려움들이 있다. 사회적 관계에서의 고립이 대표적”이라며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해 자해나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기사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탐사보도2팀=백준무·이예림·최우석 기자

사진: 유희태 기자, 편집: 이대용 기자

미술: 손성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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