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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화 앞둔 ‘ESG 공시’… 대상 기업·적용 시점 갑론을박 [심층기획-금융위 로드맵 초안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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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빈 기자 yb@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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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 배출량·노동 문제 관리 등
비재무적인 정보 공시에 포함
투자자 합리적 판단 활용 목적
국내시장 적정 평가 기반 마련도

민주당, 당정협의회서 초안 질타
“자산 30조 이상 대상, 너무 적어”
거래소 아닌 ‘법정 공시’ 강조도
국민연금은 조기 도입 압박나서

2022년 태풍 ‘힌남노’가 상륙했을 당시 포스코 포항제철소가 침수되면서 약 3개월간 조업이 중단됐다. 이 여파로 포스코는 생산 차질은 물론 실적 부담까지 떠안았고, 이는 기업이 직면할 수 있는 대표적 기후리스크 사례로 거론된다.

 

포스코가 노출된 기후리스크는 외국인 주식 보유율에서도 드러난다. 철강은 대표적인 탄소 다배출 산업이다. 20일 한국거래소 등에 따르면 포스코그룹 지주사인 포스코홀딩스의 최근 5년간 외국인 지분율은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2021∼2022년 50%를 웃돌던 수준에서 2023년 이후 20%대로 급감했다. 2023년 주가 상승에 따른 외국인 비중 감소를 감안해도 지난 17일 기준 외국인 보유율은 30.17%에 그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국내 한 자산운용사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담당자는 “포스코그룹은 철강과 이차전지 소재가 대표 사업인데, 외국인·기관 투자자의 친환경 철강에 대한 기대감에 포스코가 부응하지 못했다”며 “하락한 기대가 재무제표상 외국인 지분 감소로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후리스크에 대응을 잘 못해 외국인 투자자가 대거 이탈한 사례”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사례가 반복될수록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재무정보만으로는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 기업 정보를 비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정부도 국내 자본시장의 오랜 과제인 체질 개선 일환으로 공시제도를 손보려는 움직임에 돌입했다. 지속가능성 공시 또는 ESG 공시로 불리는 새 제도를 놓고 금융위원회는 이달 중으로 로드맵 최종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국내 시장의 저평가를 막기 위해서라도 국제적 흐름에 부합하는 로드맵이 나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진통 끝 금융위 초안… 민주당은 비판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 정무위원회·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일부 의원과 금융위원회는 지난 7일 당정협의회를 열었다. 당정협의회 안건은 금융위원회가 지난 2월 발표한 지속가능성 공시 로드맵 초안으로 이 자리에 참석한 민주당 의원 10여명은 금융위 초안을 강하게 질타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공시 대상 범위가 좁고, 법정 공시가 필요하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강조했다. 정무위 민병덕 의원과 산자위 박지혜 의원은 공통적으로 “첫 공시 대상 기업이 연결재무자산 30조원 이상이면 너무 적고, 거래소 공시가 아닌 법정 공시로 설계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고 말했다. 박지혜 의원은 “산업통상부와 중소벤처기업부는 기업 부담을 많이 말했다는데 시작을 지연하는 것만이 기업에 긍정적인 전략은 아니라는 얘기도 나왔다”고 전했다. 기후노동위 박홍배 의원은 “대전에서 현대차·기아 협력사에 화재가 나면서 기아차 라인이 멈춰서는 일이 생겼다”며 “지속가능성 공시 로드맵에 협력사 노동 구조와 안전 문제도 신경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당 정책위원회 사회수석부의장이자 정무위 소속인 박상혁 의원은 지속가능성 공시 시점과 공시 방식, 대상 등을 놓고 금융위 초안이 부실하다고 지적했다. 지속가능성 공시가 지나치게 기후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점도 비판 대상이 됐다.

 

각 기업은 결산 후 90일 내로 지난해 재무상황과 사업 내용, 경영 실적 등을 담은 사업보고서를 공시하게 돼 있다. 매출과 영업이익으로 대표되는 경영 성과를 수치로 보여줘 투자자가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자료를 제공하는 데 목적이 있다.

 

금융위가 초안을 내놓은 지속가능성 공시는 이처럼 수치만으로는 모두 설명하기 어려운 ESG 지표까지 공시 대상에 포함해 기업 가치와 주가에 반영되도록 하겠다는 제도다. 대표적인 공시 대상으로는 탄소배출량을 비롯해 태풍·폭염 등 기후 관련 리스크,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 등 기후변화 대응 방침과 중대재해처벌법 등에 저촉될 수 있는 노동문제 관리 등이 포함될 전망이다.

 

현재도 재무정보 외에 탄소배출량 등 기초적인 비재무적 정보를 공개하는 기업이 많지만, 자율 공시에 기대고 있다. 정준혁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업이 재무정보는 하나의 회계기준을 가지고 사업보고서를 통해 재무제표라는 일종의 성적표를 공시한다”며 “반면에 비재무정보는 그동안 기업이 각자 질문을 짜고 그에 따른 답을 해 하나의 정답이 있기 어려웠다”고 비유했다. 정 교수는 “지속가능성 공시는 비재무정보도 공통된 질문에 한 가지 기준을 따라 평가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지속가능성 공시에 적극적인 국민연금

 

국내 지속가능성 공시제도 도입을 앞두고 가장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기관은 국민연금이다. 금융위 초안은 2028년(2027회계연도)부터 연결재무제표상 자산 30조원 이상 기업부터 비재무지표를 적용한 이후 적용대상을 단계적으로 넓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초안대로면 첫해 공시 대상은 58개 기업에 그친다.

 

국민연금은 이보다 더 이른 시점에 더 넓은 범위를 포괄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시행 시기를 1년 앞당겨 내년부터 곧바로 공시를 시작하고, 공시 의무는 연결자산 총액 2조원 이상인 코스피 전체 상장사로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또 ‘지배구조 보고서’, ‘밸류업 보고서’ 등의 이름으로 나가는 거래소 공시가 아니라 ‘사업보고서’ 형태의 법정 공시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위는 국민연금 요구대로 내년부터 지속가능성 공시를 도입하기는 물리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단기 실적보다 초장기 투자를 실시하며 기업 존속과 시장 전체 안정성이 중요한 연기금이 기후·노동·공급망 같은 비재무 리스크를 비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요구하는 모습은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다. 세계 최대 연기금인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지분을 보유한 전 세계 약 9000개 포트폴리오 기업에 생태계 훼손 같은 자연 리스크 관리 평가 기준을 공개하고 이를 충족하지 않을 경우 투자 배제 가능성을 검토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한 자산운용사 ESG 담당자는 “힌남노 피해사례 같은 일이 점차 빈번하게 큰 영향으로 다가올 경우 연기금이나 그 기금을 운용하는 자산운용사 입장에서는 이런 리스크를 잘 관리하는 기업 가치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며 “기후리스크가 커질수록 비재무지표까지 사업보고서에 함께 공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수렴된 의견을 바탕으로 로드맵 최종안을 작업 중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이달 말 발표가 목표”라면서도 “충분한 의견 수렴 및 보완, 내부소통을 거친 뒤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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