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3000개 타격…그래도 안 무너진 이유
전술은 승리, 전략은 실패
이란 전쟁이 시작된 지 6주가 지났지만, 전쟁이 어떻게 끝날 것인지는 여전히 ‘깜깜이’인 양상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개전 초기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와 수뇌부 다수를 제거하고, 24시간 동안 핵심 표적 1000여개를 무력화하는 등 유례를 찾기 힘든 파상공격을 감행했다.
미 중부사령부는 거의 매일 이란 전투기와 군함, 미사일, 드론이 미군의 공습으로 파괴되는 영상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
배우 톰 크루즈가 영화 ‘탑 건’에서 탔던 F-14 전투기는 이란에서 소멸했고, 탄도미사일 전력도 큰 타격을 받았다.
하지만 이란은 무너지지 않았고 호르무즈해협 봉쇄를 선언했다. 미국은 기술적 우위에도 이란을 완전히 굴복시키지 못한 채 휴전과 협상에 나선 모양새다.
이란 전쟁에서 첨단 기술의 위력과 한계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압축된 킬 체인…따라잡기도 버거워
이란 전쟁에서 미군이 보여준 전술의 가장 큰 특징은 압도적인 속도다.
적군의 주요 표적을 파괴하는 킬 체인은 정찰자산을 이용한 포착→탐지→결심→타격에 이르는 단계가 순차적으로 이뤄졌다.
이 단계를 수행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네트워크 체계 강화 등이 이뤄졌으나, 순차적 수행이라는 기본 틀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이란 전쟁에서 미군은 지상·해상·공중 등 모든 영역에 걸친 센서와 타격 수단을 단일 네트워크로 통합하고 AI를 통해 킬 체인 단계를 대폭 압축했다.
이는 팔란티어의 메이븐 시스템에 엔트로픽의 AI 클로드를 결합, 실시간으로 생성되는 수많은 데이터를 빠르게 융합해서 지휘관의 의사결정을 돕는 작전 시나리오와 우선수위를 분·초 단위로 제공한 결과다.
군 소식통은 “과거에는 미군들이 공습을 한 뒤엔 상황을 복기하는 등의 작업을 할 여유가 있었으나, 이젠 작전 템포를 따라잡기 버거워할 정도로 속도가 빠르다”고 전했다.
킬 체인의 의사결정 속도가 급격히 빨라지면서 미군이 이란 내 표적 파괴도 신속하고도 대규모적으로 진행됐다. 최근 미군의 발표에 따르면, 미군이 파괴한 이란 내 표적은 1만3000여개에 달한다. 이란 방공망도 80%가 파괴됐다.
AI가 사실상의 전장지휘통제체계처럼 작동하면서, 지휘관과 참모의 역할도 바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과거에는 지휘관과 참모들이 작전계획을 수립하고 집행했지만, AI가 발달하면서 이들의 역할은 AI가 제시한 것들을 선택 또는 승인하는 것으로 전환되는 모양새다. 짧은 시간 내 AI가 제안하는 옵션을 검토하고 집행하는 사람이 되는 셈이다.
미군은 AI 사용을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미 육군은 일선 전투원들이 임무 수행에 필요한 정보를 직접 받을 수 있는 AI 챗봇을 개발하고 있다. 각종 전술부터 기술적인 부분까지 서비스가 제공될 예정이다.
◆AI 써도 속전속결 못한 이유
미국이 AI를 사용해서 이란을 대대적으로 타격하고 수뇌부 다수를 제거하는 ‘참수작전’까지 감행했지만, 단기적 승리를 달성하진 못했다.
이는 AI가 지닌 한계를 드러낸다는 지적이다. AI는 다양한 출처에서 생산되는 정보를 빠르게 처리·공유하고, 지휘관과 참모의 상황 인식을 높여 군사적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장점이 있다.
문제는 적 표적 다수를 파괴했다는 전술적 성과가 전쟁 승리로 이어지진 않는다는 점이다. 전략과 정치적 요소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야 전쟁에서의 최종 승리를 보장할 수 있다.
그런데 AI는 전술·작전 단위에서 작동하고 있다.
지휘관들이 AI로 인한 압도적 성과에 매몰되어 타격한 표적의 숫자 등을 포함한 전술적 교전 성과에 치중하면, 전쟁 지도부가 설정한 전략적 목표 달성이 어려워질 수 있다.
적의 전쟁 승리 기준이 아군과 다를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할 위험이 있다.
이란 전쟁에서 이란의 전략적 승리 기준이 정권의 생존이라면, 미군이 파괴한 표적 숫자를 따지는 것은 이란의 기준과는 맞지 않다.
미 원자과학자회보는 최근 이란 전쟁에서의 AI 사용에 대해 “AI가 전술적·작전적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는 것을 우선하게 만들어 전략적·정치적 목표 달성에서 멀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장 상황의 불확실성도 AI를 사용한 단기 결전 승리를 어렵게 한다.
전장은 AI도 사전에 인지하지 못하는 미지의 요소가 존재한다. 혼란스럽고, 예측 불가능하며, 예상치 못한 변수가 등장한다.
이란 전쟁에서 미군은 압도적인 공군력으로 이란군을 공격했지만, F-15E 전투기와 리퍼 무인기 격추 사례도 발생했다.
미 공군이 중·고고도에선 제공권을 장악했으나, 미군의 감시망을 피해서 은폐하기가 쉬운 휴대용 지대공미사일 위협에 포함되는 저고도에선 기습적인 요격 시도에 노출될 위험이 높았다. 이같은 변수를 AI가 모두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AI는 전쟁에서의 정치적 요소 판단이나 해법 제시는 하지 못한다.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요소들을 AI가 다루지 못한다면, AI가 제시하는 전쟁 옵션은 허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
트럼프 행정부가 전쟁 초기 이란의 정권 교체를 거론했으나, 이란 내 반정부 세력에 대한 정보 오판만 두드러졌을 뿐 실현되진 못했다. 전쟁에 대한 정치적 정당성 확보도 마찬가지다.
이란의 비대칭 전략도 AI 효과를 반감시켰다는 평가다.
이란은 미국의 모자이크 전쟁 개념을 방어체계에 활용했다. 모자이크 전쟁 개념은 전력을 분산하고 네트워크로 연결해서 생존성을 높이는 전략이다.
모자이크 전쟁 개념 방식처럼 대대적인 전력 및 권한 분산이 이뤄지면, 저항 의지를 지닌 모든 역내 무장 조직을 무력화해야 한다.
이는 대규모 전면전 필요성을 높인다. 하지만 막대한 비용과 인명피해 가능성을 고려하면 쉽게 결심할 사안이 아니다.
이란은 수뇌부 제거와 지휘체계 붕괴를 대비해 공격 권한 등을 예하 부대로 분산시켰다. 전쟁 초기 이란이 큰 타격을 받았는데도 일선 부대가 미사일과 자폭드론을 이스라엘과 중동 지역으로 발사할 수 있었던 이유다.
이들을 완전히 제압하려면 지상군 투입이 필요한데, 이란 인구는 9000만명이 넘고 지형은 침투하기가 어렵다. 미국 내 정치적 의지도 찾아볼 수 없다.
AI에 의한 정밀타격과 참수작전이 완벽해도 높은 수준의 분산된 전력과 항전 의지를 지닌 저항 세력을 모두 무력화하는 것은 또다른 문제다.
군 수뇌부와 지휘관, 참모가 AI에 매몰되지 않고 전략적 승리를 추구할 수 있는 사고방식과 시각을 늘 유지해야 하는 이유다.
◆한반도에서 시사점 던져
한국군도 AI의 적용을 확대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중이다.
지난해 8월 국방부는 AI를 활용해 행정 효율성을 높이고, 중·장기적으로는 국방부 장관의 정책 결정을 지원하는 AI 정책참모를 구축할 방침을 밝혔다. 전장에서 지휘관 결심을 돕는 AI 전투참모 구축도 추진한다.
이란 전쟁에서 보듯 AI가 실질적인 지휘통제체계 역할을 하는 시대가 본격화하는 국면에서 한국군에서도 AI 비중 확대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다만 엔트로픽의 클로드와 동등한 고성능 AI를 사용해도, 한반도 유사시 전략적 승리를 AI 보장하지는 못한다.
AI가 전술·작전 영역에서 지휘관의 판단을 돕고, 전투 성과를 극대화하는 역할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같은 성과를 전략·정치적 영역으로 확대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정치·경제·외교 등의 요소를 아우르는 복합 안보전략을 구상, 한반도 유사시 발생할 모든 문제를 단일 전장에 포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같은 전략의 하위 개념으로 AI를 활용해야 AI의 한계에 직면하지 않고, 전략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유사시 AI로 전쟁 지도부를 제거하는 참수작전을 감행해도, 전쟁이 끝나지 않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북한이 이란의 사례를 참고로 분산된 모자이크 방어 개념을 사용하면, 이란처럼 수뇌부 제거 직후 북한 전역에 흩어진 저항 세력들이 자율적으로 교전에 나설 수 있다. 이는 돌발 변수 발생 위험을 높이고, 분쟁의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을 키운다.
AI의 전장 사용 확대는 피할 수 없는 대세다. 하지만 AI로 대표되는 첨단 기술만으로는 전쟁의 승패를 확정할 수는 없는 것도 현실이다. 미래전에서는 AI에 대한 맹신도 거부도 적절치 않다. AI의 능력과 인간의 사고를 조화시키는 신개념 전쟁방식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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