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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 정의와 사회적 양심 사이에서 [종교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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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수 종교전문기자 hulk198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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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차갑다. 감정을 배제하고 사실과 증거로만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차가움이 극단으로 치달으면, 정의라기보다 기계적 절차에 가까워진다. 그래서 우리는 법에 ‘정의’라는 말을 붙인다. 단순한 판단을 넘어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균형 감각을 기대해서다.

 

지난해 1월에 벌어진 서울서부지법 난동 사태는 그 균형이 얼마나 위태로운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현직 대통령 구속영장 발부라는 초유의 상황 속에서, 법원을 향한 물리적 공격과 폭력이 자행됐다. 그 과정에서 특정 종교 지도자가 군중을 자극해 행동을 유도했다는 혐의로 이어졌고, 실제로 구속기소까지 이루어졌다. 법의 작동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폭력 선동 혐의에도 불구하고, 해당 인물은 비교적 이른 시점에 보석으로 석방됐다. 사유는 건강 상태와 도주 우려가 낮다는 점이다. 법적으로 가능한 판단일 수 있다.

 

같은 시기, 또 다른 종교 지도자는 전혀 다른 상황에 놓여 있다. 명확한 물리적 범죄 행위가 아니라 정치권 관련 의혹, 그것도 ‘정황 중심’의 문제로 장기간 구속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고령과 건강 악화라는 요소 역시 존재하지만, 석방의 충분 조건으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이 지점에서 질문은 피할 수 없다. 법은 과연 동일한 기준으로 작동하는가. 보이지 않는 또 다른 기준이 존재하는 것은 아닌가.

 

종교의 언어로 말하자면, ‘공의’의 문제다. 성서적 전통에서 공의는 처벌의 엄격함이라기보다 상황과 사람을 함께 살피는 균형 잡힌 판단을 의미한다. 힘 있는 자에게 더 엄격하고, 약한 자에게 더 세심해야 한다는 역설적 요청이 담겨 있다.

 

오늘의 사법은 공의에 얼마나 가까운가. 폭력을 선동한 혐의를 받는 이와 정황적 의혹 속에 있는 고령의 인물을 놓고 볼 때, 법의 판단이 단순히 법리만으로 이루어졌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가. 

정성수 종교전문기자
정성수 종교전문기자

물론 법은 여론이나 감정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 그러나 법이 사회적 상식과 완전히 괴리될 때, 또 다른 불신을 낳는다. 지금의 혼란은 바로 그 지점에서 비롯된다. 판단의 결과보다, 판단이 만들어내는 ‘형평성의 감각’이 무너지고 있다는 데 있다.

 

종교는 언제나 인간의 마지막 질문을 다룬다. 무엇이 옳은가, 무엇이 정의로운가, 우리는 어디까지 용서하고 어디까지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 이 질문들은 법정 밖에서 시작되지만, 결국 법정 안에서 시험대에 오른다.  지금은 판결에 앞서 설명 가능한 정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왜 어떤 이는 풀려나고, 어떤 이는 아예 출석 요구조차 받지 않으며, 어떤 이는 계속 구속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납득 가능한 기준 말이다.

 

만약 폭력을 선동한 자와 아예 법 앞에 서지도 않은 자에게 관용이 허용된다면, 정황적 의혹 속에 있는 고령의 인물에게는 마땅히 불구속 수사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 그것이 없다면 법은 점점 더 신뢰를 잃고, 사람들은 각자의 정의를 들고 거리로 나서게 될 것이다. 법이 무너지면 사회가 흔들린다. 법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그 흔들림은 훨씬 더 깊고 길어진다.

 

한학자 총재는 지난해 9월23일 구속된 이후 13일 현재까지 7개월째(204일) 구속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이날은 전신마취를 동반한 수술을 앞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오는 30일 세 번째 병보석 기간을 마치고 다시 구치소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사정까지 고려할 때 사법부가 말하는 ‘법 앞의 평등’이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 제기된다. 법이 보편적 감각과 괴리될 때, 그것은 이미 정의가 아니라 기계적인 폭력에 불과하다. 지금 법에 묻는 것은 한 사람의 석방 여부가 아니다. 이 사회의 법이 과연 누구를 향해 서 있는가, 그리고 그 법이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공의를 여전히 품고 있는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법은 누구를 향해 서 있는가. 법의 상징인 정의의 여신 디케(Dike)는 눈을 가린 채 한 손에는 저울을, 한 손에는 칼을 들고 있다. 칼날은 날카롭되 저울은 정직해야 한다. 사법부가 스스로 들고 있는 저울의 수평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그 칼은 정의가 아닌 불신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지금이라도 법은 차가운 법조문 뒤에 숨지 말고, 인간에 대한 공의와 보편적 상식의 목소리에 응답해야 한다. 한 총재에 대한 불구속 수사로의 전환을 그 신뢰 회복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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