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과 12·3 계엄 소환
시민 십시일반 제작비 마련
정, ‘내 이름은’ 15일 개봉
참극 후유증·상처 고스란히
李대통령 시민과 동반 관람
이, ‘란 12·3’ 23일에 공개
무성영화 대가 특징 살려
AI·애니메이션 동원하기도
시민 수만 명이 지갑을 열어 완성된 영화 두 편이 나란히 극장에 걸린다. 정지영 감독의 ‘내 이름은’(15일 개봉)과 이명세 감독의 ‘란 12·3’(22일 개봉)은 모두 온라인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작비를 마련한 작품이다. ‘란 12·3’은 약 10억원 규모 펀딩에 1만5000여명이 참여해 목표액의 110%를 달성했고, ‘내 이름은’ 역시 1만명 가까운 참여로 약 4억원을 모았다.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이끈 배경엔 작품이 채택한 소재가 있다. ‘내 이름은’은 제주 4·3 사건을 다룬 극영화, ‘란 12·3’은 12·3 비상계엄의 밤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한국 현대사의 상처를 스크린으로 불러내며, 여든을 앞둔 정지영 감독과 일흔을 바라보는 이명세 감독의 건재함을 보여준다.
◆이름을 묻는 역사
‘내 이름은’은 제주 4·3의 ‘정명(正名)’을 묻는다. 제주 4·3은 한국 현대사의 대표적 국가폭력 사건이지만, 오랫동안 ‘봉기’ ‘항쟁’ ‘폭동’ ‘사태’ ‘사건’ 등으로 불리며 그 성격조차 명확히 규정되지 못했다. 2003년 정부 진상조사 보고서가 공식 발간됐음에도, 명칭을 둘러싼 논의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영화는 1998년 제주를 배경으로 기억을 잃은 무용강사 정순(염혜란)과 그의 고등학생 아들 영옥(신우빈)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4·3을 직접 겪은 세대와 기억을 물려받은 세대의 관계는 모자 서사로 풀려나간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영옥’이라는 여성적인 이름을 붙였다. 그 이유는 정순조차 알지 못한다. “호적에 올릴 때 그 이름이 불쑥 떠올랐신디”라는 불명확한 설명뿐이다.
환갑이 가까운 정순은 여전히 4·3의 후유증 속에 산다. 어린 시절 기억 일부는 잃었고, 이따금 햇빛 아래에서 졸도한다. 늘 선글라스를 쓴 채 지내며 정신과 치료를 통해 50년 전 기억을 더듬는다.
정순이 청보리밭에서 잃어버린 기억과 대면하는 장면에서 그를 짓누르던 죄책감의 전말이 드러나며, 정순 자신과 아들의 이름에 담긴 비밀도 밝혀진다. 영화는 4·3이 남긴 상처를 현재로 불러오며, 이를 어떻게 감당하고 건너갈 것인가를 묻는다. 오멸 감독의 ‘지슬’(2013), 하명미 감독의 ‘한란’(2025)에 이어 한국 사회는 또 한 편의 ‘4·3 극영화’를 갖게 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개봉일에 이 영화를 시민들과 함께 관람할 예정이다.
◆말 대신 이미지로
이명세 감독의 대표작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는 그의 ‘무성영화적 감각’이 두드러진 작품으로 평가받아왔다. 대사에 의존하지 않고 배우의 액션과 동선, 편집의 리듬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이명세만의 스타일은 무성영화 시기의 위대한 감독들에 비견됐다. 그 유명한 ‘인정사정’ 속 우중 추격 장면은 시각 언어만으로 장면을 완결하는 힘을 보여주는 사례로 여전히 회자된다.
그가 만든 첫 다큐멘터리 ‘란 12·3’은 이러한 미학의 연장선에 있다. 내레이션과 인터뷰, 재연을 배제하고 이미지와 음악만으로 사건을 체감하게 한다. 이 감독의 오랜 협업 파트너 조성우 음악감독이 만든 음악은 무성영화 시대 영화 사운드처럼 이미지와 동기화된 듯 맞물린다. 인공지능(AI) 생성 이미지와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시각 장치도 동원됐다.
‘란 12.3’은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 국회 상황을 기록했다. 국회의원과 보좌진, 시민들이 계엄 해제를 위해 숨 가쁘게 움직이는 장면을 280여명의 시민 기록 영상과 자료 화면으로 재구성했다. 특수부대의 국회 진입을 막아내며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가결하는 국회의 시간이 긴박하게 전개된다.
이 감독은 지난 7일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시사회에서 “그날 밤의 일을 모르는 해외 관객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편집의 목표였다”며 “K민주주의가 세계의 모범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리는 사례다. 외국 관객도 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2007년 ‘M’ 이후 장편 극영화 연출작이 끊긴 이명세 감독은 이번 작품으로 여전히 독창적 영화 언어를 지닌 연출가임을 입증한다. 그의 극영화 복귀를 기다리게 만드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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