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에는 기구한 사연이 있는 경우가 많다. 엉뚱 생뚱한 이웃 지명이 본래 지명을 집어 먹는 일도 있고 서로 다른 지명 둘을 잘라 붙여 전혀 다른 지명이 되기도 한다. 광진구의 어원이 되는 광나루도 그런 사연을 가진 지명이다.
경기 덕소에서 미호나루, 아차산을 지나 서울로 들어서면 맨 먼저 만나는 지명이 ‘광나루’ 즉 ‘광진(廣津)’이다. 흔히 한자 뜻 그대로 ‘너른 나루’로 이해되지만, 막상 광나루를 둘러보면 생각보다 좁은 터에 놀라게 된다. 사실 이 지명은 ‘너른 나루터’보다는 건너편 ‘양진(楊津)’과의 관련성이 더 높은 지명인데 이에 대해 자세히 아는 이가 적다.
‘양진’과 ‘광진’이라는 지명은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에 처음 나온다. ‘고려사’(권56, 지리지)에는 “원래 고구려의 북한산군이다. … 삼각산(三角山), 한강(漢江), 양진이 있다”고 하였고, ‘조선왕조실록’(권52, 세종실록)에는 “범의 머리를 양진과 광진에 담갔다”는 기록이 나온다. 관련한 내용이 ‘세종실록지리지’(경기조)에 “한강은 … (양근) 남쪽에서 용진도(龍津渡)가 되고, 사포(蛇浦)로 들어가서 두 물이 합하여 흘러 광주(廣州) 경계에 이르러서 도미진(渡迷津)이 되고, (다음에) 광나루가 되었으며, … 경상·충청·강원도 및 경기 상류(上流)에서 배로 실어 온 곡식이 모두 이곳을 거치어 서울에 다다른다”고 쓰여 있다.
그런데, 지금의 강북에 위치한 ‘광진’의 본래 이름이 ‘양진’이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지역은 양주(楊州)와 한양(漢陽)의 경계 지역으로 본래 양주나루, 즉 ‘양진’이었던 것이다. 양주는 지금의 동대문 바깥 서울의 동부 지역과 양주, 남양주를 아우르는 버드나무가 많은 지역의 명칭이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양주에 대해 “광진도(廣津渡)라 하기도 하는데 미진(迷津)의 하류”라고 보충 설명을 해 두었다. ‘양진’을 ‘광진 가는 나루’라는 뜻의 ‘광진도’라고 하던 것이 줄어서 ‘광진’이 된 것이다.
오늘날에는 삼남 물길을 이용해서 보내오는 물산이 없기 때문에 한강 이남의 지역에는 광진(광주나루터)이든 양진이든 그 흔적이 없어진 지 오래다. 다만 지금의 고덕지구에 ‘창말’이라는 이름의 마을이 있어 이곳이 본래 삼남에서 올라온 곡식을 저장해 두는 창고가 늘어서 있던 마을이었음을 비밀스럽게 남겨두었을 뿐이다. 양진이 광진으로 남겨지고 광진은 양진이 되었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일들이 우리 땅이름 곳곳에서 사람들의 기억을 삭제하며 계속되어 왔다.
김양진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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