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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 한민족의 국조는 ‘어머니’인가 [신화에서 선민까지 한민족 정체성의 문화사적 발견-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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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대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두 개의 축을 이룬다. 전자가 국가의 질서와 사건의 골격을 정연하게 기록했다면, 후자는 신화와 전승을 통해 그 시대의 정신과 상징의 층위를 보존하였다. 이 연재는 바로 이 두 사료의 만남에서 출발한다. 사실과 서사의 이중 구조 속에서,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는 사건의 축적이 아닌, 의미와 상징의 흐름으로 이어져 왔음을 드러낸다. 특히 이러한 흐름 속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여성적 주체’의 서사는 오늘날 ‘독생녀’라는 개념의 사상적·문화적 배경을 이루는 중요한 단서로 읽힐 수 있다. 『삼국사기』가 역사의 외형을 세운다면, 『삼국유사』는 그 내면의 숨결을 드러낸다. 본 연재는 이 두 텍스트를 토대로, 신화·역사·종교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한민족 정체성의 심층 구조를 새롭게 조망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단군신화 속 웅녀와 호랑이의 대비 장면. 출처: AI생성 이미지
단군신화 속 웅녀와 호랑이의 대비 장면. 출처: AI생성 이미지

◆ 한민족의 출발점에는 ‘여신’이 있었다.

 

한(韓)민족은 건국 서사 속에서 하늘의 생명을 품은 ‘어머니’를 국조의 상징으로 기억해 온 독특한 문화 전통을 지닌 민족이었다. 동아시아가 청동기시대를 거쳐 철기시대로 접어들며 왕조 국가들이 형성하던 시기, 만주와 한반도를 무대로 등장한 북방계 동이족 국가들은 흥미로운 공통점을 보여준다. 부여와 고조선 그리고 이를 계승한 고구려, 백제, 신라에 이르기까지, 이들 국가의 건국 서사에는 반복적으로 ‘어머니’의 상징이 등장한다. 시조의 탄생과 정통성이 여성적 존재를 통해 설명되는 이러한 역사는, 동시기 중국 한(漢)족 사회에서 전개된 천명 중심의 왕권과는 분명히 구별되는 문화적 특징이었다. 다시 말해, 한민족의 건국 서사에서 ‘어머니’는 단순한 혈통의 의미를 넘어 하늘의 생명과 인간 역사를 연결하는 상징적 존재로 이해되어 왔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고조선조는 단군의 탄생을 웅녀(熊女)를 통해 전한다.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와 인간 세계에 질서를 세우는 존재로 등장하지만, 인간 역사 속에서 단군을 낳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존재는 웅녀다. 이러한 이야기는 고대 한민족이 건국의 기원을 설명할 때 ‘어머니’의 상징을 중요한 매개로 이해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구조는 고구려 건국 서사에서도 확인된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고구려본기에 따르면, 주몽은 어머니 유화(柳花)의 몸을 통해 알에서 태어난 존재로 서술된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제사지 기록에는 고구려 왕과 신하들이 매년 10월 국동대혈 동굴(현재 중국 길림성 집안시에 위치)에서 ‘하백녀와 주몽’을 함께 제사했다는 내용을 전한다. 이는 건국 신화 속 모성의 상징이 고구려 사회에서 일정한 종교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유화라는 이름이 지닌 상징 또한 흥미롭다. ‘유화(柳花)’는 버드나무를 뜻하는데, 북방 샤머니즘 문화에서 버드나무는 생명과 재생을 상징하는 식물로 받아들여져 왔다. 이러한 상징 체계 속에서 유화는 단순한 신화적 인물이 아니라, 하늘의 생명이 인간 세계로 이어지는 통로로 이해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건국 서사의 구조는 백제에서도 나타난다. 『삼국사기(三國史記)』는 백제를 건국한 비류와 온조의 어머니 소서노가 세상을 떠난 뒤 왕실이 사당을 세워 국신으로 모셨다고 전한다. 왕이 된 아들의 정치적 권력과는 별개로, 건국의 정통성이 어머니의 공덕과 연결되어 민중의 집단적 기억 속에 전승되었던 것이다. 신라도 마찬가지였다. 『화랑세기(花郞世紀)』는 화랑의 기원을 여성 종교집단에서 찾고 있으며, 이는 신라의 화랑이 제사와 영성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경북 경주 선도산에 위치한 국신 제단은 그 전통이 제도화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유적이다. 이처럼 고대 한민족 심정의 근원은 여신문화가 자리하고 있다. 권력은 남성의 손에 있었을지 모르나, 정통성의 뿌리는 언제나 어머니였다.

 

◆ 난생설화(卵生說話)의 한민족, 모계문명의 비밀

 

한민족 문화의 심장부에는 예부터 ‘모성’이라는 상징이 견고하게 자리해 왔다. 고대 건국 신화에서 시조의 탄생이 어머니의 몸을 빌려 구현되는 계보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현상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이는 우리 민족이 공유해 온 고유한 문화적 인식의 발로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전통은 비단 신화적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조선 세종 대의 『조선왕조실록』을 살펴보면 처가살이가 자연스러운 풍속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부부가 일정 기간 처가에서 생활하는 관습이 당시 사회에 보편적으로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조선 성종 이후, 유교적 부계 질서가 공고해진 이후에도 이 흐름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 성리학의 거두인 율곡 이이가 처가에서 생활했다는 사실은, 가부장적 사회 구조 속에서도 모계적 전통의 잔영이 끈기 있게 이어지고 있었음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결국 한민족의 역사는 정치적 권력 구조 측면에서 부계 중심의 질서를 확립해 왔지만, 문화와 생활 일상의 영역에서는 여전히 모성 공동체의 상징과 기억을 보존해 온 셈이다. 이러한 토양 위에서 반복되는 ‘난생설화’는 단순히 설화적 장치를 넘어선다. 하늘의 기운을 머금은 신성한 존재가 어머니의 태를 빌려 인간의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오는 이 상징 체계야말로, 한민족 정신의 뿌리를 이루는 진정한 문화적 정수라 할 수 있다.

 

그 기원은 ‘알’을 화두로 삼은 건국 신화에서 찾을 수 있다. 3세기 중국의 『위지동이전(魏志東夷傳)』은 고대 한반도를 기록하며 흥미로운 대목을 남겼다. 황제만이 천제를 주관하던 중국과 달리, 부여의 영고(迎鼓)에서는 공동체 성원 전체가 제천의식에 동참했다는 것이다. 이는 하늘을 향한 경외심이 통치자 1인의 전유물이 아닌, 공동체 전체가 공유하던 보편적 의례였음을 뒷받침한다. 이 같은 풍토 속에서 우리 선조들은 스스로를 ‘하늘의 자손’이라 여기는 독자적인 세계관을 구축해 왔다.

 

우리들의 인식 체계는 난생설화에 이르러 더욱 선명한 형상을 띤다. 한민족의 탄생 신화 속에서 영웅은 알을 깨고 등장하는 비범한 존재로 묘사되지만, 흥미롭게도 혈통은 점차 희미해지는 반면, 어머니의 위상은 민초의 기억 속에 강렬한 상징으로 각인된다. 고려시대 왕실이 주관하는 팔관회에서는 고구려 주몽의 어머니 유화부인을 국신으로 모셨다. 삼국시대에도 백제의 소서노와 신라의 알영은 시조의 동반자이자 모성으로 추앙받는 점은 우리 문화 특유의 결을 보여주는 실증적 사례다. 군주가 된 아들이 가시적인 정치 권력을 대변했다면, 한반도 역사에서 어머니는 천상의 생명력과 지상의 건국 기원을 잇는 근원적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던 것이다.

 

둥글고 빛을 머금는 알은 고대 한민족에게 하늘의 원형이자 태양을 닮은 신성한 상징으로 이해되었다. 알에서 시조가 태어났다는 설정은 천상의 생명이 비로소 인간의 역사 안으로 편입되었음을 알리는 문화적 기표다. 동시에 알은 하나의 ‘경계’이기도 하다. 견고한 껍질을 부수고 생명이 박동하는 찰나, 비로소 새로운 시대의 막이 오르기 때문이다. 결국 난생의 신화는 하늘의 명을 품은 존재가 시대적 한계를 돌파하며 새로운 질서를 창조해내야 한다는 준엄한 상징적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고기훈 박사(한국학)
고기훈 박사(한국학) 

◆ 신화적 상상력은 역사 위에 세워진 상징이다.

 

1984년, 중국 요하(遼河) 유역 우하량 유적에서 5,500년 전의 ‘여신묘(女神廟)’가 발굴되었다. 붉은 제의 공간 한가운데에서 발견된 여신의 얼굴과 그 주변에서 확인된 다양한 제의 유물들은 고대 동아시아 사회에서 여성적 존재가 종교적 상징의 중심에 놓여 있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고고학적 발견으로 평가된다. 유적에서는 곰의 턱뼈와 곰발 모양의 소조 유물도 함께 확인되었다. 황하문명을 동아시아 문명의 중심으로 보던 기존의 학설은 적지 않은 재검토의 대상이 되었다. 문명의 출발점에 왕이 아니라, ‘여신’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기록된 웅녀 서사를 떠올려 보자. 한민족은 이미 ‘곰 여인’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다. 우하량 유적에서 확인된 곰 토템 문화와 고조선 건국 신화 속 웅녀 이야기는 북방 문화권의 상징 체계를 함께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로 읽힌다. 요하 일대는 몽골·만주·한반도로 이어지는 북방 문화의 중요한 교차 공간이었다. 그 기억은 발해 연안 문화권을 따라 여러 세대에 걸쳐 전승되었고, 다양한 신화와 전설 속 현재의 생활 풍습으로 재구성되었던 것이다.

 

미국의 고고학자 마리야 김부타스(Marija Gimbutas)는 유럽 신석기 유적에서 발견된 수많은 여성 조각상들을 분석하며 초기 농경 문명에서 생명과 풍요의 근원을 상징하는 존재가 ‘여신’이었다고 설명하였다. 김부타스의 연구는 여성 신성이 단순한 종교적 대상이 아니라 생명의 탄생과 자연의 순환을 이해하는 인류 문명의 상징적 존재로 해석한다. 고대 사회에서 여성적 존재가 신화와 종교의 핵심 상징으로 등장하는 현상은 특정 지역의 특수한 전통이라기보다, 인류 문명 초기 단계에서 널리 나타나는 문화적 특징으로 해석될 수 있는 근거이다.

 

세계 문명사에서 가장 먼저 신격화된 존재 가운데 하나는 ‘여신’이었다. 여신은 다산과 풍요, 생명의 근원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신화는 단순한 허구라기보다 한 공동체가 스스로의 기원을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낸 상징적 서사이기도 하다. 우리 민족의 건국 신화 역시 그러한 문화적 정통성을 담고 있다. 우하량에서 발견된 여선의 얼굴이 반만년의 시간을 넘어 모습을 드러낸 순간, 한민족은 오랫동안 문화의 깊은 층위에 남아 있던 ‘어머니’의 상징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이 시대에 다시 ‘어머니’의 이름이 역사와 종교 담론의 전면에 등장하는 현상은 단순한 우연일까, 아니면 오래전부터 어어져 온 문화적 기억과 시대의 흐름 속에서 새롭게 해석되고 있는 것일까.

 

신라 박혁거세와 알영의 신화를 단순한 전설이나 실제 존재하지 않았던 허구로 치부하는 시각도 있었다. 그러나 많은 역사학자와 사상가들은 오늘날의 합리적 기준으로 고대의 신화와 풍습을 재단할 경우 그 시대 사람들이 이해했던 세계관과 이상을 온전히 읽어낼 수 없다고 말한다. 신화는 단순한 이야기라기보다 한 사회가 자신들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남긴 상징적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新羅本紀)는 그 이야기를 건국의 기록 속에 남겼다. 그 탄생의 장소가 바로 경주 ‘나정(蘿井)’이다. 나정은 오랜 세월 전설 속 장소로 여겨지기도 했다. 실제로 나정으로 추정된 공간에서는 조선시대까지 제사가 이어졌고, 2002년부터 본격적인 발굴 조사가 시작되었다. 4년에 걸친 조사 끝에 그곳에서 신라 왕실 제의 공간인 ‘신궁(神宮)’ 유적이 확인되었다. 신라는 시조의 탄생지를 실제로 관리해 온 왕조였다. 전설로만 여겨지던 장소가 역사와 제의의 공간으로 다시 확인된 셈이다. 신화와 역사는 서로 단절된 세계가 아니라, 오랜 시간 속에서 서로를 비추며 해석되어 온 문화의 두 얼굴이었는지도 모른다. 21세기 문명사적 전환의 시대. 한민족 문명의 시발점에 자리했던 ‘어머니’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어떤 화두를 던지는가. 신화 속 알을 품어 역사를 태동시켰던 그 근원적인 생명력과 상징적 의미를 오늘날의 문화적 맥락에서 어떻게 재해석하고 계승할 것인지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 필자 약력

 

한국학적 시각에서 동아시아 지역의 정치·경제·역사·문화·종교를 통합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특히 인간과 집단의 정체성 형성, 공동체 의식, 나아가 사회통합과 세계시민주의의 관계를 탐구하며, 신화·역사·종교의 상호작용을 통해 사회의 심층 구조를 해석하는 데 주력해 왔다. 선문대학교에서 디아스포라를 전공하여 한국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관련 주제로 다수의 학술논문을 발표하였다.

 

고기훈 박사(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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