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프랑스는 예전과 같은 강대국 지위를 주장할 형편이 아니었다. 2차대전 초반인 1940년 6월 나치 독일에 연거푸 낯뜨거운 패배를 당한 끝에 결국 항복한 프랑스의 자부심은 땅에 떨어졌다. 프랑스는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결과 나치의 점령 통치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으나, 이는 전적으로 미국·영국 등 연합국의 도움 덕분이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과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현 러시아) 공산당 서기장은 전후 새로운 세계 질서 구축을 위한 협상에서 프랑스를 배제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비록 프랑스는 2차대전 말기 얄타 회의(1945년 2월)와 포츠담 회의(1945년 7∼8월)에 초대를 받지는 못했지만, 패전국 독일 영토의 분할 점령에 참여할 권한만은 확보했다. 심지어 거부권을 지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5대 상임이사국의 일원이 되는 영예까지 누렸다. 역사가들은 ‘신흥 강대국 미국·소련의 부상에 맞서 유럽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가 프랑스를 도운 결과’라는 해석을 내놓는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렇더라도 프랑스가 나치 독일의 군홧발에 짓밟히는 동안 반(反)독일 레지스탕스 운동을 이끌며 프랑스의 정신을 수호한 샤를 드골(1890∼1970) 장군의 역할을 부인할 수 없다.
나치 독일의 프랑스 점령이 임박하자 당시 별 하나 준장 계급장을 단 드골은 영국으로 망명했다. 그곳에서 처칠의 지원 아래 독일을 상대로 한 항전을 지속했다. 초창기 드골이 이끄는 ‘자유 프랑스’ 운동의 세력은 보잘것없었다. 프랑스 국민 사이에 드골의 인지도는 0(제로)에 가까웠다. 루스벨트가 2차대전 기간 내내 드골을 대놓고 무시한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전쟁이 종반전을 향해 치달으며 드골의 명성은 확고해졌고 자유 프랑스 군대 또한 강력해졌다. 급기야 나치 치하의 프랑스 국내에서 독일에 저항해 온 레지스탕스마저 드골을 프랑스의 차세대 지도자로 인정했다. 대전이 끝났을 때 프랑스에 드골이란 존재가 없었다면 전후 프랑스의 운명이 과연 어떻게 됐을지 가늠하기 힘들다.
프랑스는 2001년 취역한 최초의 핵 추진 항공모함(핵항모)에 ‘샤를 드골’이란 이름을 붙였다. 18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오는 2038년쯤 드골함을 대체할 새 핵항모를 ‘프랑스 리브르’(France Libre·자유 프랑스)로 명명했다. 2차대전 당시 드골이 이끈 독립운동 조직의 명칭을 딴 것이다. 마크롱은 “나는 미래의 항모가 드골 장군의 발자취, 그의 삶, 그의 운명을 따르길 원한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2차대전 종전 후 드골은 정계에 입문해 프랑스 제5공화국 초대 대통령(1959∼1969년 재임)을 지냈고, 임기 중 핵무기 개발에 성공해 프랑스를 미국·영국·러시아·중국과 더불어 세계 5대 핵무기 보유국 반열에 올렸다. ‘구국의 영웅’ 드골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은 마크롱을 비롯한 모든 프랑스 정치인들의 숙명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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