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남정훈 기자] 바늘 구멍 같은 경우의 수를 뚫어내고 ‘류지현호’가 극적인 생존에 성공했다. 2009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우승 이후 3연속 본선 1라운드 탈락의 굴욕을 맛봤던 한국 야구가 17년 만에 그 관문을 통과했다.
류지현 감독이 이끄는 한국 야구대표팀은 9일 일본 도쿄도 분쿄구 도쿄돔에서 열린 2026 WBC 본선 1라운드 C조 조별리그 호주와의 경기에서 ‘문보물’ 문보경(LG)의 선제 투런 포함 4타점 원맨쇼에 투수진을 총동원한 이어던지기에 힘입어 7-2 승리를 거뒀다.
지난 7일 일본전(6-8), 8일 대만전(4-5) 연이은 패배로 1승2패에 몰려 이날 호주전에서 정규이닝 기준 2실점 이하 5점차 이상 승리를 거둬야만 결선 라운드가 펼쳐지는 미국 마이애미행이 가능했던 한국은 정확히 그 조건을 충족해냈다. 2승2패가 돼 호주, 대만과 동률을 이룬 한국은 세 팀 간 맞대결 아웃카운트당 최소 실점률에서 가장 앞서며 일본(3승)에 이어 조 2위로 마이애미행 비행기 티켓 발권에 성공했다. 대만에 3-0 승리를 거둔 호주가 이날 7점을 내주며 패해 한국과 총 실점은 7점으로 같지만, 한국은 대만과의 경기에서 연장 10회까지 소화해 수비이닝 19이닝으로 9이닝 경기만 두 번 치른 호주(18이닝)보다 수비이닝이 1이닝 더 많아 아웃카운트당 실점률에서 호주에게 앞설 수 있었다.
‘2013 타이중 참사’, ‘2017 고척돔 참사’, ‘2023 도쿄돔 참사’ 등 앞선 세 번의 WBC에서 참사라는 단어로 표현될 만큼 본선 1라운드에서 참혹한 패배를 당하며 본선 1라운드 탈락을 당했던 한국은 2026년엔 경우의 수를 따지는 상황까지 놓였지만, 기어코 본선 1라운드를 통과해내며 1차 목표를 달성했다.
이날 경기 전 류 감독은 “분명 어려운 상황이지만 어떻게 보면 저희에게 기회이기도 하다”라면서 “선수들에게 ‘너무 경우의 수에 얽매여 쫓기고 급한 마음으로 하면 안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라고 말해줬다. 우리에겐 3시간이라는 기회가 있다. 그 안에서 자기 역할을 각자 해주면 좋은 결과가 있을 수 있다”고 각오를 전했다.
류 감독의 말대로 3시간 남짓의 시간 동안 타자들은 차곡차곡 점수를 쌓았고, 마운드엔 7명의 투수들이 이어 던지며 호주 타선을 단 2점으로 봉쇄해냈다.
까다로운 경우의 수 때문에 부담감이 큰 상황에서 문보경의 선제 투런포가 큰 역할을 했다. 지난 5일 체코전에서도 1회 선제 결승 만루포를 때려냈던 문보경은 이날도 기선을 제압하는 홈런포를 쏘아올렸다. 0-0으로 맞선 2회 무사 1루에서 첫 번째 타석에 들어선 문보경은 상대 선발 좌완 라클란 웰스의 2구째 몸쪽 낮은 슬라이더를 걷어 올려 도쿄돔 우측담장을 넘겼다.
문보경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3회 선두타자 저마이 존스와 이정후의 연속 2루타로 한 점을 더 추가한 상황. 문보경은 중견수 옆을 가르는 2루타를 때려내 이정후를 홈으로 불러들이며 4-0을 만들었다.
5점째를 낸 것도 문보경이었다. 5회초 2사 후 안현민이 볼넷을 골라나간 뒤 2루 도루에 성공했고, 문보경은 이번엔 좌측으로 밀어쳐 펜스를 직격하는 타구로 안현민이 홈을 밟게 해줬다. 이날 경기 4타점째. 5-0으로 앞서나가며 2실점 이하 5점차 이상의 조건을 만들어냈다.
마운드도 갑작스런 변수를 잘 대처했다. 선발 등판의 중책을 맡은 손주영(LG)이 팔꿈치에 불편함을 느껴 1이닝 만에 마운드를 내려갔지만, 투수조 최고참인 노경은(SSG)이 급작스레 올라왔음에도 2이닝을 1피안타 무실점으로 틀어막아줬다. 4회부턴 체코전 선발로 나서 3이닝 무실점 호투했던 소형준(KT)이 올라왔다. 4회를 잘 막아낸 소형준은 5회 선두타자 로비 글렌더닝에게 벼락 같은 솔로포를 허용했다.
다시 탈락의 경우의 속에 놓인 위기의 한국을 구해낸 건, 대만전에서 6회 역전 투런포와 8회 동점 적시 2루타 등 두 번이나 패배의 위기 속에서 건져냈던 ‘슈퍼스타’ 김도영(KIA). 6회 2사 2루에서 김도영은 1,2루 간을 가르는 우전 적시타로 다시 6-1을 만들어냈다.
이제 6-1만 지켜내면 올라갈 수 있는 상황이지만, ‘야구의 신’은 한국의 17년 만의 본선 1라운드 통과를 쉽사리 허락하지 않았다. 8회 마운드에 오른 김택연(두산)이 선두타자 볼넷을 내준 뒤 희생번트로 맞은 1사 2루 위기에서 2024년 미국 메이저리그(MLB)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 지명을 받은 트래비스 바자나(클리블랜드 가디언스)에게 통한의 적시타를 맞았다. 한국 벤치는 부랴부랴 조병현(SSG)을 마운드에 올렸다. 조병현은 첫 타자 커티스 미드에게 볼넷을 내줬지만, 후속 두 타자를 잡아내고 불을 껐다.
한국의 대망의 9회. 반드시 1점 이상을 내야만 마이애미행이 가능한 상황. 선두타자 김도영이 볼넷으로 살아나가며 희망을 키웠지만, 존스가 우익수 뜬공으로 아웃당했다. 그러나 한국엔 주장 이정후가 있었다. 이정후가 친 투수 강습 타구가 굴절됐고, 이를 잡은 호주 유격수 제러드 데일의 2루 송구가 빗나가며 대주자 박해민이 3루까지 내달려 1사 1,3루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어 등장한 4번 안현민의 큼지막한 중견수 방면 희생플라이를 쳐냈고, 홈으로 내달린 박해민이 포효했다.
7-2로 다시 경우의 수를 만들어낸 한국 벤치는 실점을 반드시 막아야 하는 9회 마운드를 그대로 SSG 마무리 조병현에게 맡겼다. 선두타자 데일을 삼진으로 잡아낸 조병현은 크리스 버크를 볼넷으로 내보냈다. 이어 릭손 윈글로브의 우중간을 가를 듯한 타구를 이정후가 그림 같은 수비로 잡아내며 위기의 불을 껐다. 마지막 대타 로건 버크의 뜬공을 1루수 문보경이 잡아내며 한국의 기적은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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