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부터 증기 기관차까지 영국이 세계 최초로 발명한 것이 어디 한둘이겠느냐만 공군 역시 영국의 발명품이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항공기를 군사 작전에 동원하며 그 장점에 눈을 뜬 영국군은 전쟁 말기인 1918년 4월 육·해군에 각각 속해 있던 항공 부대들을 떼어내 모두 합쳐 공군을 창설했다. 공군이 육군, 해군과 대등한 독립 군종(軍種)이 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1차대전 종전 후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전까지 간전기(間戰期) 동안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다른 유럽 강대국들도 속속 공군을 만들었다.
독립운동가 노백린(1875∼1926) 장군은 구한말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대한제국군 장교로 복무했다. 1907년 제국주의 일본의 강압 아래 대한제국 군대가 해체됐다. 군복을 벗은 노 장군은 일본 측의 온갖 회유와 협박에도 협력을 거부하며 버티다가 1915년 중국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했다. 일본 육사 생도 시절부터 비행기의 군사적 활용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유럽에서 들려오는 1차대전 전황 소식을 접하며 ‘미래의 전쟁은 육군보다 공군이 좌우할 것’이란 확신을 갖게 됐다. 1919년 3·1 운동을 계기로 중국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들어서며 노 장군은 군무총장(軍務總長·국방부 장관)으로 발탁됐다.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변에 “우리도 비행사를 양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립운동가 김종림(1886∼1973) 선생은 구한말인 1904년 미국 하와이로 이민을 떠났다. 이후 캘리포니아주(州)에 정착한 그는 벼농사로 큰 성공을 거뒀고 ‘쌀의 왕’이라고 불릴 만큼 많은 재산을 모았다. “앞으로의 전쟁은 하늘을 지배하는 자가 이긴다”는 노 장군의 설득에 김 선생은 “비행기만 있으면 일본을 이길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제가 돕겠습니다”라고 호쾌하게 화답했다. 1920년 김 선생은 캘리포니아 윌로우스의 40에이커(약 16만㎡) 면적 농장을 비행 학교 부지로 선뜻 내놓았다. 당시 돈으로 2만달러 이상을 들여 활주로를 짓고 훈련용 비행기도 3대나 구입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곳이 바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최초의 비행 학교인 ‘윌로우스 한인 비행사 양성소’였다.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가 최근 ‘김종림! 우리는 이 사람을 대한민국 공군 명예 참모총장으로 임명합니다’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공개했다. 반크 박기태 단장은 “김 선생이 길러낸 한인 비행가들은 대한민국 영공을 지키는 힘의 뿌리가 됐다”며 “선생을 공군 최초이자 영원한 명예 참모총장으로 임명하자는 대국민 캠페인을 전개한다”고 밝혔다. 마침 지난 5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선 ‘이달(3월)의 호국 인물’로 선정된 노 장군을 기리기 위한 선양 행사가 열렸다. 51세라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노 장군이 광복 이후 국군, 특히 공군 창군 과정에서 커다란 역할을 했을 것으로 여기는 이가 많다. 노 장군 또한 우리 공군의 명예 참모총장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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