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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혹한 정복자 티무르 ‘예술의 꽃’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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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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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스칸 사후 몽골제국 분열·위기
막대한 군사력 바탕 유라시아 장악
항복엔 관용… 저항하면 가혹한 처단
사마르칸트 도시 문화·건축으로 승화
몽골·이슬람 융합 독특한 제국 일궈

칭기스칸에서 티무르까지/ 피터 잭슨/ 최하늘 옮김/ 책과함께/ 5만8000원

 

몽골제국사 연구의 권위자인 영국의 역사학자 피터 잭슨이 중세 유라시아를 관통한 몽골제국의 흥망사를 다룬 책이다. 그의 전작 ‘몽골제국과 서방’과 ‘몽골제국과 이슬람 세계’는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올라 몽골제국사 연구의 독보적 성과로 평가받는다.

이 책은 티무르의 등장을 몽골제국사의 맥락에서 본격적으로 조명한 최초의 연구서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13세기 칭기스칸이 세운 몽골제국의 세계 질서가 14세기의 대격변을 거쳐 15세기 잔혹한 정복자로 알려진 티무르에 의해 어떻게 계승·재편되었는지를 역동적으로 추적한다.

1379년 우르겐치를 공격하는 티무르 군대. 책과함께 제공
1379년 우르겐치를 공격하는 티무르 군대. 책과함께 제공

저자는 티무르의 면모를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무슬림 군주로서 이슬람 전통을 융합해 독특한 제국을 일군 그의 역사적 의의를 새롭게 조명한다.

책에 따르면 칭기스칸 사후 유라시아 세계를 지배하던 몽골제국에도 위기가 닥쳤다. 후계자들 간의 권력 다툼, 광대한 영토를 유지하기 위한 행정적 부담, 각 지역의 독립적 움직임이 겹치며 제국은 빠르게 약화됐다. 몽골제국은 원나라, 일 칸국, 차가타이 칸국, 킵차크 칸국 등으로 분열되었고, 더 이상 ‘세계 제국’이라 부르기 어려운 상태에 이르렀다. 여기에 흑사병까지 겹치며 위기는 가속화됐다.

피터 잭슨/최하늘 옮김/책과함께/5만8000원
피터 잭슨/최하늘 옮김/책과함께/5만8000원

이러한 권력의 공백 속에서 칭기스 왕조 질서의 회복을 내세우며 패권을 장악한 인물이 티무르다. 서구에서는 ‘타메를란’으로 불린 정복자다.

1327년 사마르칸트 근처에서 태어난 그는 명문 황족이 아닌 지역 유력 부족 바를라스 가문 출신이었다. 초원 사회에서 권력의 정당성은 칭기스칸의 혈통 여부에 달려 있었지만, 티무르는 그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이렇듯 한미한 가문 출신의 티무르는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칭기스칸 후손의 딸과 혼인해 ‘구레겐(부마)’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이는 부족과 귀족들에게 자신의 권력을 인정받는 중요한 장치였다.

고고학자 미하일 게라시모프가 티무르의 두개골을 토대로 복원한 흉상. 책과함께 제공
고고학자 미하일 게라시모프가 티무르의 두개골을 토대로 복원한 흉상. 책과함께 제공

그 후 그는 전략적 혼인과 동맹 그리고 무자비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중앙아시아 전역을 장악했다. 비록 칭기스칸의 직계 혈통은 아니었지만 스스로를 ‘칭기스칸의 후계자’로 내세워 정통성을 확보했다. 30여년에 걸쳐 칭기스칸의 후예인 몽골 지배자들뿐 아니라 델리 술탄, 이집트·시리아의 맘루크 술탄 그리고 오스만 술탄 바예지드까지 굴복시키며 유라시아의 맹주로 부상했다. 티무르는 칭기스칸의 군사적 유산을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정치적 연출을 통해 자신만의 제국을 구축했다.

“티무르의 원정에 대한 기록을 읽다 보면 참혹하다는 인상을 받을 수밖에 없다. 티무르가 누구도 탐내지 않을 만한 악명을 얻은 것은 당연해 보인다. 이를 보면 으레 몽골제국의 정복 원정이 떠오른다. 칭기스칸과 마찬가지로 티무르는 막대한 비용이 드는 장기전보다 즉각적인 복종을 선호했다. 항복한 군주들은 대체로 온화한 대우와 관대한 혜택을 기대할 수 있었지만, 저항을 택할 경우에는 가혹한 폭력이 뒤따랐다.”(489쪽)

티무르는 잔혹함으로 유명하다. 페르시아 이스파한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이를 진압하며 주민 약 7만명을 처형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반란을 억제하기 위해 주민들의 머리를 잘라 피라미드 형태로 쌓았다는 기록도 있다. 바그다드를 점령한 뒤에는 약 9만명을 학살했다는 전언도 남아 있다. 저자는 “티무르는 폭력을 단순한 파괴가 아니라 권위와 위엄을 과시하는 무대 장치로 활용했다. 이는 몽골제국의 군사적 지배와는 다른 차원의 정치적 연출이었다”고 설명한다.

흥미로운 점은 티무르는 정복지에서 생포한 장인과 학자들을 사마르칸트로 이주시켜 도시를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로 탈바꿈시켰다. 페르시아의 건축가, 인도의 장인, 아랍의 학자들이 모여들며 사마르칸트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도시 가운데 하나로 변모했다. 그는 폭력으로 확보한 자원을 예술과 건축으로 승화했다. 이는 그가 단순한 전쟁광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관리한 정치가였음을 보여준다.

티무르의 정복은 단순한 영토 확장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몽골제국 붕괴 이후 혼란스러웠던 세계 질서를 재편했다. 그의 제국은 유럽·중동·인도에 걸쳐 새로운 힘의 균형을 만들어냈다. 유럽에서는 티무르의 등장이 오스만 제국의 팽창을 일시적으로 저지하는 효과를 낳았다. 저자는 이를 티무르가 몽골제국 이후 새로운 세계 질서를 재편한 인물임을 보여주는 사례로 제시한다.

티무르는 1405년 중국 원정을 앞두고 사망했다. 그의 제국은 곧 분열했지만, 사마르칸트의 건축과 문화적 유산은 오랫동안 이어졌다. 후대 무굴 제국의 창건자 바부르 역시 자신이 티무르의 후손임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이는 티무르가 단순한 파괴자가 아니라 몽골제국사의 연장선에서 정치적 상징성을 남긴 인물이었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티무르 제국의 핵심 특징을 ‘합성’으로 규정한다. 이슬람적 관행과 초원 유목의 전통, 몽골제국의 이념과 무슬림 군주권의 정치적 이미지를 결합한 복합적 통치 체제였다는 것이다. 그간 잔혹한 정복자라는 면모만 부각됐던 티무르를 몽골제국의 연장선에서 재해석하고, 몽골제국의 분열 이후 몽골·이슬람·튀르크 전통이 교차한 중세 유라시아사의 복잡한 흐름을 이해하는 실마리를 제공하는 노작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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