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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윤의어느날] 유상 옵션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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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가족이 분양받은 아파트의 견본주택에 갈 일이 생겼다. “요즘은 어지간한 건 전부 다 유상 옵션이야.” 언니에게 그런 말을 미리 들어서인지 입구에서부터 벽에 붙은 자그마한 안내판들이 눈에 띄었다. 무상 기본형, 유상 고급형. 단순히 따지자면 그런 말들의 무한반복이었다. 현관 타일을 오염지수가 낮고 내구성이 높은 것으로 하려면, 주방에 수납장이 딸린 조리대가 필요하다면, 팬트리 안에 맞춤형 선반을 설치하고 싶다면 상당한 금액을 지불해야 했다. 천장형 에어컨 설치와 도무지 어디에 쓸지 알 수 없는 평수의 알파룸을 없애고 홈바를 만드는 것처럼 깜짝 놀랄 금액을 부르는 옵션도 있었다.

견본주택은 그야말로 ‘풀옵션’ 상태였는데, 그래서인지 관람객에게 내부를 설명하는 직원들의 말투가 미묘했다. “옵션 선택 안 하시면 저쪽 건 전부 빠지는 거고요, 이쪽 선반만 남는 건데 이게 기본형은 재질이 썩 좋은 게 아니에요. 일이년 쓰면 아무래도 주저앉죠.” “요즘은 안방 안쪽 드레스룸을 이렇게 전시관처럼 꾸며놓거든요. 다들 그렇게 하세요.” 안내판을 보니 애초에 드레스룸은 텅 빈 직사각형 공간이고 붙박이장을 넣는 옵션과 시스템장을 짜 넣는 옵션이 따로 있었다. 나는 조금 질린 기분으로 실내를 둘러보았다. 그러니까 이게 사람들이 모두 원하는 고급의, 현대적인, 누구에게나 과시하고 싶은 모습의 인테리어란 말이지. 집안 곳곳에 표시되어 있는 이른바 ‘고급형’을 모두 선택하면 도대체 얼마를 더 지불해야 하는 건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거실로 나오니 함께 안을 둘러보던 조카가 따라 나왔다. 새집 어디가 제일 마음에 들어? 내가 물었다. 거듭되는 옵션 안내판에 멀미가 날 지경이었지만 실제로 집 안 곳곳이 세련되고 멋졌으니까. 사실 나는 서재와 홈바를 꾸려 놓은 곳에서 얼마간 넋을 잃고 서 있었다. 조카는 잠깐 거실을 둘러보더니 말했다. “뭐가 다른지 모르겠어요.” 그러고는 현관과 그 앞의 방 두 개, 거실과 이어지는 안방을 가리키며 덧붙였다. “지금 사는 집 구조랑 똑같잖아요.”

“이렇게 꾸며야겠다, 저 가구가 마음에 든다 하는 건 없어?” 조카가 싱긋 웃었다. “저는 지금 제 방이 좋아요. 이사 와도 똑같이 해놓을 거예요.” 조카는 아마도 자신의 방일 곳으로 가더니 손으로 이리저리 각도를 쟀다. “여기가 침대, 여기까지가 장식장, 여기 피아노랑.” 조카가 골똘해진 건 자신이 가장 아끼는 굿즈 장식장을 어느 곳에 배치하는가에 대해 생각할 때뿐이었다. 내게 소중한 것들을 내 취향대로 모아놓은 나의 것. 조카는 적어도 그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듯했다.

저녁이 다 되어 내 집으로 돌아오니 오래 외로웠을 개가 눈곱을 매단 채 달려왔다. 카펫 위에 장난감이 서너 개 나동그라져 있었는데, 그것만 봐도 개가 어떤 시간을 보냈을지 알 수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존재가 늘어지게 낮잠을 자다 바닥에 턱을 괴고 나를 기다렸을, 장난감을 이리저리 내던지며 잠깐 심통도 부렸을 아주 작은 공간. 모두가 바라는 유상 옵션의 세계보다 이쪽이 내겐 조금 더 다정한 현실이었다.

안보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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