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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억 현금 없으면 오지도 마세요”…강남 중개업소에 ‘2025년 달력’만 걸린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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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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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잠실 한 달 새 매물 60% 폭증…“1억 낮춰도 문의 전화 한 통 없다” 비명
양도세 공포에 짐 싸는 70대 은퇴자들, ‘징벌적 과세’ 피하려 눈물의 투매 행렬
대출 규제에 실거주 의무 ‘데드락’…정부 규제 칼날에 강남 불패 신화도 ‘동결’

“손님? 말도 마세요. 전화기 코드 뽑아놓은 줄 알았다니까요.”

 

강남권 아파트 매물이 한 달 새 최대 60% 이상 급증하며 ‘매수자 우위 시장’으로의 전환이 본격화되는 모양새다. 뉴스1
강남권 아파트 매물이 한 달 새 최대 60% 이상 급증하며 ‘매수자 우위 시장’으로의 전환이 본격화되는 모양새다. 뉴스1

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동의 한 공인중개사 사무소. 문을 열고 들어서자 훅 끼쳐오는 건 따뜻한 온기가 아닌 서늘한 정적이었다. 10년 넘게 이곳을 지켰다는 김모(58) 씨는 반가움보다 민망함이 앞선 듯 멋쩍게 웃었다. 그의 시선이 머문 곳을 따라가 보니, 사무실 한쪽 벽면에 지난 2025년 12월 달력이 덩그러니 걸려 있었다. 시간이 멈춘 듯한 사무실 풍경은 지금 강남 부동산 시장이 처한 ‘거래 동결’의 현주소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듯했다.

 

정부가 쏘아 올린 고강도 부동산 규제의 파편이 강남 불패 신화의 심장부를 강타했다. “버티면 이긴다”던 집주인들의 맷집도 한계에 다다른 모양새다. 압구정과 잠실 일대 부동산에는 수천만원에서 억 단위로 몸값을 낮춘 급매물들이 ‘떨이’처럼 나와 있었지만, 이를 거들떠보는 매수자는 자취를 감췄다.

 

◆송파·서초 덮친 ‘매물 폭탄’…헬리오시티는 ‘매도 전쟁터’

 

현장에서 체감하는 매물 적체는 데이터보다 심각했다. 부동산 빅데이터 플랫폼 아실의 통계가 이를 증명한다. 4일 기준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3차 아파트’ 매물은 52건이다. 연초 33건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불과 한 달 새 57.5%나 폭증했다.

 

숫자보다 무서운 건 ‘가격표’의 변화다. 현대3차 전용 82㎡ 중층 물건은 최근 55억원에 나왔다. 직전 호가 대비 1억원을 뚝 잘라낸 금액이다. 해당 단지 인근 중개사 최모(62) 씨는 “집주인이 ‘일단 내놓아만 달라’고 사정하는데, 솔직히 보여줄 손님이 없어 난감하다”고 털어놨다.

 

송파구는 그야말로 ‘매도 전쟁터’다. 국내 최대 단지인 가락동 헬리오시티는 한 달 만에 매물이 468건에서 686건으로 쏟아졌다. 잠실 리센츠와 엘스도 매물이 60% 이상 늘었다. 가격 방어선도 무너졌다. 잠실 리센츠 전용 27㎡는 5000만원 내린 17억5000만원에, 헬리오시티 전용 59㎡는 2000만원 인하한 27억8000만원에 호가가 형성됐다. 하지만 거래 성사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세금 낼 돈 없어 판다”…70대 은퇴자들의 ‘비명’

 

강남을 지탱하던 ‘큰손’들이 흔들리는 이유는 명확하다. 바로 ‘세금 공포’다. 이번 매물 급증의 진원지는 다름 아닌 70대 이상 고령 다주택자들이다.

 

법원 등기정보광장 데이터를 뜯어보면 이 흐름이 명확히 읽힌다. 지난달 서울 지역 70세 이상 매도자 수는 2755명으로, 작년 11월(2097명) 대비 31.3%나 늘었다. 특히 강남 3구의 경우 70대 매도자가 같은 기간 48.0% 급증했다.

 

한 세무사는 “은퇴 후 별다른 소득 없이 집 두 채로 버티던 어르신들이 양도세 중과 유예 종료 시점이 다가오자 패닉에 빠졌다”며 “자식에게 물려주자니 증여세가 무섭고, 가지고 있자니 보유세가 무서워 결국 ‘던지기’에 나선 것”이라고 분석했다. 현 정부의 징벌적 과세 예고가 고령층의 심리적 마지노선을 무너뜨린 셈이다.

 

◆‘10·15 대책’의 역설…현금 부자 아니면 ‘그림의 떡’

 

문제는 집주인들이 백기 투항하며 매물을 던져도, 이를 받아줄 매수자가 없다는 점이다. 정부의 강력한 대출 규제인 ‘10·15 부동산 대책’이 시장의 혈관을 꽉 막아버렸기 때문이다.

 

현재 15억원 초과 주택의 주택담보대출 한도는 4억원, 25억원 초과는 2억원에 불과하다. 강남권 아파트 대부분이 25억원을 훌쩍 넘는 현실을 고려하면, 사실상 ‘대출 불가’ 통보다.

 

한때 불티나게 팔리던 강남 아파트 시장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연합뉴스
한때 불티나게 팔리던 강남 아파트 시장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연합뉴스

KB부동산의 매수우위지수(강남 11개구)가 95.18로 떨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매수자가 우위에 선 시장이라지만, 대출 없이 현금 20억~30억원을 동원할 수 있는 ‘슈퍼 현금 부자’가 아니고서는 급매물조차 ‘그림의 떡’이다.

 

잠실의 중개업소에서 만난 김 씨는 빼곡히 적힌 매물 장부를 툭 덮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겠다는 사람이 와야 가격 흥정도 하고 중개를 하죠. 정부는 집값 잡았다고 좋아할지 몰라도, 여기 현장은 그냥 다 죽으라는 소리로밖에 안 들립니다.”

 

◆퇴로 막힌 시장, 피해는 결국 서민에게

 

정부가 매물을 유도하기 위해 거래 기간을 늘려주는 당근책을 만지작거리고 있지만, 현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이라는 거대한 족쇄와 ‘임대차 3법’이 충돌하며 퇴로를 막고 있어서다.

 

잠실의 또 다른 중개사는 “집주인이 웃돈까지 줘가며 세입자를 내보내려 해도 ‘배째라’ 식으로 나오면 답이 없다”며 마른세수를 했다. 실거주 의무 때문에 매수자는 입주를 해야 하는데, 세입자가 나가지 않으면 거래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데드락(Deadlock)’ 상태다.

 

강남 부동산 시장은 지금 멈춰 섰다. 정부의 강력한 규제 드라이브가 집값을 끌어내리는 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거래 자체를 실종시키며 시장의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 매도자와 매수자, 세입자까지 모두가 패자가 되어가는 이 ‘잔혹사’가 언제쯤 끝날지, 2025년 달력이 걸린 중개업소의 정적만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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