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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프리즘] 산은 비가 많이 와서 무너진 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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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태는 ‘자연의 변덕’이 아닌
인간이 만든 환경이 던지는 경고
재난을 운으로만 이해하는 순간
다음 ‘화’를 줄일 기회도 사라져

‘비가 많이 오면 산이 무너진다.’ 우리는 산사태를 이렇게 이해해 왔다. 뉴스 자막도 늘 비슷하다. “집중호우로 인한 산사태 발생.” 이 문장은 틀리지는 않다. 하지만 너무 많은 것을 생략한다. 비는 매년 내려왔고, 산은 수백년 동안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런데 왜 어떤 해, 어떤 산, 어떤 마을에서만 산사태는 ‘재난’이 되는 것일까.

나는 토목공학, 그중에서도 지반공학을 전공했다. 흙과 물, 그리고 힘의 관계를 계산하는 학문이다. 지금은 소방·방재를 가르치는 인문사회융합대학에 몸담고 있다. 공학에서 출발해 재난을 사람의 삶과 제도의 문제로 바라보는 위치에 서게 되면서, 산사태는 더 이상 자연이 일으킨 단순한 사고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산을 이해하고, 이용하고, 방치해 온 방식이 만들어낸 결과에 가깝다.

김상엽 건국대학교 교수·소방방재융합학
김상엽 건국대학교 교수·소방방재융합학

공학적으로 보면 산사태의 핵심은 비의 ‘양’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비가 내리기 전, 산이 어떤 상태였는가다. 비가 오면 물은 흙 사이로 스며든다. 흙은 원래 물을 머금으며 그 무게를 내부에서 분산시키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흙 속에 이미 많은 물이 저장되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물은 더 이상 스며들지 못하고 ‘포화’가 되며 표면을 따라 흐르기도 한다. 흙 입자 사이를 지탱하던 힘은 급격히 약해지고, 결국 중력을 이기지 못한다. 산사태는 비가 가장 많이 오는 순간이 아니라 흙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는 순간에 발생한다.

그래서 최근 산사태 연구에서는 단순한 강우량보다 토양 수분, 즉 흙 속에 이미 저장된 물의 양을 중요하게 본다. 같은 하루 100mm의 비라도, 며칠 동안 비가 이어진 뒤에 내린 100mm와 오랜 가뭄 끝에 내린 100mm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다. 산은 그날의 비만 기억하지 않는다. 이전의 비, 이전의 습기, 이전의 배수 조건을 차곡차곡 쌓아두었다가 어느 순간 한계에 도달한다. 산사태는 ‘갑작스러운 붕괴’가 아니라 누적된 변화가 한 번에 드러나는 장면이다.

산사태는 결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숲이 사라지고, 길이 나고, 집이 들어서고, 배수로가 바뀌는 동안 산의 몸속은 조금씩 달라져 왔다. 물이 스며드는 길이 인위적으로 바뀌고, 흙이 버티는 방식도 변한다. 이 변화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산이 갑자기 무너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산은 오래전부터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비가 오면 물이 고이던 사면, 반복되던 작은 붕괴, 해마다 조금씩 넓어지던 균열들이다. 문제는 이런 신호들이 위험이 아니라 불편함 정도로 취급되었다는 데 있다.

산사태가 특히 위험한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생활 공간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산 아래 마을은 경관이 좋고, 바람이 시원하며, 개발 비용도 상대적으로 적다. 우리는 이런 이유로 산과 가까워지는 선택을 해왔다. 더 나아가 도로와 철도, 주거지와 산업단지 같은 삶의 인프라를 만들기 위해 산을 인위적으로 깎고, 사면을 정리하며, 터널을 굴착해 왔다. 이 선택들은 현대 사회를 유지하는 데 불가피한 것이었고, 지금의 생활을 가능하게 한 기반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산의 형상과 내부 구조는 조금씩 달라졌다. 물이 스며들고 빠져나가던 길이 바뀌고, 흙이 버티던 균형도 함께 조정되었다. 산은 더 이상 그 자리에 ‘그대로’ 있지 않았다. 산은 배경이 아니라 스스로 균형을 유지하는 자연시스템이다. 인간의 시간 감각으로는 느리게 보이지만, 그 내부에서는 끊임없이 변화와 조정이 일어난다. 우리가 그 균형을 바꾸면 산은 다른 방식으로 반응할 뿐이다.

우리는 재난을 종종 ‘운이 나빴다’고 말한다. 그렇게 말하면 마음은 편해진다. 하지만 재난을 운으로만 이해하는 순간, 다음 재난을 줄일 기회도 함께 사라진다. 산사태는 자연의 변덕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온 환경이 던지는 질문이자 경고다. 재난을 줄이는 해법은 거창하지 않다. 사면의 작은 변화를 무시하지 않고, 이를 통해 위험 지역을 미리 아는 것. 기술과 행정은 이를 뒷받침해야 하고, 전문가는 쉬운 언어로 설명해야 한다. 재난은 전문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이기 때문이다.

비가 많이 와서 무너진 것이 아니다. 산은 이미 오래전부터, 무너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김상엽 건국대학교 교수·소방방재융합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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