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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된 넷플릭스엔 없어요”…20세기 영상의 방주에 갔다 [김동환의 김기자와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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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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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묘 중고 비디오테이프 가게

40여년 명작 영화 지하 창고까지 가득
‘레트로 감성’ 인테리어 소품으로 각광
“영화 감동 깊게 보던 어린 시절 떠올라”
추억 환기시킬 특정작품 소장용 구매도

세계적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가 올해로 한국 상륙 10주년을 맞이했다. 언제 어디서나 손가락 하나로 수만편의 영상을 소비하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지난 10년은 한국인의 미디어 소비 습관을 송두리째 바꾼 거대한 해일과 같았다.

지난 9일 동묘앞역에서 청계천을 건너 마주한 김원일씨가 운영 중인 중고 비디오테이프 가게에 과거 명작으로 남은 수많은 테이프가 마치 성벽처럼 쌓여 보관되고 있다.

콘텐츠가 무형의 데이터로 흐르는 시대가 되자 안방극장 주역이었던 비디오테이프는 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유물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모든 것이 디지털로 치환되는 세상에서 서울 종로구 한 골목에는 아직 마그네틱 테이프의 투박한 숨결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지난 9일 방문한 동묘벼룩시장 인근의 한 중고 비디오테이프 가게에는 넷플릭스의 알고리즘이 흉내 낼 수 없는 40여년에 걸친 예술의 물리적 아카이브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오랜 영화의 거대한 보물창고

서울지하철 1·6호선 동묘앞역에서 내려 청계천을 건너면 옛 흔적이 담긴 레코드판과 전자기기들이 즐비한 골목이 나타난다. 비디오 키워드로 수소문하며 “이제는 더 이상 팔지 않는다”는 답변만 듣던 그때 발견한 이곳은 세월의 풍파를 정면으로 맞은 낡은 간판 아래 수북이 쌓인 테이프 더미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었다.

이 가게는 중고 카세트테이프와 함께 비디오테이프를 취급하며 지하 1층 창고까지 가득 찰 정도로 방대한 물량을 보유해 기자를 놀라게 했다. 조명에 의지해 지하 창고로 내려가는 계단 한편에는 세월의 흐름만큼이나 먼지가 층층이 내려앉은 테이프들이 마치 성벽처럼 쌓여 있었다.

테이프에 입혀진 작품 이름을 보던 중 “무엇을 찾느냐”며 등장한 김원일씨는 영상업계 출신으로 동묘에서 오랫동안 비디오테이프를 판매해 온 이 분야의 산증인이다.

1990~2000년대 한국 영화의 자존심이었던 ‘넘버3’와 ‘투캅스 2’, ‘행복한 장의사’부터 ‘살인의 추억’, ‘실미도’ 같은 대작을 담은 테이프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매트릭스’, ‘타이타닉’, ‘리셀 웨폰’, ‘어 퓨 굿 맨’ 등 할리우드 명작들과 ‘라이온 킹’, ‘슬램덩크’, ‘마스크’ 같은 유명 애니메이션도 눈에 띄었다. 보유한 테이프 수량조차 가늠하기 힘든 거대한 창고는 단순한 상점이 아니라 한국 대중문화의 궤적을 실물로 보존하고 있는 박물관과 같았다.

◆사라지지 않은 마그네틱의 가치

놀라운 사실은 여러 지역에서 흘러들어 유물처럼 남은 테이프가 여전히 활발히 거래 중이라는 점이다. 테이프 한 장의 가격은 3만여원. 누군가는 넷플릭스 한 달 구독료보다 훨씬 비싸다고 반문할 법하다.

고객층은 의외로 다양하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과거의 시대적 질감을 재현하려는 영상제작 분야 관계자부터 독특한 인테리어로 매장을 꾸미려는 식당 사장 등이 이곳을 찾는다. 매장 분위기에 맞추려 일본 작품을 찾았다던 일식집 사장 사례 전언처럼 이곳은 누군가에게 대체 불가능한 소품 창고다.

최근에는 레트로 감성에 매료돼 비디오테이프로 실내를 장식하려는 젊은 층까지 가세하면서 서울 시내에서 이만한 보물창고를 찾기란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특히 추억을 사러 오는 이들도 적지 않다. 어렸을 때 부모님과 함께 봤던 특정 작품의 테이프를 소장함으로써 그때의 온기를 다시 느끼려는 이들이다.

넷플릭스가 매일 수천개의 콘텐츠를 추천하지만 그 안에는 정작 내가 가장 사랑했던 그 시절의 질감은 부재할 때가 있다. 어쩌면 여기는 서울 시내에서 과거 작품을 비디오테이프라는 물리적 실체로 구할 수 있는 마지막 장소일지도 모른다.

◆옛 추억의 소중한 거점

김씨가 지켜온 이 지하 공간은 단순히 낡은 물건을 파는 가게가 아니라 디지털 홍수 속에서 살아남은 문화적 노아의 방주와 같다. 넷플릭스가 우리에게 무한한 선택의 자유를 선사했지만, 역설적으로 우리는 무언가를 곁에 두고 소중히 간직하는 소장의 가치를 잃어버렸다.

비디오테이프는 우리가 무엇을 보았는가를 넘어 누구와 함께 그 시간을 공유했는지를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물리적 실체다. 연체료를 낼까 걱정하며 반납 기한에 맞춰 작품을 감상하고, 다 본 테이프는 정성스레 되감아 반납하던 그 시절의 매너를 떠올리게 하는 이 가게는 편리함과 속도에 가려진 우리 삶의 온기와 옛 추억을 되찾아주는 소중한 거점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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