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넘게 진행 중인 고려아연과 MBK파트너스·영풍의 경영권 분쟁이 고려아연의 미국 제철소 투자를 기점으로 새 국면을 맞은 가운데 21일 양측이 미국 사업을 두고 공방을 벌였다. 고려아연의 지분 10%를 미국 측이 갖는 데 대해 MBK·영풍이 낸 가처분 신청에 대한 법원 결정이 임박하면서 양측 여론전이 격화하는 양상이다.
MBK·영풍 측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미국 제련소 최종 성사 여부와 관계 없이 고려아연의 신주 10%를 미국 합작법인이 갖게 된다며 비정상적이라고 문제제기했다. 이들은 “고려아연의 미국 제련소 건설과 관련해 최종 합작 계약이 체결되지 않아도 (한·미) 합작법인(JV)이 고려아연 지분 10%를 그대로 보유하게 되는 비정상적인 구조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MBK·영풍은 고려아연이 미국 측과 체결한 ‘사업제휴 프레임워크 합의서’에 고려아연이 발행하는 신주의 효력이나 회수·소멸에 대해 어떤 규정도 마련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MBK·영풍은 “통상적인 합작 사업에서는 최종계약을 통해 권리와 의무가 명확히 확정된 후 신주 발행이 이뤄지지만, 본 건에서는 신주 발행이 최종계약 체결 전에 먼저 진행돼 계약 성립 여부와 무관하게 JV가 지분을 확보하게 된다”며 “최종계약이 무산되더라도 고려아연은 지분을 되돌릴 법적 수단을 갖지 못한 채 주주들의 지분만 희석하는 구조가 된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미국에 제련소를 건설하는 것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합의서에 고려아연에만 의무를 부과하고, 최종계약 체결 여부와 무관하게 이미 배정된 고려아연 지분을 되돌릴 방법이 없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고려아연은 입장문을 내고 반박했다. 고려아연은 “MBK와 영풍은 ‘고려아연 최대주주’라고 강조하면서 미 제련소 건설이 계획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는 비상식적인 가정을 토대로 비난하고 있다”며 “명백한 혀위”라고 꼬집었다. 이어 “미국의 정부와 전략적투자자, 대형 금융기관이 미 제철소 건설을 위해 직접 투자와 금융 지원하는 규모가 무려 67억6000만달러(약 10조원)에 달한다”며 “제련소 건설에 투입되는 74억달러(약 11조원)의 91%를 미국 정부 등이 책임지기로 한 것은 신속히 제련소를 건설하고 지속가능한 운영 구조로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려아연은 “MBK와 영풍은 국제 정세와 국익, 첨단산업 발전 흐름에서 고려아연이 다양한 역할을 요구받고 있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기회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을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며 “이사회 장악에만 혈안 돼 세계 최대 핵심광물시장인 미국 시장을 선점할 절호의 기회를 잃게 만들려 악의적 시도를 반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앞서 고려아연은 미국 테네시주에 약 11조원을 투자해 통합 비철금속 제련소를 건설하면서 ‘크루서블 JV’를 설립하고 이 JV에 고려아연 지분 10%를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넘기기로 했다. 크루서블 JV는 미국 정부(전쟁부·상무부)가 최대주주(40%)로 참여하고, 고려아연은 10%를 투자한다. 나머지 50%도 미국 내 전략적 투자자가 참여하기 때문에 미국 측이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다.
이번 제련소 건설 프로젝트는 지난 8월 한미 정상회담의 경제 사절단으로 동행한 최 회장이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 등 미국 고위급 인사들과 접촉하면서 추진됐다. 핵심광물의 탈중국 공급망 구축을 원하는 미국 측과 고려아연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며 사업은 급물살을 탔다. 지난 10월 말 경주 한미 정상회담을 수행하며 방한한 러트닉 장관은 최 회장을 다시 만나 ‘최대한 빨리, 많은 물량’을 요구하며 제련소 추진을 위한 행정·금융 지원을 약속한 것으로 전해졌다. 러트닉 장관은 이번 프로젝트에 대해 “미국의 핵심 광물 판도를 바꾸는 획기적인 딜”이라고 평가했다.
고려아연 경영권을 놓고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과 분쟁 중인 MBK·영풍은 제련소 건설 소식이 나오자 “내년 3월 주주총회를 앞둔 최 회장 측의 경영권 방어를 위한 시도”라며 반발했다. JV 지분 10%가 최 회장 측 우호 지분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고려아연이 오는 26일 유상증자 대금을 납입하고 220만9716주를 신주로 발행하면 의결권 주식 기준으로 MBK·영풍 측 지분은 43.42%가 되고, 최 회장 측 지분은 18.76%로 올라간다. 최 회장 측 우호 지분으로 분류되는 한화(8.15%)와 신설 JV(11.21%), LG화학(1.99%) 등에 국민연금(5.08%)까지 합하면 최 회장 측 지분은 총 45.53%로, MBK·영풍 측 지분(43.42%)을 넘어설 전망이다. 내년 3월 주총에서 최 회장 측 일부 이사들의 임기가 끝남에 따라 이사회 추가 진입을 노려온 MBK·영풍 입장에서는 표 대결 구도가 뒤집힌 셈이다. 고려아연 이사회는 현재 최 회장 측 11명, MBK·영풍 측 4명으로 구성돼 있다.
MBK·영풍은 즉시 법원에 고려아연을 상대로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19일 심문기일을 열고 양측 주장을 들었다. 법조계에서는 유상증자 대금 납입기일이 오는 26일인 만큼 법원이 22일쯤 가처분 신청 관련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법원의 가처분 기각·인용 여부에 따라 내년 고려아연 주총에서 양측의 희비는 엇갈릴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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