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미 무역전쟁 국면서 희토류 카드
공급망 장악해 강력한 외교 무기로
트럼프 1기 땐 자제… 전략 달라져
GDP 세계 2위, 구매력 기준은 1위
경제 급성장에 외부 충격 감당 자신
일본엔 비공식 지속적 압박 ‘한일령’
단순 공세 과거보다 선택지 늘어나
올해 벌어진 미국과의 무역전쟁 국면에서 중국은 물러서지 않고 강공을 택했다.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 대한 추가 관세 가능성을 거론하자 중국은 바로 맞불 관세를 놓은 데 이어 희토류 수출 통제라는 민감한 카드를 꺼내 들었다. 중국 역시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선택이었다. 결과적으로 양국은 확전을 피하고 휴전에 가까운 조정 국면으로 들어갔다.
중국은 최근 일본과의 마찰에서도 ‘한일령’ 등으로 수위를 조절해 가며 공세에 나섰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대만 유사시 자위대의 개입 가능성을 언급하자 중국은 외교 경로와 국제무대를 통해 압박 강도를 끌어올렸다. 이후 다카이치 총리는 발언 자체를 철회하지는 않았지만 “정부 입장을 넘은 것으로 받아들여진 점을 반성한다”며 수위를 낮췄고, 대만 관련 언급을 자제하는 태도로 돌아섰다.
중국이 이처럼 잇달아 강공을 택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단순한 외교전술 이상의 변화가 깔려 있다. 과거와 비교하면 중국의 경제규모가 완전히 달라지며 체급이 올라갔고 감당할 수 있는 충격의 크기 역시 커졌다.
현대 첨단산업에 필수적인 희토류 역시 틀어쥐고 있다. 단순히 갈등 상황에서 공세를 취하느냐를 넘어 언제, 얼마나 세게 나올지 완급을 조절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이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것이 아니다. 중국이 일본을 상대로 희토류 수출 통제를 처음 꺼내 들었던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지금의 중국 전략이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비교적 분명해진다.
◆희토류라는 무기
중국이 외교·통상 갈등에서 꺼내 든 여러 카드 가운데 가장 상징적인 수단은 희토류다. 희토류는 이름과 달리 매장량이 극도로 희귀한 자원은 아니지만 정제와 가공 과정이 까다로워 공급망이 특정 국가에 집중되기 쉽다. 중국은 이 병목 구간을 오랫동안 장악해 왔고, 그 사실을 외교적 압박수단으로 명확히 드러낸 계기가 2010년이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중국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2010년 일본을 처음 추월했다. 공교롭게도 같은 해 중국과 일본은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싸고 정면 충돌했다. 일본 측이 중국 어선을 나포하자 중국은 외교적 항의에 그치지 않고 희토류 수출을 사실상 묶는 방식으로 압박에 나섰다.
로이터통신은 당시 “중국에서 일본을 향해 출발하던 희토류 선적이 사실상 중단됐다”고 전했다. 공식적인 수출 금지 조치는 하지 않고 통관 지연과 행정 절차를 이용하면서 일본 산업계는 즉각적인 충격을 받았다. 희토류는 전기차 모터, 반도체 공정, 정밀기계, 군수 장비 등 첨단산업 전반에 쓰이는 핵심 소재다. 가격보다 중요한 것은 대체 가능성인데 단기간에 다른 공급처를 찾기 어렵다는 점에서 ‘보이지 않는 병목’으로 작용한다.
당시 중국의 선택은 실험에 가까웠다. 중국 역시 손해를 감수해야 했으며 국제사회의 반발도 거셌다. 일본은 공급선 다변화에 나섰고 미국과 유럽도 중국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목표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하지만 일본은 곧 억류한 중국인 선장을 석방해야 했고, 결국 중국의 전략은 먹힌 셈이 됐다.
2010년의 경험은 중국에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희토류는 관세보다 빠르고 군사적 긴장보다 위험 부담이 적은 압박수단이라는 점이었다. 동시에 희토류 카드는 무작정 휘두를 수 있는 도구가 아니라 타이밍과 대상에 따라 신중히 선택해야 하는 무기라는 점도 확인했다. 중국은 이후 한동안 희토류 카드를 꺼내지 않은 채 관리해 왔다. 이 봉인된 무기가 다시 등장한 것이 최근 미·중 무역전쟁이다.
◆“감당할 수 있다” 판단
최근 중국은 커진 경제 규모와 힘을 외교와 통상 갈등에서 어디까지 사용할 수 있는가를 꾸준히 시험하는 모양새다. 지난 10여년간 중국은 자국 충격을 줄이는 방법과 충격을 상대에게 집중시키는 방법을 동시에 익힌 것으로 보인다.
IMF에 따르면 중국의 명목 GDP는 지난해 기준 미국에 이은 세계 2위로, 구매력평가 기준으로는 이미 미국을 앞섰다. 성장률 둔화에도 체력은 오히려 두터워졌다는 평가다. 경제 규모가 커지면 같은 충격도 체감 강도가 낮아진다. ‘맞을 수 있는 펀치’가 늘어난 셈이다.
경제 구조도 변했다. 세계은행(WB) 자료를 보면 중국의 최종소비 지출은 GDP의 약 55% 수준으로 상승했다. 수출 감소가 곧바로 경제 전반의 충격으로 이어지던 시기와는 조건이 달라졌다. 외부 충격을 흡수할 완충 장치가 늘어났다는 의미다. 여기에 국유기업의 비중, 정책 금융, 지방정부의 동원력은 단기 충격을 버틸 수 있게 만든다. 시장의 고통은 어쩔 수 없다 해도 충격이 정치적 위기로 번지는 속도는 늦출 수 있다.
이 같은 변화는 미·중 무역 갈등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1기 행정부 시절 벌어진 1차 미·중 무역전쟁에서 중국은 대규모 관세 보복에 나섰지만 희토류 수출을 바로 통제하진 않았다. 반면 올해 미·중 무역 갈등에서는 중국이 먼저 희토류라는 비대칭적 수단을 꺼내 들었다.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10월 미·중 무역전쟁을 다룬 기사에서 중국은 무역전쟁이 단순한 관세 전쟁이 아니라 공급망 취약성의 전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짚었다. 그리고 올해 전쟁에서 중국은 희토류를 통해 미국이 사용한 ‘수출 통제’ 전략을 되돌려준 셈이다.
◆경제 수단이 외교 무기로
최근 중·일 갈등이 2010년 센카쿠 사태와 다른 점도 주목된다. 당시 중국은 희토류 수출 통제라는 고강도 경제 압박을 선택했지만, 이번에는 같은 카드를 사용하지 않았다. 일본과의 교역·투자관계가 과거보다 더 복잡해진 현실이 배경에 깔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신 외교적 압박과 국제 여론전, 문화·관광 분야의 비공식 제약을 병행하며 압박 수위를 조절했다.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 이후 중국은 일본 여행과 유학에 대한 ‘자제 권고’ 같은 간접 신호를 쌓았고, 유엔 무대에서도 발언 철회를 요구하며 압박을 강화했다. 푸충 유엔 주재 중국대표부 대사가 다카이치 발언을 강하게 비판하며 철회를 요구했다는 보도는 중국이 이 사안을 양자 갈등에 머무르게 두지 않고 국제무대로 확대하겠다는 신호로 읽힌다.
동시에 문화·관광 분야에서는 ‘한일령’으로 불리는 저강도·비공식 제약이 거론됐다. 일본 연예인의 중국 방송 출연이나 일본 콘텐츠의 유통이 지연되는 방식이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이후 한국에 적용됐던 전면적 ‘한한령’과 비교하면 강도는 낮아도 조치를 길게 가져갈 수 있다. 전면 차단은 반발을 키우는 반면 부분적 지연은 상대에게 ‘불확실성 비용’을 축적시키기 때문이다.
이 같은 압박 속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16일 “대만 관련 발언이 정부 입장을 넘은 것으로 받아들여진 것을 반성할 점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다만 발언 철회 요구에는 응하지 않았고, 존립위기 사태 해당 여부는 “실제 상황에 따라 종합적으로 판단할 것”이라며 기존 답변을 되풀이했다.
미·중과 중·일 갈등을 나란히 놓고 보면 중국의 전략 변화가 잘 드러난다. 트럼프 1기 때는 자제했던 희토류 카드를 이번에는 과감히 꺼내 들었고, 일본을 상대로는 희토류 대신 저강도·지속형 압박을 선택했다. 중국이 이처럼 ‘세게’ 나올 수 있게 된 이유를 한 단어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중국이 과거보다 더 많은 선택지를 갖게 됐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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