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위 50주년 맞아 회고록 ‘화해’ 펴내
독재자 프랑코에 의해 후계자로 발탁
한때 스페인 민주화를 상징하는 영웅이었으나 각종 비리 의혹이 불거져 결국 스스로 왕좌에서 내려온 스페인 전 국왕 후안 카를로스 1세(87)가 회고록에서 프란시스코 프랑코(1892∼1975)에 대한 여전한 존경심을 드러냈다. 프랑코는 군부 쿠데타로 스페인 정권을 잡은 뒤 수십년간 철권 통치를 한 독재자이나, 자신의 후계자로 후안 카를로스 1세를 선택해 그가 스페인 왕위에 오를 수 있도록 한 인물이기도 하다.
11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후안 카를로스 1세가 올해 즉위 50주년을 맞아 ‘화해’(Reconciliation)라는 제목의 회고록을 펴냈다. 이 책은 프랑스 여성 작가 로랑스 드브레(49)가 공저자로 참여했으며, 그래서인지 프랑스어판(11월 5일)이 먼저 나오고 뒤늦게 스페인어판(12월 3일)이 공개됐다. 영어판은 오는 18일 출시될 예정이다.
후안 카를로스 1세는 예전부터 프랑코에 대한 호의적 태도를 숨기지 않았다. 이번 회고록에서도 그는 “나는 프랑코 장군을 엄청나게 존경했고, 그의 지성과 정치적 감각을 높이 샀다”는 말로 각별한 감정을 드러냈다. 요즘 스페인은 청년층을 중심으로 옛 프랑코 독재 체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움직임이 거세게 일고 있는데, 후안 카를로스 1세는 바로 이 같은 현상이 회고록을 집필하게 된 원인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1936년 민주 공화국이던 스페인에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다. 당시 아프리카의 스페인령 모로코에 주둔하고 있던 프랑코 장군이 반란의 주역이었다. 정부군과 반란군의 대치는 내전으로 이어졌고 소련이 정부군을, 나치 독일과 파시스트 이탈리아는 반란군을 각각 지원하면서 국제 분쟁으로 비화했다. 3년에 걸친 내전 끝에 1939년 결국 반란군이 승리하며 스페인은 프랑코의 군사 독재 치하에 들어갔다.
후안 카를로스 1세는 1931년 스페인에 공화정이 수립되며 쫓겨난 전 국왕 알폰소 13세의 손자다. 그가 1938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났을 때 왕정은 진작 폐지되고 없어진 상태였다. 그런데 1960년대 들어 늙어가던 독재자 프랑코의 눈에 이 왕실 출신 젊은이가 띄었다. 프랑코는 1969년 당시 31세이던 후안 카를로스 1세를 공식 후계자로 지명했다. 1975년 마침내 프랑코가 죽자 스페인은 왕정으로 돌아갔고, 프랑코의 유언에 따라 후안 카를로스 1세가 국왕으로 즉위했다.
‘스페인이 계속 독재 국가로 남을 것’이란 국제사회의 예상을 깨고 후안 카를로스 1세는 1978년 헌법 개정을 단행하며 입헌군주제 그리고 의원내각제를 도입했다. 국왕은 형식상의 국가원수일 뿐 민주적 선거로 구성된 의회에서 뽑힌 총리가 실권을 행사하도록 한 것이다. 이에 반발한 군부가 1981년 쿠데타를 시도하자 후안 카를로스 1세는 앞장서 내란을 막아냈다. 아울러 국민 통합까지 이끌어냈다. 그가 ‘스페인 민주화의 영웅’으로 추앙을 받게 된 이유다.
하지만 후안 카를로스 1세의 생애 말년은 아름답지 못했다. 그는 온갖 여성과의 불륜 스캔들은 물론 지나치게 호화로운 생활로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더욱이 공금 횡령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더는 악화한 여론을 견디지 못하고 2014년 장남이자 현 국왕인 펠리페 6세(57)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으로 내려앉았다. 그 뒤에도 사우디아라비아 고속철도 건설 사업과 관련해 뇌물을 받은 정황이 드러나며 2020년 결국 스페인을 떠나는 길을 택했다. 현재 그는 외국에 살고 있으며 가끔 행사 참석 등을 위해 일시적으로 스페인을 방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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