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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배우 김지미 별세, 그가 ‘동양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로 불린 이유

입력 : 2025-12-10 22:00:00 수정 : 2025-12-10 15:22:58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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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AI) 재구성한 배우 김지미의 젊은 시절 모습.

원로배우 김지미(본명 김명자)가 미국에서 별세했다. 향년 85세.

 

김지미는 1960∼197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이자 은막의 스타로 긴 전성기를 누렸다.

 

당시 보수적이던 사회상과 달리 자유로운 연애와 결혼을 이어가며 주체적 삶을 살았던 신여성이기도 했다.

 

대한민국 영화계를 빛낸 김지미는 아름다움과 연기력, 그리고 파란만장한 삶으로 인해 ‘동양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로 불린다.

 

1950년대 후반에 데뷔한 이래, 그녀는 한국 영화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얼굴이었으며, 스크린 안팎에서 늘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김기영 감독의 영화 ‘황혼열차’로 혜성처럼 등장한 그는 첫 작품부터 신선한 마스크와 뛰어난 잠재력을 인정받으며 단숨에 충무로의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멜로, 시대극, 문예 영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활약하며 ‘충무로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얻다. 당시 그의 출연은 곧 영화의 흥행을 보장하는 보증수표와 같았다.

1950년대 말 배우 김지미의 모습. 사진=서울문화제단 갈무리

김지미가 ‘동양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로 불리는 가장 큰 이유는 그녀의 개인적인 삶이 대중에게 늘 큰 화제였기 때문이다.

 

할리우드의 전설 엘리자베스 테일러처럼 김지미 역시 시대를 앞서간 당당한 여성으로서 여러 차례의 결혼과 이혼을 겪으며 끊임없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는 18세였던 1958년 홍성기 감독과 결혼했다가 4년 만에 이혼했다.

 

이후 당대 인기 배우 최무룡과의 결혼과 이혼은 세간의 화제가 됐다. 최무룡은 당시 이혼 발표 기자회견에서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말을 남겨 회자했다.

 

이후 김지미는 나훈아와의 결혼 발표로 또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했고, 그와는 6년 만인 1982년 사실혼 관계를 정리하고 헤어졌다.

 

1991년에는 심장 전문의 이종구 박사와 결혼했으나 2002년 다시 이혼했다.

원로배우 김지미. 연합뉴스

한편 김지미는 배우에 머무르지 않았다. 1980년대에는 ‘지미필름’을 설립하고 영화 제작자로 변신하여 한국 영화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

 

그는 당시 “배우로서 경험한 모든 것을 바탕으로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며 “한국 영화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수백 편의 영화에 출연하고 한국 영화계를 이끌어온 김지미는 한국 영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수많은 상을 수상했다.

 

비록 이 세상에서는 물러났지만, 그가 한국 영화사에 남긴 족적은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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