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가사관리사 본사업 결국 좌초
시간당 1만3700원 책정에 연일 잡음
내국인 관리사들 “생태계 파괴” 반발
강남 3구 쏠림에 “더 낮춰야” 주장도
가사사용인 사업도 참여 저조로 폐기
“최저임금 사각지대 양산” 비판 일어
전문가들 “인력난 근본 원인 살펴야”
정부 인증기관 확대·처우 개선 주문
‘필리핀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이 공식 종료를 두 달 앞두고 있다. 본 사업으로의 전환은 결국 ‘없던 일’이 됐지만 정부와 서울시의 실험이 어떤 시사점과 과제를 남겼는지 제대로 살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8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한국에 남아 있는 필리핀 가사관리사 인력은 83명이다. 지난해 100명이 입국했으나 6개월 근로계약이 종료된 뒤 일부가 고국으로 돌아갔다. 82명은 가사서비스 인증기관 업체와 재계약했고, 1명은 사업장을 변경해 강원도에 있는 호텔에서 근무 중이다. 비전문 취업(E-9) 비자로 입국한 이들은 사업장 변경 신청을 통해 음식점, 호텔업 등에서 일할 수 있다.
애초 이 사업은 지난해 9월부터 6개월간 시범사업 뒤 1200명 규모로 확대하는 것으로 구상됐다. 시범사업 내내 비용 문제, 인력 이탈 등 잡음이 끊이지 않았고, 결국 올해 2월 이들의 근로계약을 1년 연장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9월 취임 뒤 첫 기자간담회에서 해당 정책에 대해 “성공하기 어렵다고 본다. 종료할 예정”이라고 했고, 심지어 타 부처인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도 국정감사에서 “문제가 많아서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싼 노동력’ 집착이 부른 실패
‘죽은 정책’이라는 부처 안팎의 평가 속에서 전문가들은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고 제언한다. 그중 가장 핵심으로는 ‘싼 가격으로 돌봄 노동을 제공하겠다’는 취지가 꼽힌다. 지난해 시간당 이용료는 1만3700원으로 내국인 가사관리사보다 저렴했는데 사업이 진행되는 가운데서도 비용을 더 낮춰야 한다는 논란이 있었다. ‘이용 가구의 41%가 강남 3구에 몰려있다’는 게 비용을 더 낮춰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로 작용했다.
조혁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정책 입안 논리 자체가 잘못됐다는 입장이다.
그는 “인력난이 있으니 외국인을 도입하자는 건데, 많은 연구자 의견이 인력난의 원인을 먼저 분석하자는 것”이라며 “좋은 일터로 만들면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잘 유입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외국인 요양보호사도 같은 논리를 적용하면 실패가 뻔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서비스 이용료가 낮게 책정되면서 내국인들 반발도 거셌다.
황혜경 한국가사노동자협회 사업국장은 이 사업을 ‘생태계 파괴’로 정의했다. 그는 “외국인들 시급이 아주 낮게 책정돼 내국인 관리사들은 ‘시장 경제를 흐리지 말자’고 주장했다”며 ‘을과 을의 갈등’을 만든 셈이라고 짚었다.
최영미 한국노총 가사·돌봄유니온 위원장도 내국인들이 화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회상했다. 외국 인력이어서가 아니라 저임금이라는 점에서다.
그는 “내가 하는 일이 그렇게 값싼 일인가에 대한 분노였다”며 “일자리를 빼앗긴다는 건 두 번째고, ‘내 임금이 언젠가는 더 떨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가사관리사들 사이에 팽배했다”고 말했다.
정책 홍보가 ‘비용’에 맞춰지면서 ‘강남 사람이 쓰는 서비스’라는 오명도 붙었다. 최 위원장은 “커뮤니티 등에서 ‘월 200만원이 넘게 드는데 맞는 정책이냐’는 의견이 올라왔는데 이용자들에게 전달되는 정보가 부족했던 탓”이라고 했다.
업무 경계가 불명확한 점도 문제였다. 아이를 위한 식사 준비, 세탁 등은 가능하지만 아이와 무관한 청소, 설거지 등 집안일은 규정상 안 된다. 그러나 현장 증언에 따르면 일부 가사관리사는 이용자의 친적 집까지 가서 청소하는 경우도 있었다. ‘생리팬티까지 빨았다’, ‘아이 돌보는 일을 하지 않아 업체에 가정을 바꾸고 싶다고 했지만 바꿔줄 수 없다고 했다’는 경험담도 속출했다.
◆처우 개선·인증 기관 확대 필요
윤석열정부는 이 사업의 연장선에서 최저임금이 적용되지 않는 외국인 가사사용인 사업도 추진하려 했다. 법무부가 지자체 수요를 받아 진행하려던 이 사업은 외국인들의 참여 저조로 올해 9월 모집 단계에서 폐기됐다.
전문가들은 정책 입안자들이 법을 무시할 생각부터 했다는 점에서 잘못됐다고 비판한다. 필리핀 가사관리사 21명을 인터뷰해 연구한 이미애 제주대 학술연구교수는 “돌봄 정책을 공공화하려는 기조에 (정부가) 역행해 갈등을 양산했고, 결국 행정력 낭비로 이어진 것”이라고 꼬집었다.
외국인 가사사용인 시범사업은 2022년 시행된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가사근로자법) 취지와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 법은 가사서비스 시장을 양지로 끌어올리고 가사근로자의 권익 보호를 강화한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가사근로자를 직접 고용해 서비스를 하려면 정부 인증을 받아야 하며, 가사근로자는 임금과 법정 근로시간 등이 명시된 계약을 체결한다. 가사사용인을 확대하자는 건 종사자들을 다시 최저임금법이 적용되지 않는 사각지대로 내몰자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지적이 일었다.
문제는 업체들이 인증받을 유인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가사근로자법 시행 3년 반이 지났으나 인증을 받은 기관은 123곳에 그치며, 이마저도 지역별 편차가 크다. 소속 근로자는 3800여명 정도로 국내 가사근로자(총 30만명 추정) 대비 1.3%만이 정부 인증기관에 속해 있는 꼴이다. 노동부는 유인을 확대하기 위해 인증기관과 소속 근로자에게 고용보험료 및 국민연금보험료의 80%를 지원하다가 올해 10인 미만 사업장으로 대상을 축소했는데 내년에 다시 규모에 상관없이 지원한단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인증기관 활성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가사노동자들을 공식 시장으로 끌어들이는 게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과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조 연구위원은 “가정에서 노동자를 직접 고용할 시엔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마땅한 주체가 없어 여러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업체들도 고충 처리 등 역할 면에서 노하우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내국인이 일하고자 하는 조건을 만드는 게 우선순위에 놓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 교수는 “외국인이라고 해서 노동 조건이 달라져서는 안 되며, 외국인이든 내국인이든 일하고 싶은 환경이 돼야 한다는 게 돌봄노동 정책의 전제가 돼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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