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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차 멈춰 세우고… 국민이 지킨 민주주의 [심층기획-12·3 비상계엄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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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12-01 06:00:00 수정 : 2025-12-01 08:03:28
이도형·이예림·배민영 기자, 편집국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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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그날 밤의 기록

평온한 밤 뒤흔든 尹 ‘기습계엄’
기자·시민들 앞다퉈 국회 달려가
권력의 총부리 온몸으로 맞서

尹 “비상계엄” 한 마디에 온 나라 혼란
대통령실 달려간 기자들 군인에 가로막혀

기말시험 준비하던 도서관 갑자기 술렁
쉴새없이 ‘카톡’ ‘카톡’… 급히 떠나는 사람들
국회 앞서 다시 만난 같은 대학 학우들

우원식 국회의장
비밀리에 이동시킨 경호대장
‘전기 끊길라’ 국회 배전실이름표 뗀 직원

모두가 민주주의 지킨 ‘역사의 주인’

2024년 12월3일. 국민들은 해가 진 이후에도 평소와 다르지 않은 일상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오후 10시23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대국민 발표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국가 운영 체계는 급격히 비상 국면으로 전환됐다. 국민들은 밤새 자발적으로 국회로 모여들고 각자의 자리에서 대응하며 민주주의의 중대한 위기를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고, 결국 위기의 확산을 저지했다.


◆‘현실’이 된 계엄…기록의 시작

 

계엄 선포 직전 윤석열정부 대통령실의 일부 움직임이 언론에 포착되긴 했으나, 대통령이 ‘계엄’을 직접 언급할 것이라고 예상한 이는 거의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계엄은 1980년 5월17일 이후 45년간 발동된 적이 없었다.

밤늦게 대통령실이 방송사에 생중계 여부를 문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세계일보를 포함한 언론사들은 대통령이 심야에 직접 브리핑을 할 것이라는 점만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 대통령이 긴급히 발표할 사안이 명확하지 않아 발표 내용을 예측하기는 어려웠다. 일각에서는 “남북정상회담 관련 발표일 수 있다”,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입장 표명일 가능성이 있다”는 등 다양한 관측만이 조심스럽게 제기됐다.

 

오후 10시23분 윤 전 대통령의 담화가 시작됐다. 윤 전 대통령은 오후 10시28분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라고 밝히며 계엄을 선포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2024년 12월3일 긴급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있는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야근 중이던 대통령실 직원들조차 방송을 보고서야 상황을 파악했을 정도로 기습적인 계엄령이었다. 정부 부처 공무원들도 마주한 현실을 믿지 못한 채 “방송국이 해킹당한 것 같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갑작스러운 계엄 선포에 시민들의 휴대전화는 쉴새 없이 울렸다. 카카오톡을 통해 계엄 소식이 사실인지를 묻는, 이 상황을 믿지 못하겠다는 소식이 계속 전달됐다. 데이터 폭주로 카카오톡의 메시지 수·발신 알림이 제대로 되지 않기도 했다.

 

세계일보 정치부를 포함한 언론사 정치·사회부 기자들은 계엄 선포 직후 회사와 국회 등으로 긴급 소집됐다. 기자들은 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실과 비상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질 국회로 분주히 이동했다. 대통령실 인근에서는 계엄군이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국방부 청사 서문 앞에서는 기자들이 “왜 기자실 출입을 막느냐”고 항의하며 군사경찰과 기싸움을 벌였다. 기자들은 노트북 가방만 든 채 군사경찰의 제지를 어렵게 뚫고 서문을 통과했지만, 청사 현관에서 다시 이동이 제한됐다. 군사경찰이 기자실을 통제하고 있는 모습이 창문 너머로 보이자, 기자들은 국방부 맞은편 전쟁기념관으로 이동해 속보 작성과 송고를 이어갔다.

 

2024년 12월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계엄령 선포에 반대하는 시민 및 이를 저지하는 경찰 병력들이 모여 혼잡스러운 상황을 빚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로 향하는 시민들…막아서는 경찰

 

 

계엄 소식이 전해지자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으로 모여들었다. 학생, 직장인, 자영업자 등 다양한 이들이 현장에 나타났다. 야간근무 중 동료에게 업무를 맡기고 온 근로자, 새벽 근무를 앞두고 잠시 상황을 확인하러 온 환경미화원도 있었다.

 

 

신촌 소재 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다니는 이재균(가명·26)씨는 당시 동아시아정치경제론 기말고사를 앞두고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 중이었다. 오후 10시30분쯤 이씨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친구가 보낸 카톡에 계엄 선포 소식이 담겨 있었다. 조용했던 도서관은 순식간에 “2024년에 무슨 계엄이냐”, “내일 강의는 휴강이냐”며 수군거리는 학우들의 목소리로 가득찼다. 이씨는 곧바로 책을 덮고 도서관 밖으로 나왔다. 추위도 잊은 채 서울지하철 2호선 신촌역에서 당산역으로 향했다.

 

 

오후 11시쯤, 국회 정문 쪽에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이 많아졌다. 경찰은 이미 국회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혼란 속에서도 사람들은 각자 방식으로 목소리를 냈다. 춤을 추는 사람도 있었고 마이크를 든 사람도 있었다. 이씨 또래도 많았다. 같은 대학 학우들이 와서 인사를 건넸는데 그새 단톡방이 만들어진 모양이었다. 이씨는 구호를 외치거나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못했다. 현장 분위기가 너무 비현실적이었고, 어떤 구호를 외쳐야 할지도 몰랐다.

 

2024년 12월 3일 오후 11시경 대통령 비상계엄으로 경찰이 통제 중인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우원식 국회의장이 담을 넘어 본청으로 향하고 있다. 국회의장실 제공

◆뒤집힌 정치권…경찰 뚫고 국회로

 

우원식 국회의장은 계엄 소식을 한남동 국회의장 공관에서 들었다. 옷을 갈아입은 뒤 곧바로 국회로 향했다. 김성록 경호대장이 함께했다. 우 의장은 “평소에는 국회경비대에 출입 예정 시각을 통보해 주었는데, 이날 김 경호대장은 국회로 달려가는 강변북로 위에서 국회경비대에 우리의 위치를 알리지 말라고 경호관들에게 지시했다”고 회고했다. 우 의장과 함께 있던 조오섭 의장비서실장은 “그날 나도 그랬고, 김 경호대장도 분명히 죽음을 각오했다”고 말했다.

 

오후 11시10분쯤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는 경내로 들어가려는 국회 직원들과 이를 막으려는 경찰이 한창 대치하고 있었다. 한 경찰관은 “여러분 지금 오셨죠. 저희도 지금 와서 절차에 따라 국회의원들 확인해서 들여보내고 있는 겁니다”라고 했다. 현역 의원들의 출입만 허용한다는 것도 어불성설이지만, 경찰은 그날 밤 의원들의 출입도 막았다. 국회 봉쇄작전에 동원된 경찰관들은 국회 외곽 경비를 맡은 서울경찰청 국회경비대 소속이다. 곳곳에서 “말도 안 된다”, “경찰이 왜 우리를 막냐”고 반발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경찰은 거센 항의에 못 이겨 11시15분쯤 국회 출입증 소지자들의 출입을 허용했지만, 그마저도 잠시였을 뿐이다.

 

본회의장으로 속속 모여든 이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나. 대통령이 미쳤다”고 했다. 정치·언론활동을 제한한다는 내용의 계엄 포고령이 발표된 직후에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국회로 들어왔다. 당시 국회에 있던 정치인들을 비롯한 국회 관계자, 기자들은 전부 ‘포고령 위반자들’이었다. 만약 계엄이 성공했더라면 영장 없이 체포될 수 있는 처지였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2024년 12월 3일 저녁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밤 서울 국회의사당에서 계엄군이 국회 본청으로 진입하고 있다. 연합뉴스

계엄군을 실은 헬기가 오후 11시50분쯤 국회 경내에 착륙하면서 긴장감은 더욱 고조됐다. 국회사무처 직원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소속 보좌진과 당직자 등은 계엄군의 진입을 저지하기 위해 책상과 의자, 소파 등 온갖 집기류를 끌어모아 출입문을 봉쇄했다. 운동권 출신 민주당 의원들과 보좌관들이 봉쇄작전을 지휘했다. 계엄군은 4일 0시39분 국회 본관 유리창을 깨고 들이닥쳤다. 8분 뒤인 0시47분 우 의장이 계엄 해제요구 결의안 처리를 위한 국회 본회의를 개의했다.

 

◆‘바리케이드’ 친 국회…‘2차 계엄’ 우려도

 

계엄군 진입 소식에 국회 직원들은 “본회의장을 사수해야 한다”고 소리치며 본관 3층 본회의장 입구를 겹겹이 둘러쌌다. 계엄군은 로텐더홀로 연결된 계단을 통해 곧장 본회의장으로 향할 태세였다. 하지만 계단으로 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복도 끝 출입문에서 국회 직원들의 총력 저지에 가로막혔다. 어떤 이는 계엄군의 진입을 막기 위해 소화기를 분사했다. 상황을 본회의장에서 유튜브 중계로 보던 한 의원은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저놈들(계엄군)이 지금 최루탄을 터뜨린 것이냐”고 물었다.

 

국회의장실 비서관들과 국회사무처 직원들은 뛰어다니며 모든 사무실의 불을 켰다. 우 의장 위치를 숨기기 위해서였다. 일부 사무처 직원들은 전기 배전실의 명패를 떼어 버렸다. 혹시나 계엄군이 들어와 전기를 차단시킬까봐였다.

 

0시57분 누군가 “계엄군이 4층으로 진입할 수 있다”고 외쳤다. 본관 4층에는 본회의장 방청석으로 들어갈 수 있는 출입문이 있다. 만약 4층이 뚫린다면 계엄군이 곧장 방청석에서 줄을 타고 본회의장으로 내려갈 수도 있었다. 국회 직원들은 “방청석을 방어해야 한다”며 4층으로 급히 뛰어올라 갔다. 1시1분 본회의장에서 계엄해제 결의안 투표가 시작됐고, 재석 의원 190명 전원 찬성으로 통과됐다.

 

본회의장 안팎에서 안도의 한숨이 나오는 가운데 윤 전 대통령의 2차 계엄 선포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의원들과 국회 직원들은 추가 계엄을 즉각 해제하기 위해서라도 한동안 비상 대기를 해야 했다. 실제 계엄해제 결의안 통과 후에도 경찰의 국회 인근 도로 통제는 계속됐다. 기자는 국회 앞 도로에 아무렇게나 세워 뒀던 차를 계엄 해제 결의안 통과 후 국회 둔치 주차장으로 옮기려 했으나 경찰에 가로막혔다. “국회의장이 ‘계엄령 선포는 무효가 됐다’고 선포하지 않았나”라고 따지자 경찰관은 말했다. “아직 대통령이 계엄해제 선포를 하지 않았잖아요.”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2024년 12월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 인근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해제 관련 담화를 지켜보며 환호하고 있다. 뉴스1

국회 의결 3시간 뒤인 오전 4시27분. 아직 태양이 떠오르지 않은 깜깜한 밤. 윤 전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를 해제했다. 이재균씨는 오전 5시쯤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여러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만 봤던 정치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해 깊은 고민이 있었다. 양극화로 인해 파국을 맞이한 정치현실이 참담했다. ‘역사’가 끝나고 일상은 가까스로 복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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