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구급차 안에서 병원 응급실을 찾지 못해 헤맨 환자가 끝내 숨졌다는 보도를 접하곤 한다. 이러한 비극의 직접적 원인은 의료 시스템의 공백이겠으나, 근본적인 이유와 해법에 대해서는 시각이 분분하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의료진의 윤리의식이나 병원의 무책임에서만 원인을 찾는다면 결코 올바른 해결책에 도달할 수 없다는 점이다.
경제학에서 고정비란 임대료처럼 생산량과 무관하게 지출되는 비용이다. 그렇다면 필수의료에서 고정비는 무엇일까. 응급실을 운영하는 병원의 시설 유지비도 있겠지만, 의료진 입장에서 겪는 무형의 고정비도 생각해볼 수 있다. 불특정 다수의 응급환자를 위해 24시간 대기해야 하는 노동,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비롯된 스트레스, 배후 진료 의료진의 부재나 다른 병원으로 전원(轉院) 불가 상황에서 느끼는 무력감, 그리고 무엇보다 결과가 나쁠 때 닥쳐올지 모르는 수십억원대 소송과 형사처벌의 위험이 바로 그것이다. 지방 개원의에겐 환자 감소로 인해 임대료와 같은 유형의 고정비조차 감당하기 종종 버거운 게 현실이다.
요컨대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면 의사가 특정 과목이나 지역에 종사하기 위해 치러야 할 유·무형의 고정비가 늘어난 반면 이를 상쇄할 진료비 수입 증가나 재정 지원은 따르지 않아 발생한 구조적 문제가 드러난 것이 현재의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과거에는 사회적 존경이나 충분한 수입이 이 고정비를 상쇄했다. 그러나 지금 저출산과 수도권 쏠림현상에 환자가 급감한 과목과 지역은 인건비, 재료비 등 유형의 비용 증가와 소송 등 무형의 비용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비용이 수입을 초과하는 상황이라면 리스크를 회피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이런 붕괴를 막으려면 고정비를 줄이거나 수익을 늘리거나 아니면 적자를 보전해주어야 한다. 무엇보다 무형의 고정비를 낮춰야 한다. 환자에게 10%의 희망이라도 있다면 의사가 주저 없이 시도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나머지 90%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의사 개인에게 전적으로 묻는다면 방어 진료와 기피 현상을 막을 수 없다. 실패의 위험을 의사 개인의 재산이 아닌 보험이나 국가 보상체계로 나누어질 필요가 있다.
진료비 수입 구조의 현실화도 필요하다. 생명과 직결되지만 의사들이 기피하는 과목이나 인구수가 적은 지역의 의료수가를 대폭 인상해야 한다. 현재의 건강보험 상대가치 점수제는 총량이 고정되어 있어 특정과의 수가를 올리려면 다른 과를 깎아야 하므로 합의가 어렵다. 또한 언제 바뀔지 모르는 한시적 정책 가산금만으로는 30~40년 또는 그 이상 업을 이어가야 할 의사들에게 확신을 주기 어렵다. 적어도 해당 과목을 선택했을 때 유무형의 고정비를 확실하게 상회할 수 있다는 믿음을 줄 정도의 보상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적자 보전의 도입도 고려돼야 한다. 환자가 없어도 대기하는 것 자체가 고정비이다. 진료행위별 수입에만 의존하는 구조에서는 대기가 많거나 진료행위의 수가 적으면 필연적으로 적자가 발생한다. 소방서가 출동 건수와 무관하게 유지되듯 필수의료 인력과 병원에는 인건비와 운영비를 고정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그래야 어떤 응급 상황에서도, 어떤 지역에서도 운영할 수 있는 준비 태세가 유지될 수 있다.
의사가 특정 과목이나 지역을 떠나는 건 그곳이 더는 경제적으로, 심리적으로 살 수 없어서다. 조속한 정책적 결단 없이는 이러한 이탈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김경수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kyungsoo.kim@barunlaw.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왕설래] 경찰 노조](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5/11/23/128/20251123510240.jpg
)
![[특파원리포트] 대마도는 누구 땅인가](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5/11/23/128/20251123510235.jpg
)
![[이종호칼럼] 건강한 대한민국, AI가 길을 열다](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5/11/23/128/20251123510222.jpg
)
![[김정기의호모커뮤니쿠스] 입씨름은 말고 토론해야 할 때](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5/11/23/128/20251123510230.jpg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