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석륜 인덕대 교수가 일본 근대문학의 영웅으로 칭송받는 소세키의 문학적 출발이 소설가가 아니라 하이쿠 시인이었음을 보여 주는 ‘나쓰메 소세키의 하이쿠’를 출간했다. 하이쿠는 일본에서 발원한 자연과 인간의 내면을 연결하는 5-7-5의 열일곱 자로 된 짧은 시다. 소세키는 ‘지난 천 년 동안의 일본 문학 작가에 대한 독자 인기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할 만큼 일본 근대문학의 거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중견 시인이자 일본 근현대시 연구의 권위자인 오 교수는 책에서 소세키의 주옥같은 하이쿠 133편을 엄선하여 번역하고, 작품마다 인생과 계절과 우주의 질서를 다정다감한 목소리로 이야기처럼 들려준다. 충실한 해설은 소세키의 문학 세계를 깊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겹겹이 달린/ 덕은 외롭지 않은/ 귤나무로세
(累々と德孤ならず蜜柑哉)
덕(德)은 귤나무처럼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하이쿠 풍으로 살려, ‘논어’의 한 구절인 “덕이 있으면 따르는 사람이 있으므로 외롭지 않다(덕불고필유린, 德不孤必有隣)”를 겹겹이 달린 귤나무에 비유했다. 그 기상천외한 발상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방적공장의/ 피리 소리 울리고/ 겨울비 오네
(紡績の笛が鳴るなり冬の雨)
새로운 소재인 ‘피리 소리’에 착안했다. 참신한 발상으로 작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것은 기존의 전통적인 하이쿠의 발상에서 벗어난 무척이나 자유로운 사고를 반영한다.
두들겨 맞고/ 낮 모기 토해내는/ 목탁이로세
(叩かれて昼の蚊を吐く木魚哉)
목탁은 불공을 할 때나 사람들을 모이게 할 때 두드려 소리를 내는 기구지만, 한편으로는 세상 사람을 깨우쳐 바르게 인도할 때도 쓰는 상징성도 있다. 소세키는 스님이 목탁을 치면 목탁 속에 숨어 있던 모기가 도망갈 것을 상상했다. 그것은 곧 목탁을 통한 번뇌로부터의 탈출이 아닐까. 이 짧은 하이쿠에 목탁과 모기를 배치한 것은 소세키의 시인으로서의 재능이다.
두견새여/ 나가기 어려웠네/ 똥 누느라고
(時鳥厠半ばに出かねたり)
당시 세간에서 화제가 된 작품이다. 무엇보다 재미있다. 두견새의 목소리를 들었으나, 똥 누느라고 그 목소리도 그 모습도 보러 갈 수 없어서 유감이라는 뜻이다. “똥 누느라고”는 ‘뒷간에서 볼일 본다’는 뜻이다. 변소, 화장실을 당시에는 뒷간이라고 불렀다. 원문에 나오는 한자 측(厠)은 뒷간 ‘측’. 두견새는 당시의 수상 사이온지 긴모치(西園寺公望, 1849-1940)를 가리킨다.
나태주 시인은 추천사에서 “나의 후기 시에는 하이쿠의 영향을 받아 쓴 시가 많다. 독자들이 좋아하는 ‘풀꽃’ 시도 그 가운데 한 편이라 할 수 있다. 근현대 일본 문학의 영웅 나쓰메 소세키의 하이쿠 시집 원고를 받아 읽었다. 한마디로 놀라웠다. 나는 소세키를 일본의 소설가로만 알았는데 그가 이렇게 많은 하이쿠를 쓴 시인이라니! 소설가이기에 앞서 시인이었다니! 일단은 나의 무지를 한탄해 본다”고 썼다. 소세키의 제자로, 하이쿠 시인·수필가·물리학자로 활약한 데라다 도라히코는 “소세키의 하이쿠를 알지 못하고 그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했다.
오 교수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소개된 소세키의 하이쿠 단행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하이쿠가 어떤 매력을 품고 있는지 들여다보는 순간, 커다란 울림과 함께 행복이 찾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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