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용 평전 1·2/ 강명관/ 푸른역사/ 전 8만8000원
실학자, 북학파, 개혁적 사회사상가. 우리가 교과서로 만나는 담헌 홍대용(1731∼1783)은 지전설과 우주무한설을 주장한 과학자로 소개된다. 부산대 한문학과 명예교수인 강명관은 이 통설을 정면으로 뒤집는다. 경학과 심성론, 역사비평, 천문학과 자연학, 수학, 음악학, 중국 연행록, 청나라 지식인들과 주고받은 편지에 이르기까지 담헌이 남긴 방대한 문헌을 섭렵한 끝에 저자가 내린 결론은 명확하다. “홍대용은 개혁가가 아니라, 실천적 정주학자였다.”
저자는 홍대용의 사유를 실학이나 과학사상이라는 근대적 틀로 재단하지 않는다. 그가 주자의 도를 부정한 적 없으며, 다만 실천 없는 주자 맹신을 경계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담헌이 진시황의 분서를 정당하다고 본 평가도 그의 철저한 정주학적 사고의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담헌이 지구 자전설과 우주 무한론을 제시한 ‘조선의 코페르니쿠스’라는 찬사 역시 허상에 가깝다. 저자는 홍대용의 자연학이 관측과 수학이 아닌, 정주학의 기(氣)론에서 비롯된 선언적 상상에 머물렀다고 지적한다. 그가 만든 혼천의가 관측기구가 아니라 천체 모형이었으며, 서재 천장에 별자리 그림을 붙여 놓고 천문학 연구에 열중했다는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말이다. 지구 자전을 말하면서도 공전에는 침묵했기에, 지구중심설을 깨뜨린 코페르니쿠스에 비견하기에는 어폐가 크다.
평등사상가로 홍대용의 이미지 역시 재검토가 필요하다. 담헌의 글 어디에도 민(民)에 대한 언급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는 노비를 거느린 지주였고, 영천 군수로 재직할 때 진휼곡을 착복하고 백성에게 빌려주어 갑절의 이자를 받아내려 했다는 사실까지 지적된다. ‘임하경륜’ 등 저서에 담긴 그의 ‘개혁책’은 구체적 실천론이라기보다 단편적 구호에 그친다. 그가 ‘의산문답’에서 화이(華夷)의 구분을 허구라 한 것도 ‘민족 주체성’의 표현이라기보다, 청나라 지식인들과의 사귐을 중시했던 사적 맥락을 살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가 그려내는 홍대용의 입체적 인물상은 기존 주류의 해석과 사뭇 다르다. 16년의 집필과 3년의 편집을 거쳐 완성된 총 1400쪽 분량의 책은 면밀한 문헌 연구를 바탕으로 실학파에 대한 고정된 인식을 뒤흔드는 대작이다. 담헌이 남긴 저작의 다채로움 탓에 국문학과 한문학, 과학사, 한중관계사 등 분과별로 쪼개어 연구되어온 한 인물의 일면들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려는 귀중한 시도이기도 하다. 나아가 담헌을 다시 보는 일은 18세기 후반 조선 사족 사회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복원하는 일이자, 그에게 ‘자생적 근대화의 싹’을 투영하고자 했던 20세기적 상상을 해체하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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