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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왕조 천년의 유물…숨결 불어넣는 문장력

입력 : 2025-11-15 06:00:00 수정 : 2025-11-13 20:14:29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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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 고궁박물원 36점 선정
푸른 샘물 들어온 듯 고요한 ‘정요’
궁극의 미학이자 작은 배추 ‘취옥’
유물에 깃든 인간·시간·미감 풀며

문학적 상상력 가미해 심상

애착유물/ 정잉/ 김지민 옮김/ 글항아리/ 3만2000원

 

타이베이 고궁박물원은 세계 최대의 중화 문명 유물 보관소다. 중국의 수천 년 왕조와 제국이 남긴 예술의 정수가 그 안에 잠들어 있다. 문학자이면서 미술 저술가인 저자는 이 박물원의 거대한 보물창고에서 핵심 유물 36점을 선정해 유물을 보는 법,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방식, 감상의 태도까지 알려주고 있다. 제목에서 보듯 ‘애착’의 시선으로 유물을 바라보며, 그 안에 깃든 인간과 시간, 미감(美感)을 전한다. 그가 해설하는 유물마다 미술적 감식과 문학적 상상력이 담겨 있다. 그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유물 하나하나가 ‘역사적 사물’이 아니라 ‘이야기를 품은 존재’가 된다.

저자는 송나라의 관요청자 등 국보 36점에 대한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유물을 둘러싼 시간과 장인의 손길을 그만의 언어미감과 정서로 풀어냈다. 사진은 청나라 ‘취옥백채’ 글항아리 제공
북송 여유 ‘청자무분수선문’. 글항아리 제공

저자가 책에서 최고로 꼽은 ‘북송 여요 청자무문수선분’에 대한 해설은 압권이다. “이 순간, 우리가 타이베이 고궁의 도자기 전시 구역에 들어왔다고 상상해 보세요.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정요입니다. 전시장을 따라 천천히 걷다가 상아색 정요(定窯·송나라 백자)가 나타나면 우리의 마음속에도 안정감이 생깁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머리를 쓰다듬어준 것처럼, 허톈(값비싼 옥의 산지) 백옥을 손에 쥔 것처럼 더없이 따뜻하고 안정적인 느낌을 받습니다. 계속 앞으로 가봅시다. 언뜻 내다보면 우리 시야에 푸른 샘물이 들어온 것 같아서 마음이 고요해지죠. 이게 바로 여요(汝窯·송나라 청자로 미세한 균열무늬가 특징)입니다. ‘비 갠 뒤의 푸른 하늘에서 구름이 걷힌 곳, 이런 색깔을 만들어내라.’ 소나기가 그친 뒤 깨끗이 씻긴 듯한 푸른 하늘. 여요의 색깔은 흰 구름이 살짝 흩어진 뒤 드러나는 가장 깨끗한 푸른색입니다. (중략) 지금, 이 수선분은 타이베이 고궁박물원의 전시장 속에 조용히 앉아서 우리를 응시하고 있습니다. 천 년이라는 세월이 눈 깜짝할 새 지났건만, 인간 세상은 여전히 안녕합니다.” 저자의 글에는 미술적 감식과 문학적 상상력이 공존한다. 특히 “시야에 푸른 샘물이 들어온 것 같아 마음이 고요해진다”는 문장은 저자의 탁월한 문장력과 심미안을 그대로 보여준다.

황실의 보물 상자 ‘다보격(多寶格)’인 청나라 건륭시기 ‘천부구립함’. 글항이리 제공

옥색과 백색이 빚은 ‘천년의 미(美)’로 불리는 취옥백채(翠玉白彩) 대목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옥처럼 맑은 푸른빛과 흰빛의 조화가 돋보이는 옥조각이다. 청나라 도자예술이 추구한 궁극의 미학을 상징하며 멀리서 보면 작은 배추 한 포기로 보이기도 한다. “타이베이 고궁 최고의 스타로, 아무도 이것을 대체하지 못한다. 높이 18.7㎝, 넓이 9㎝로 살짝 평형을 이루고 있으며, 두께는 5㎝에 달한다. 흰 바탕에 푸른색을 띤 취옥을 교조(巧雕)하여 만들었다.(중략) 배추는 누구나 다 안다. 이 배추를 우리 집에 심은 배추와 비교해보고, 그 위에 있는 곤충 두 마리를 가지고 따져볼 수 있다. 이건 여치인가? 아니면 메뚜기인가? 이 배추를 그럴듯하게 조각했는지 말았는지 품평할 수 있다!” 그의 해설이 독자의 예술적 심상을 자극한다.

정잉/ 김지민 옮김/ 글항아리/ 3만2000원

유물 ‘다보격(多寶格)’도 흥미롭다. 다보격은 황제의 장난감 상자다. 작은 칸마다 대만의 국보가 들어 있는 조형물이다. 저자는 ‘서랍 한 칸씩 여는 기분’으로 독자가 읽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 구조를 빌려 자신의 책을 구성했다. 박물관의 차가운 유리 안에서 잠들어 있던 시간들이 그의 문장을 따라 다시 숨을 쉰다. 책은 유물에 대한 역사와 사연, 농축된 예술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국내 미술사나 역사 전공자들에게 “유물을 감상하려면, 해설하려면 이 사람처럼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번역출간했다는 게 출판사 측의 설명이다. 책 말미에 “당신이 유물을 응시하면 유물도 당신을 응시한다”는 어록을 전하는 저자의 감식안과 해설, 글쓰기가 발군이다. 박물관 안내서이지만 한 편의 잘 쓴 산문집으로 읽힌다. 타이베이 고공박물관 방문 계획이 있는 독자에게 매혹적인 중국 유물 안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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