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 병목·인력 부족 해결 난망
모듈형 생산 방식 가장 현실적
중장기적 협력 방안 도출 시급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도입이 현실화되고 있다. 오랜 기간 미국의 비확산 정책과 한·미 123협정에 가로막혀 있던 이 문제는 최근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보유를 공개적으로 용인하면서 새로운 국면에 진입했다.
하지만 넘어야 할 고비도 적지 않다. 정상회담 다음 날 트럼프 대통령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핵잠수함 승인을 재확인하면서, 건조 장소로 미국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지목했다. 그러나 필라델피아 조선소는 상선 중심의 민간 시설로 핵추진잠수함을 건조할 기본 인프라가 갖춰져 있지 않다.
제도적 장벽도 높다. 한국 기업이 참여하더라도 ITAR(무기수출통제), FAR·DFARS(연방 조달 규정), 미국 에너지부의 핵안전 기준, NAVSEA(미 해군 해양체계사령부)의 기술·품질 감독을 동일하게 적용받게 된다. 미국이 겪는 잠수함 생산 병목과 숙련 인력 부족은 이미 널리 알려진 문제다.
한국보다 앞서 핵잠수함 승인을 받은 호주는 어땠을까? 호주는 오커스(AUKUS: 미국·영국·호주 군사협력체) 체결(2021년)을 통해 미국이 1958년 영국 이후 단 한 번도 허용하지 않았던 민감한 핵추진 기술 이전을 예외적으로 승인받았다. 하지만 미국의 생산능력 부족으로 공급 일정이 지연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호주는 국내 건조 인프라와 인력이 턱없이 부족해 단기간에 생산 기반을 마련하기 어렵다.
반면 한국은 사정이 다르다. 선체 설계, 비핵 시스템 통합, 정비 생태계에 이르기까지 세계 최고 수준의 조선 기반을 갖추고 있어, 미국의 생산 공백을 보완할 뿐 아니라 자체 건조 능력까지 갖추고 있다.
그렇다고 ‘전량 국내 건조’ 또는 ‘전량 미국 건조’ 같은 이분법적 선택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전량 국내 건조는 군사용 원자로, 핵연료주기, 핵물질 보안 등 민감 기술의 특성상 미국의 감독 없이는 불가능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승인에도 미국의 잠수함 생산능력을 확장하려는 전략적 계산이 깔렸을 것이다. 반대로 전량 미국 건조도 한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 선체, 전투 체계, 저소음 추진 기술, 정비 등은 한국이 경쟁력을 가진 핵심 분야이기 때문이다.
이를 고려하면 핵잠수함의 가치사슬을 기능별로 분리해 한·미가 분담하는 모듈형 생산 방식이 현실적일 수 있다. 이는 이미 미국 내부에서 활용되고 있고, 영국·호주도 오커스 2단계에서 선택한 방식이다. 한국이 약정한 대미 투자 3500억달러 중 1500억달러가 조선업에 배정돼 있는 만큼, 핵잠수함 모듈 생산은 안정성과 전략성을 겸한 투자처가 될 수 있다.
수출통제 측면에서도 기회가 있다. 미국은 오커스 방산협력을 촉진하기 위해 ITAR §126.7을 개정해 호주·영국에 대한 수출통제 절차를 대폭 완화했다. 한국이 핵잠수함 협력을 진전시킨다면 유사한 예외조항을 협상할 현실적 기반이 생긴다.
또한 한국의 핵잠 추진을 호주와 경쟁 구도가 아닌 상호보완적 구조로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한국이 핵추진잠수함 생산을 중심으로 하는 오커스 필라1과 첨단 과학기술 협력을 목표로 하는 필라2 참여를 논의하는 데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국제 규범 측면에서도 한국은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군사용 핵추진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민수용 보장조치의 적용을 받지 않아 검증 공백이 있으며, 오커스 국가들도 이를 보완하는 추가 조치를 설계 중이다. 한국은 저농축연료(LEU) 사용, 핵연료 이동의 투명한 회계, 정기 검증을 포함한 ‘한국형 보장조치’를 제안해 국제적 신뢰를 미리 확보해야 한다.
오커스 출범 이후 한국의 핵잠수함 보유가 좌초될 것이라는 우려가 컸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미국의 병목, 한국의 조선 역량, 강화된 동맹의 전략적 가치가 맞물리며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있다. 핵추진잠수함은 향후 30년간 해양 전략을 좌우할 중장기 프로젝트다. 정치권과 산업계가 함께 현실적이고 협력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최윤정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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