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무려 26년의 오랜 세월. 산천이 세 번째 바뀐 오랜 기다림 속에서도 그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도전하고 있었다. 지난 2일 끝난 KPGA 투어 렉서스 마스터즈(총상금 10억원)에서 생애 첫 우승컵을 치켜든 김재호(43) 프로의 이야기다.
김재호는 프로야구 김용희(70) 롯데 2군 감독의 아들. 1999년 그가 KPGA 세미프로 테스트에 합격했을 때 인터뷰를 했다. ‘미스터 롯데’로 불렸던 아버지의 유명세에 스포츠면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그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김재호도, 김 감독도 세월 속으로 묻히는 듯했다. 2023년부터 롯데 2군 감독을 맡아 야구계로 복귀한 아버지의 응원에 힘을 받아서였을까?
김재호는 경기 여주시 페럼클럽(파72·7273야드)에서 열린 대회 마지막 날 4라운드까지 최종 합계 2언더파 286타를 쳐 황중곤 등 3명과 연장전에 돌입한 뒤 첫 홀인 18번 홀(파5)에서 버디를 잡아 우승컵을 치켜올렸다. 9년의 2부 투어 생활을 견딘 그가 2008년 KPGA 투어로 뛰어올랐으니, 1부 투어 입문으로 따진다고 해도 17년의 늦깎이 우승이다.
놀랍고 반가운 소식에 아버지 김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다. 김 감독은 “나는 부산에서 마무리 훈련 중이고 재호는 투어를 다니니 언제 얼굴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동안 힘든 여정을 극복하고 목표를 이룬 재호가 대견하다”고 했다. 또 “나이 들어서도 체력 관리를 잘하고 있어 오래 뛸 수 있을 것”이라는 바람을 슬쩍 나타냈다.
김재호가 골프클럽을 잡게 된 것은 김 감독이 메이저리그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야구 연수를 받던 19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네 골프장을 가는 날이면 카트를 탈 수 있는 재미에 아버지를 졸랐다. 부산으로 돌아와서도 쇼트트랙, 야구, 태권도 등으로 운동감각을 키운 그는 고교 졸업과 동시에 KPGA 세미프로에 합격했다. 181㎝의 좋은 체격에서 나오는 장타까지 갖춘 덕에 너무 큰 기대를 받아서였을까? 그는 1부 투어 진출이 늦어지면서 잊혀 갔다. 2018년 일본투어 도전이 실패로 돌아간 뒤 지난해에는 부상으로 1년을 쉬기도 했다.
김재호는 “지금도 드라이버샷 300야드를 유지할 정도로 힘이 있다. 이번 주 대회를 마치게 되면 부산에 들러 아버지를 만나 뵈려고 한다”고 했다. 김재호의 도전은 이번이 210번째 출전한 대회. 이전의 최고 성적은 2012년 KPGA 선수권 공동 2위 그리고 2019년 DB손해보험 프로미오픈 준우승이었다.
김재호는 우승을 확정한 뒤 아버지의 이름이 새겨진 롯데 유니폼을 입고 우승컵을 들었다. 김재호의 기를 받은 롯데가 내년에는 뭔가를 보여주려나.
성백유 대한장애인수영연맹 회장·전 언론중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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