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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앞에 142m 아파트가?… 세운4구역 ‘제2 왕릉뷰’ 우려 [뉴스 투데이]

입력 : 2025-11-03 18:30:00 수정 : 2025-11-03 21:11:06
김세희·권이선·조성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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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재정비계획 변경 고시

현행 종로변 55m·청계천변 71.9m
각각 101m·145m이하 최고 높이↑

“경관 훼손 않도록 앙각 기준 확대”
市 “180m 떨어져 규제 대상 아냐”

“유산 지켜야” “마지막 개발지” 대립
국가유산청 “유네스코 권고 불이행”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종묘(宗廟) 맞은편 세운상가 부지에 높이 142m 규모의 초고층 빌딩이 들어설 전망이다. 이 고층 건물이 종묘의 경관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제2의 왕릉뷰 아파트’ 사태가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달 30일 ‘세운재정비촉진지구 및 4구역 재정비촉진계획 결정(변경) 및 지형도면’을 시보에 고시했다고 3일 밝혔다. 세운4구역은 북쪽으로 종묘, 남쪽으로는 청계천과 맞닿아 있는데 이번 변경안 주요 내용은 세운4구역(서울 종로구 예지동 85번지 일원, 면적 3만2222.4㎡)의 건물 최고 높이를 종로변 55m, 청계천변 71.9m에서 각각 종로변 101m 이하, 청계천변 145m 이하로 상향 조정하는 것이다. 청계천변 기준으로 보면 건물 최고 높이가 두 배 가까이 늘어나는 셈이다. 건물에는 업무·판매 시설과 공공기관 시설, 오피스텔 등 주거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상가 인구 및 주택 계획은 건축 계획과 경제 상황에 따라 조정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3일 서울 종로구 예지동 85번지 일원 세운4구역 모습. 가림막만 설치된 채 재개발 사업은 착공하지 못해 내부가 공터로 남아 있다. 왼쪽 뒤편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종묘 정문인 창엽문(노란원)이 보인다. 이제원 선임기자

세운4구역의 높이 기준 변경은 2018년 이후 7년 만이다. 이 구역은 2004년 도시환경정비구역으로 지정된 이후 꾸준히 재개발을 추진했으나 역사 경관 보존과 수익성 확보, 잦은 사업 계획 변경 등으로 뚜렷한 답을 찾지 못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세운4구역은 2004년 정비구역으로 지정됐으나, 9년간 13회에 걸쳐 문화유산 심의를 받는 과정에서 높이가 50m 이상 축소되면서 사업 동력을 잃었다”며 “이번에는 종묘 경관을 훼손하지 않도록 앙각(건물의 높이와 경사각을 같이 고려한 시각적 판단) 기준을 확대 적용해 도심 기능과 환경이 조화를 이루도록 계획했다”고 밝혔다.

 

국가유산청은 서울시의 이 같은 결정에 강하게 반발했다. 국가유산청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서울시가 유네스코에서 권고하는 절차를 이행하지 않은 채 종묘 인근에 있는 세운4구역 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 고시한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의 뜻을 밝힌다”고 표명했다.

 

종묘는 독자적인 건축경관과 수백 년간 이어온 제례수행 공간이 지닌 가치를 인정받아 1995년 우리나라가 유네스코 세계유산협약 가입 후 처음으로 등재된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당시 유네스코는 ‘세계유산구역 내 경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근 지역에서의 고층 건물 인허가는 없음을 보장할 것’을 명시한 바 있다. 이번 고도 상향이 그 취지에 반한다는 지적이다.

 

국가유산청은 “2009년부터 서울시와 문화유산위원회 심의를 거쳐 세운4구역의 최고 높이 기준을 조정해왔고, (이제까지 협의된) 최종 높이 71.9m에서 서울시가 일방적으로 145m까지 대폭 상향 조정하는 변경 고시를 함에 따라 종묘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에 미칠 부정적 영향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어 “서울시에 기존 협의안(71.9m 이하)을 유지하고 유네스코 권고사항에 따라 세계유산영향평가를 선행한 뒤 그 결과를 반영해 변경 절차를 추진할 것을 요청했으나, 서울시는 이를 수용하지 않고 이번 변경 고시를 강행했다”고 지적했다.

서울시는 세운4구역이 종묘에서 180m 떨어져 있어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기준(100m) 밖에 해당하므로 ‘세계유산법’ 등의 규제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시 관계자는 “세운4구역이 법령상 규제 지역은 아니지만 주민 의견을 수렴하고 각종 심의를 거쳐 앙각 기준을 확대했다”고 부연했다. 국가유산청은 이번 사업계획을 면밀히 살핀 후 문화유산위원회, 유네스코 등과 논의하면서 국내외적 조치들을 검토하는 한편 서울시와의 소통도 지속해간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안이 ‘제2의 왕릉뷰 아파트’ 사태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앞서 2009년 세계유산에 등재된 김포 장릉 인근 검단신도시 아파트 단지는 문화재 보호구역에서 약 450m 떨어진 곳에 허가 없이 건설돼 논란이 됐다. 당시 김포 장릉이 세계문화유산에서 취소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됐다. 김포 장릉은 조선 선조의 다섯째 아들이자 인조의 아버지인 원종(1580~1619)과 부인 인헌왕후(1578~1626)의 무덤이다.

 

실제로 영국의 ‘리버풀 해양 무역 도시’가 대규모 개발로 인해 2012년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에 지정된 뒤, 2021년에는 세계유산 자격을 박탈당했다. 오스트리아의 ‘빈 역사 지구’ 역시 도시 개발 문제로 2017년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 명단에 올랐다. 다만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이 사전 심의 절차를 어겼다며 공사 중단을 명령했던 ‘왕릉뷰 아파트’ 3개 단지(대방건설·대광건영·금성백조 시공, 총 3400가구)의 경우, 건설사들이 지난해 대법원에서 잇따라 최종 승소했다.

 

이처럼 ‘세계유산 지키기’와 ‘마지막 개발지’라는 상반된 논리가 부딪치는 가운데 왕릉뷰 사태에 관여했던 환경단체 글로벌 에코넷 김선홍 상임회장은 “건설사나 시행사, 입주민들 입장을 내세워서 마지 못해 아파트를 짓게 됐지만 그것이 옳다고만 볼 수 없다”며 “한국 전통문화를 이어간다는 측면에서 향후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정부와 지자체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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