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경영지원센터가 최근 발표한 올해 3분기 공연시장 실적은 티켓판매액 4615억원으로 ‘역대 최대’를 자랑하지만 부문별로 뜯어보면 명암이 엇갈린다. 대규모 K-팝 콘서트와 대형 뮤지컬 등이 외형을 부풀렸을 뿐 중소규모 창작 뮤지컬이나 클래식 등은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다. 특히 연극 불황이 심각하다. 공연건수는 1124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23.4% 증가했으나 티켓예매수는 오히려 5.2% 감소했고 티켓판매액은 13.5% 줄었다. “좋은 연극은 많은데 그걸 보러 오는 사람은 너무 적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학로를 중심으로 창작극과 독립 제작극이 쏟아졌지만 관객이 따라주지 않는 ‘과잉공급의 시대’다. 11월에도 관객을 기다리는 좋은 작품이 여럿 대기 중이다. 모두 놓치면 아까운 작품이다.
◆한국 현대사 목격한 99식 소총 ‘빵야’
옛 일본 육군이 1939년 주력병기로 채택한 ‘99식 소총’. 일본 제국주의의 군사적 상징인 이 소총 한 자루를 놓고 펼쳐지는 이야기로 여러 연극상을 휩쓴 ‘빵야’가 7일 단 하루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된다. 한물간 드라마작가 ‘나나’는 소품 창고에서 오래된 99식 소총을 발견한다. 태평양전쟁 말기 일제가 점령한 조선 땅에서 태어난 ‘빵야’다. 조선 독립군 토벌을 시작으로 제주 4·3사건, 한국전쟁, 지리산 빨치산 토벌 등을 거쳐 한 포수의 손에 넘겨지고, 마지막에는 전쟁 영화 제작용 소품이 돼 창고에 처박힌 신세다. 역사에선 잊힌 낡은 장총 한 자루는 무대 위에서 인물로 등장해 자신이 지나온 한국 현대사를 관객 앞에서 생생히 증언한다.
한국 근현대사 격동의 사건들과 반복되는 비극에 주목해 온 작가 김은성과 뮤지컬 ‘팬레터’, 연극 ‘더 헬멧’, ‘히스토리 보이즈’ 등의 연출 김태형 작품이다. 2022년 초연·2024년 재연에서 작품성과 흥행성이 검증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원으로 ‘빵야 전국화·세계화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국내에선 부산문화회관에서 11월 14일부터 16일까지 공연되며 지난달 29∼30일에는 대만 타이베이 중산당 광복홀에서 중국어 낭독 공연 형식으로 현지 관객을 만났다. 현지 창작진이 대본을 각색하고, 9명의 대만 배우가 참여해 새로운 언어와 감각으로 작품을 재해석했다. 내년 1월에는 영국 런던에서 사전 리딩을 하는 등 2027년 영국 런던 초연을 위한 현지화 작업도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7시간30분짜리 게임+연극
서울 대학로 극장 쿼드에서 8,9일 무려 7시간 30분에 걸쳐 관객이 함께 이야기를 완성해 나가는 집단 참여형 연극 ‘에세즈 매세즈: 당나귀들의 반란’ 무대가 펼쳐진다. 오후 1시에 시작되는 이 작품은 관객이 직접 게임 컨트롤러를 잡고 서사를 전개한다. 무대는 대형 스크린과 단 하나의 컨트롤러로 구성된다. 객석에서 누군가 나와서 조이스틱을 잡는 순간 그 사람은 곧 집단의 아바타가 되고 나머지 관객은 소리로 지시·토론·응원에 참여한다. 관객은 기계로부터 일자리를 되찾기 위한 장대한 여정을 떠나는 당나귀 무리에 합류해야 한다. 당나귀는 노동자·소수자·비가시적 존재를 은유한다. 이를 통해 자동화와 기술 변화가 인간·비인간 노동에 미치는 영향, 집단행동과 파업의 윤리, ‘성장·효율’ 담론의 폭력성을 탐색한다. 10개의 에피소드가 4번의 인터미션을 거쳐 진행되는데 “일이 우리를 정의하는가, 아니면 놀이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공연 특성상 거친 언어, 약물 사용, 성행위 묘사, 폭력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니 관람에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경고가 공지된 14세 이상 관람가 작품이다.
◆“괜찮을 거야”가 만든 비극
극단 백수광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중산층 가정이 직면한 도덕적 갈등을 다룬 ‘다 내 아이들(All my sons)’을 선보인다. 1947년 브로드웨이 초연작으로 1949년 초연된 ‘세일즈맨의 죽음’과 함께 아서 밀러가 미국을 대표하는 극작가로 자리매김하게 만든 작품이다. 자수성가한 사업가 조 켈러는 전쟁 중 군용 전투기 부품 납품으로 큰 성공을 거둔다. 하지만 출하 직전 발견된 결함을 “아마도 괜찮을 것”라고 묵인한 탓에 스물한명의 조종사가 추락해 전사하는 참사가 발생한다. 그의 둘째 아들 래리는 마지막 비행 이후 의문의 실종 상태이고 부인은 그의 죽음을 믿지 못한다. 3년 뒤 할로윈 축제를 앞둔 어느 일요일 조 켈러 대신 수감됐던 동업자가 진실을 폭로하며 잊으려 했던 과거가 유령처럼 되살아나고 켈러 가족은 비극적 진실을 대면해야한다.
이성열 연출은 우리 시대 사회적 참사를 자연스럽게 환기한다. 무관심과 작은 방조, “괜찮을거야”라는 생각이 어떤 비극을 낳는지 일깨운다. 케이트 켈러 역에 크고 작은 영화·드라마·연극에서 활약해온 길해연, 조 켈러 역에 연극 ‘붉은 낙엽’에서 보여준 연기로 백상예술대상 남자 연기상을 수상한 연기파 배우 박완규 열연이 기대된다. 서울 대학로 선돌극장에서 11월 28일부터 12월 1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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