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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살며] 한국선 안 통하는 “한 번만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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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10-29 23:38:56 수정 : 2025-10-29 23:3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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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화여대 언어교육원에서 행정조교로 근무한 적이 있다. 서류 제출 마감일이 다가올 때마다 몇몇 중국 학생들은 이메일이나 전화로 “선생님, 입학 서류가 아직 준비가 안 됐는데요. 이틀만 늦게 내면 안 될까요? 한 번만 봐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늘 난처해졌다. 한편으로는 학생들의 절박함을 이해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학교의 규정이 매우 엄격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류 접수 시간이 지나면 누구도 마감을 연장할 수가 없다. 그럴 때마다 나는 중국인 학생에게 “죄송하지만, 규정상 안 됩니다”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비슷한 상황은 학부 수업에서도 종종 일어난다. 나는 현재 중국인 1학년 학생들의 수업 조교를 맡고 있는데, 학생 중에는 한국어가 부족해서 출석 체크 방식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학생들이 제법 있다. 몇 번 결석 처리가 되자 한 학생이 담당 교수님께 “제가 잘 몰라서 출석 체크를 못 했습니다. 한 번만 봐주실 수 없을까요?”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나 교수님은 답장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 학생은 나를 찾아와 매우 속상하고 자신이 무시당한 기분이 든다고 불평했다.

탕자자 이화여자대학교 다문화·상호문화 박사과정

중국인은 “한 번 상의해 보자”, “조금만 융통성 있게 처리해 달라”라는 말로 문제를 풀어 가는 데 익숙하다. 이 말 아래에는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문화가 깔려 있다. 중국인은 제도는 협상의 여지가 있는 영역이며 사람 사이의 정이 제도의 틈을 메워 준다고 믿는다. “한 번 상의하자”는 표현은 단순한 부탁이 아니라 관계를 만들고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자 하는 신호다. 그것은 체면을 세우면서도 도움을 청하는 중국식 언어 습관이다.

한국 문화에도 물론 ‘정(情)’과 인간적인 온정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정은 중국의 ‘인정’과는 조금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한국 사회에서 ‘정’은 친밀한 관계 안에서만이 아니라 낯선 사람 사이의 따뜻한 배려나 공감 속에서도 드러난다. 다만 공식적인 제도나 공적인 업무와 관련해서는 먼저 규정을 지키고 그다음에 정을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즉, 이 정은 ‘규칙 준수를 전제로 한 정’으로 존재한다.

이렇듯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날 때 중국 학생들은 한국이 너무 ‘딱딱하고 냉정하다’고 느끼고, 한국 교수들은 중국 학생들이 ‘규칙을 모른다’거나 ‘책임감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수년간 한국 체류를 통해, 한국의 제도는 정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정을 제도 다음에 두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한국에서 공부하는 중국 학생들에게는 한국의 규정을 따르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곧 자신의 문화를 버린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한국의 문화를 존중하면서 자신이 익숙한 방식과 사고를 다시 한 번 성찰하라는 것이다. 서로 다른 문화의 차이를 인식하고 그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것이 한국에서 유학하는 중국 학생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숙제라 생각한다. 만약 한국 대학 안에 이런 상호문화 대화의 자리가 마련되어 외국인 학생과 한국 학생이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다면 서로를 향한 오해가 많이 줄어들 것이라고 믿는다.

 

탕자자 이화여자대학교 다문화·상호문화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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