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합천 해인사 백련암 마당의 무궁화가 올해는 늦게 피었다. 예년보다 한 달은 늦었지만, 그 덕에 백련암은 더 오래 신도들을 맞았다고 한다. 그 꽃잎마저 하나둘 떨어져 마음에 공허해질 무렵, 수행자의 사표이자 대한불교조계종 종정을 지냈던 성철 스님의 상좌(제자) 원택 스님은 자신의 상좌 일학 스님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스님, 겁외사 마당의 금목서가 한창입니다. 향기가 온 사찰을 감쌌습니다.” 그 한마디에 마음이 먼저 달려갔다. 산청까지는 차로 40여 분 거리. 겁외사에 들어서자 금목서 향이 바람을 따라 밀려와 마음 깊은 곳까지 스며들었다. 사찰 경내에 울타리처럼 자라난 금목서들은 깊은 가을을 노래하고 있었다. 그 순간, 스님 귓전에는 오래전 백련암 마당에서 성철 스님이 “앞뜰에 금목서를 심어보라” 하던 음성이 되살아났다.
성철 스님은 수행 공간에 향기 나는 나무를 두고싶어 했다. 그러나 백련암은 해발 750m의 고지대라 금목서가 자라기 어려운 땅이다. 두 번을 심었지만, 나무는 결국 말라버렸다. 성철 스님은 “금목서도 살리지 못하는 멍충들이로구나”라며 제자들을 꾸짖었다고 한다. 그러나 말씀의 밑바탕에는 생명 하나를 살리는 데에도 정성이 부족하지 말라는, 수행자의 근본 자세가 담겨 있었다.
금목서(金木犀)는 물푸레나무과의 상록 활엽수다. 중국 남부와 대만이 원산지로, 따뜻한 지역에서 자란다. 한국에서는 주로 남부 지방의 사찰이나 정원에 심긴다. 잎은 짙은 녹색의 타원형이며, 꽃은 9월에서 10월 사이에 황금빛으로 핀다. 향기가 천리를 간다 하여 ‘천리향(千里香)’ 또는 ‘만리향(萬里香)’이라 불린다. 가을 한 철 피어나지만, 향은 계절을 넘어 오래 남는다. 그래서 꽃말도 ‘당신의 마음을 끌다’, ‘영원한 사랑’이다.
불교에서 ‘향기’는 깨달음에서 우러난 청정을 뜻한다. 향은 형체가 없지만, 멀리 퍼지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수행자의 덕과 지혜도 그러하다. 금목서는 한겨울에도 잎을 잃지 않는 상록수다. 불가의 ‘변하지 않는 진리’, ‘끊어지지 않는 정진’을 상징한다. 가을에 꽃이 피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계절의 시작이 아닌, 끝 무렵에 향기를 내는 나무, 그것이 금목서다. 수행의 완숙함, 깨달음의 열매, 고요한 열반의 빛깔과 닮아있다.
 
 
            원택 스님은 15년 전 늦게나마 스승의 생가터에 지어진 겁외사 내 80여 m 거리에 금목서를 가득 심었는데, 지금은 키가 2m나 커서 요사채의 울타리가 된 것이다. 매년 10월이면 황금빛 꽃이 피고, 향기가 사찰 전체를 감싼다. 향기를 맡을 때마다, 제자들은 스승께서 그토록 금목서를 사랑하신 이유를 깨닫는다. 향기 속에는 무언의 법문이 있다. 금목서는 말이 없지만, 향으로 법을 설한다. 향은 눈에 보이지 않으나 마음을 맑게 하고, 수행의 길을 일깨운다. 성철 스님이 일상으로 강조하셨던 “자기를 바로 봅시다”, “남을 위해 기도합시다”, “남모르게 남을 도웁시다”는 가르침은 그 향기와 같다. 보이지 않지만, 묵묵히 세상을 맑히는 힘이다.
성철 스님의 열반 32주기(11월 9일)가 다가온다. 11월 5일부터 9일까지 백련암에서는 4일4야 동안 사만팔천 배의 참회 기도가 이어지고, 8일에는 해인사 운양대 스님의 사리탑전에서 3천배 기도가 봉행된다. 이것은 단지 추모 의식이나 스승을 ‘기억하는’ 시간이 아니다. 스승의 ‘가르침 속으로 들어가는’ 시간이다. 절 한 번이 향 하나이고, 숨 한 번이 기도 한 번이다. 세속은 여전히 소란하고 바깥세상은 아수라장 같지만, 그 정진의 울림은 산사에 메아리치며 스승의 숨결이 깃든 금목서 꽃 향처럼 천리만리로 퍼져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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