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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눈] 설국열차와 부동산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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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10-28 22:52:31 수정 : 2025-10-28 22:52:30
정진수 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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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입안자 부동산 내로남불
공정성 붕괴시키고 불신 키워
숫자·당위론 내세운 정책보다
영끌세대와 공감하는게 우선

집값이 폭등하고 사회가 양극화되던 시절, “부동산 시장이 무너지면 경제가 멈춘다”며 ‘부동산열차’라는 거대한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열차는 달리면 달릴수록 집값이 오르고, 멈추면 모두가 얼어붙는다. “열차는 멈출 수 없다. 집값은 계속 올라야 한다”는 외침은 다른 모든 목소리를 잠재웠다. 맨 뒤 ‘꼬리칸’에는 월세·전세의 무주택자들이 타고 있다. 그들은 ‘자가’라는 앞칸으로 가기 위해 땀흘리며 일하지만 앞칸의 문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그보다 더 앞에는 월세를 받는 다주택자들이 포진하고 있다. 열차의 관리인은 정책과 금융의 설계자. 그에게 전세사기와 경매 등 꼬리칸의 절망은 열차의 유지비용일 뿐이다. 이 와중에 젊은 청년(커티스)이 말한다. “더 이상 꼬리칸에서 월세를 내며 살 수 없다”고. 청년과 무리들은 은행 대출이라는 레버리지를 무기로 앞칸으로 전진한다. “‘영끌’을 해서 어떻게든 앞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가는 와중에 금리 폭탄과 대출규제의 벽에 막힌다. 나중에는 세금폭탄까지 그들을 폭격한다. 많은 무주택자가 다시 꼬리칸으로 굴러떨어진다. 마지막까지 앞칸으로 전진한 젊은이에게 관리자는 말한다. “너의 영끌과 분노도, 부동산열차를 굴러가게 하는 연료였다”고. 열차의 구조 자체가 문제였던 셈이다. 그리고 그 열차가 굴러가는 한 누군가는 꼬리칸에 남을 수밖에 없다.

2013년 개봉한 영화 ‘설국열차’에서 묘사된 모습은 작금의 부동산 상황과 소름 끼치도록 닮았다.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와 계층화, 그 동력을 통찰력 있게 표현했다. 영화는 백상예술대상, 청룡영화상 등에서 감독상을 받았다.

정진수 문화체육부장

인터넷에서는 영화 ‘설국열차’ 패러디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다만 설국열차의 구조에 대한 고민은 없다. ‘똘똘한 강남 한 채’ ‘마용성’ ‘금관구’ 등을 열차칸으로 구분한, 부동산 계급도의 다른 버전일 뿐이다.

인터넷에서 이런 계급도는 수도 없이 많다. 부동산 폭등으로 자산 증식의 계층 사다리가 끊어진 젊은이들이 느끼는 절망의 표현이다.

대한민국에서 부동산은 단순한 자산이 아니다. 출발선과 결승선을 가르고 계층을 결정하며, 꿈과 절망이 뒤섞인 ‘욕망의 용광로’다. 사람들이 사고 싶고, 살고 싶어 하는 부동산은 자녀의 교육과 노후의 안정으로 이어지고, 이는 자녀대에서 ‘부의 대물림’으로 이어진다. 청년 커티스들은 이런 이유로 모두 ‘영끌, 돌격 앞으로’를 외친다.

정부가 ‘부동산 10·15 대책’을 내놓은 이후 반발은 이런 무주택자들의 좌절감과 연결된다. 그들에게 ‘꼬리칸’은 그저 물려받은 것이 없는 청년이라 부동산 상승기에 대응할 수 없었던 ‘지독한 불운’일 뿐인데, 전진의 기회마저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부동산 대책의 당위성과 불가피성보다는 아파트 ‘갭투자’로 수억원의 차익을 얻었지만 “돈 모아서 집값이 떨어지면 그때 사라”는 발언(이상경 전 국토부 1차관)과 다주택 논란에 곧바로 자녀에 증여 계획을 밝혔다 번복한 고위직(이찬진 금융감독원장)에 대한 ‘내로남불’로만 화살이 향하는 이유다.

영화는 ‘남궁민수’로 대변되는, 구조 개혁을 꿈꾸는 이들이 “빙하가 녹고 있다. 다른 세상이 가능할 수도 있다”며 열차 시스템을 붕괴시키며 끝난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사망했다.

‘폭등 열차’의 연착륙을 위해서는, 분노와 영끌로 시스템 유지의 연료를 제공하는 이들의 절망에 주목해야 한다.

그 시작은 공감이다.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자기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 공자의 ‘논어’에 등장하는 이 말은 2500년 전 현인의 고루한 가르침이 아니다. 모든 정책의 시작점이다. 정책의 성패는 정책입안자의 단호함이나 그들이 설파하는 당위성에 좌우되지 않는다. 행위 주체들의 심리와 반발에 따라 그 효과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최근의 내로남불 논란은 공정성의 붕괴, 불신의 확산으로 연결되고, 이런 의심은 다시 투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정책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탓이다.

그렇기에 지금 정책입안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숫자와 당위론으로 무장한 경제학이 아니라, 공감의 인문학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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