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속 세상에 던지는 경고
아홉가지 감정의 스펙트럼 타고
변하지 않는 지구의 현실 담아내
기후학자가 말하는 지구 비망록
나는 미쳐가고 있는 기후과학자입니다/ 케이트 마블/ 송섬별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만원
“어차피 세상은 망할 텐데, 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미국 항공우주국(NASA) 출신의 기후과학자로 구름과 복사에너지, 대기 변화를 연구해온 저자는 현실화하고 있는 지구의 기후 재난을 이같이 개탄한다. 인류가 스스로 초래한 온난화는 지구의 시스템을 실질적으로 바꾸고 있다. 과학자들이 아무리 냉정한 수치를 내놓아도 정치인이나 권력자들은 심각성을 체감하지 못한다.
저자는 차분히 객관적인 언어를 써야 할 과학자이나 도발적인 책 제목에서 보듯 기후위기를 나 몰라라 하는 권력자나 정치인에 대한 분노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저자는 책에서 경이, 분노, 죄책감, 두려움, 슬픔, 놀라움, 자부심, 희망, 사랑이라는 9개의 감정을 통해 기후위기를 과학의 언어가 아닌 인간의 언어로 풀어낸다.
제2장 ‘분노’에서 저자는 “왜 우리가 수십 년 전부터 예측한 재앙을 정치인들은 여전히 ‘논쟁거리’로만 다루는가”라면서 그 사례를 소개한다.
“1988년, 선구적인 기후 모델 개발자들로 이루어진 패널이 미국 의회에 출석했다. 훗날 노벨상을 받게 될 프린스턴대 교수 마나베 슈쿠로가 기온이 상승하면 더 가혹한 가뭄이 더 자주 일어날 것을 증언했다. NASA 산하 고다드 우주연구소 소장은 당해인 1988년이 역대 최고 기온을 기록할 것으로 예측했다. 우즈홀 연구소 소장은 상원의원들에게 석탄과 석유를 비롯해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화석연료를 즉시 감소하는 계획을 지금 당장 세울 것을 강력히 권고했다. 그들 모두 오랜 연구와 발견에 기반한 강력한 과학적 합의가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그들이 제시하는 미래 전망은 각자의 최신 기후 모델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과학자들의 메시지는 간결하고 절박했으며 이해하기도 쉬웠다. 다음날 ‘뉴욕 타임스’ 1면 헤드라인은 ‘지구온난화는 이미 시작되었다’였다. 그때가 전환점이 돼야 했었다. 그때도 이미 더는 미룰 수도, 부정할 수도 없는 시점이었다. 그로부터 3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과학자들이 의회로 불려가 똑같은 경고를 반복하는 일이 일어나서는 정말 안 되는 거였다.”
저자는 기후과학자들이 수십년간 반복적으로 같은 데이터를 내놓고 같은 경고를 했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현실을 고발한다.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런데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것이 나를 미치게 한다”고 토로한다.
기후와 폭력성 사이에 분명한 연관 관계에 관한 대목에선 기후위기가 지구촌 가족의 삶도 황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온이 올라 불쾌지수가 높아지면 개인 간의 갈등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날씨가 더워지면 살인, 강간, 폭행률이 올라가고, 경찰이 총을 꺼낼 가능성도 커지며, 스포츠 경기가 끝나고 폭동이 벌어지는 횟수 또한 늘어난다. 이런 경향은 인간 사회 전반의 대규모 상호작용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날 수 있다. 기온이 상승하면 집단 간 갈등은 더 잦아지고, 강수량 부족은 기근과 정치적 불안, 전쟁을 유발할 수 있다.”
저자는 기후위기를 ‘숫자의 세계’에서 꺼내 인간의 세계로 고스란히 보여준다. 남태평양의 투발루섬을 방문했을 때를 회상한다. 해수면 상승으로 마을의 묘지가 물에 잠기고 있었다. 사람들은 조상의 무덤을 다른 섬으로 옮기며 울고 있었다. 그 장면을 목격한 저자는 “이건 데이터가 아니라 기억의 침수”라고 말한다. 저자는 과학자이면서도 시인처럼 감성적으로 글을 쓰는 이유는, 냉정한 분석만으로는 절대로 전해지지 않는 진실이 있기 때문이다.
‘슬픔’의 장에선 저자는 북극곰의 생태를 연구하던 동료의 이야기를 전한다. 한때 30마리의 개체군이 관찰되던 지역에서 다음 해에는 단 세 마리만이 나타났다. 이날 그의 연구팀원은 영상을 분석하고 회의를 해야 하지만 모두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전한다.
하지만 다른 장에서 ‘희망’도 말한다. 미국 중서부의 폭염 속에서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는 청년들을 만난다. “당신들은 왜 이 일을 하느냐”는 질문에 그들은 이렇게 답했다. “다음 세대가 살 기회를 주기 위해서요.” 저자는 이들을 “희망의 증거”로 본다. 그러면서 “희망이란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인간의 습관이다. 그런 점에서 아직은 늦지 않았다”고 말한다.
책 속 저자의 ‘미침’은 광기가 아니라 기후위기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는 세상에 던지는 과학자로서의 준엄한 경고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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