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들/ 수잰 스캔런/ 정지인 옮김/ 엘리/ 2만2000원
1992년, 스무 살 대학생 수잰 스캔런은 극심한 식이 제한과 자해 끝에 뉴욕주립정신의학연구소에 입원했다. 그는 그곳에서 장장 3년을 보냈다. 장기 입원이 정신의학의 표준 치료로 여겨지던 시절이다. ‘의미들’은 그 병원에서의 시간을 바탕으로 한 정신질환 회고록이자 광기와 의학에 대한 문학적 전통을 탐구한 지성의 여정이다.
1990년대의 정신의학은 오늘날과 사뭇 달랐다. ‘되찾은 기억(recovered memory)’ 신드롬이 대유행하면서, 의사들은 환자의 증세를 과거의 외상과 연결하려 애썼다. 저자의 경우 고통의 기원은 어머니의 죽음으로 설정됐다. 어머니는 그가 여덟 살 때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가족들은 슬픔을 침묵으로 덮었고, 저자는 슬픔을 표현할 언어 없이 성장했다.
하지만 저자가 보기에 병의 시작점은 어머니의 죽음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뉴욕으로의 이주, 식사를 중단한 결정, 첫 자살 시도까지 흔적은 삶 전반에 흩어져 있다.
그는 의료체계가 강요한 ‘공식적 서사’를 거부한다. 이 책 역시 기승전결의 전통적 구조를 따르지 않는다. 기억의 파편과 사유의 일탈이 쌓이고 흩어지다가 뜻밖의 통찰로 이어진다.
저자의 비선형적 회고록 속에서 문학은 구원자로 등장한다. “어느 날 깨달았다. 수년간 복용한 약, 비싼 상담, 끝나지 않는 대화가 모두 헛된 일이었다.” 그녀가 누구인지, 어떤 존재가 되고자 하는지를 설명할 언어를 제공한 건 문학이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은 삶을 뒤흔드는 욕망의 언어를, 오드리 로드의 ‘암 일기’는 의료의 틀에 맞서 자기 이야기를 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버지니아 울프, 샬럿 퍼킨스 길먼, 실비아 플라스, 에이드리언 리치, 줄리아 크리스테바,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재닛 프레임, 시네이드 오코너…. 저자는 이들 여성 예술가를 통해 자신 안의 수많은 자아를 발견했다. “정상성 바깥에서 사는 것이 가능했다. 슬픔은 장애물이 아니라 나를 만든 일부였다.”
이 책은 한 인간이 자신을 다시 써내려가는 기록이자 확립된 자아의 환상을 넘어선 저자의 다채로운 지적 여정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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