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오는 국제사회 정상들에
‘비핵화 불가’ 입장 각인시키고
핵무력 강화 의지 재차 강조
회담설 나오는 트럼프 시선 끌어
만약의 상황서 고지 선점 의도도
日 “韓·美와 긴밀협력 대응 만전”
북한이 경주에서 31일 개최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이펙) 정상회의를 약 일주일 앞둔 22일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을 발사하며 도발에 나선 것은 ‘핵보유국’을 자임하는 무력시위로 해석된다. 에이펙을 계기로 이어질 한·미, 한·중, 미·중 정상회담을 비롯한 주요 회담에서 북한에 불리한 논의나 합의가 이뤄지는 걸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는 “한·미 정상 간 합의와 미·중 정상 간 회담에서 자신들에게 불리한 합의가 나오지 않도록 포석을 깐 것”이라며 “비핵화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다시금 보여주기 위해서였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에이펙에서 북한이 어떻게 다뤄질지에 관심이 클 텐데, 개막을 앞두고 탄도미사일 발사로 존재감을 부각했다”며 “핵보유국 위상을 갖고 있다는 메시지를 발신한 것”이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만남이 성사될지 주목되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을 끌기 위한 의도일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양 교수는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러브콜을 기대하며 찔러보기 차원으로 도발에 나선 것일 수 있다”며 “북한은 미국에 한·미군사훈련을 중단하고 비핵화 불가 입장을 인식한 상태에서 (김 위원장과의 회담에) 나오라는 압박용일 것”이라고 짚었다.
하지만 이번 도발이 북한과의 대화에 긍정적인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전망이 강하다. 홍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북·미 대화에 크게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핵무기 능력 과시에 집중하겠다는 메시지로 볼 수 있다”며 “트럼프 행정부 역시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는 의지가 있더라도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을 쏘는 상황에서 김 위원장과의 회동을 시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고 짚었다.

그러나 북한이 도발의 수위를 조절한 측면이 있어 보인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아닌 단거리 미사일을 도발수단으로 택하고, 시점도 에이펙 직전은 아니라는 점에서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만약 트럼프 대통령과 회동 기대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의도였다면 좀 더 임박한 시기를 골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양 교수도 “에이펙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참석할 예정인데, 만약 도발 효과를 극대화하려고 더욱 임박해서 발사했다면 중국이 불쾌감을 느낄 수 있다”며 “북·중관계 복원 분위기를 고려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향후 주목할 대목은 북한이 이번 미사일 발사를 신호탄으로 도발의 수위를 높여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번달 평양에서 열린 열병식에서 새로 공개한 ICBM 화성-20호 시험발사 등을 통해 미국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비핵화를 의제에서 배제한 대화에 나오도록 본격적으로 압박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전날 취임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바짝 신경쓰는 모습을 보였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날 관저에서 취재진과 만나 “경계 데이터의 실시간 공유를 비롯해 한·미·일이 긴밀히 협력해 대응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영해나 배타적경제수역 비행은 확인되지 않았다”며 “피해 보고 등 정보도 확인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 시기를 이날로 택한 것을 두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 시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모색하고 있다는 미국 보도가 있다”며 “북한은 2018년 북·미 정상회담 전에도 ICBM을 발사한 적이 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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