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사회에는 태어난 순간부터 법의 보호망 밖으로 내몰리는 아이들이 있다. 바로 미등록 이주아동들이다. 아동이라는 단어 앞에 ‘미등록’과 ‘이주’라는 두 수식어가 함께 붙은 이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무거운 짐을 지고 세상을 마주하게 된다. 이 두 수식어는 대개 아동 자신의 선택과는 무관하게 붙여진다. 미등록 이주아동은 미등록 이주민 부모를 따라 한국으로 왔거나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여러 이유로 국내에서 합법적인 체류 자격이 없는 아이들을 말한다. 이들은 태어나자마자 또는 어느 순간에 미등록의 신분이 된다.
이 아이들은 기본적인 의료보험조차 가입할 수 없으며, 휴대폰 개통이나 통장 개설과 같은 일상적인 활동도 높은 장벽으로 다가온다. 자신이 잘못한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사회의 안전망에서 쉽게 이탈할 수 있는 불안정한 삶을 살아간다.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자신의 존재가 투명하게 취급되는 현실 속에서 이들은 고립감과 무기력을 경험한다.

한국은 1991년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하여 관할권 내 모든 아동이 인종, 국적, 민족, 사회적 출신, 태생 등과 무관하게 차별 없이 권리를 존중받고 보장받을 의무를 지게 되었다. 이 협약은 헌법 제6조에 따라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가진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은 현실과는 간극이 있다. 이주아동의 기본권은 실생활에서는 충분히 구현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미등록 이주아동의 권리는 인도적인 차원에서 최소한으로만 보호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중요한 자각과 새로운 전환점이 지난달 경기도에서 마련되었다. 바로 ‘미등록 아동 발굴 및 지원 조례’의 제정이다. 이 조례는 경기도 내에 거주하는 미등록 아동의 존재를 제도적으로 인정하고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조례 제정에 따라 경기도에 거주하는 만 18세 미만의 미등록 이주아동에게는 ‘아동 확인증’을 발급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그동안 실존하면서도 법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취급되었던 아이들의 법적 지위를 인정하고 권리 보호의 출발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진전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조례는 미등록 이주배경 아동의 인권을 보호하는 데 분명한 출발점이다. 그러나 이는 경기도의 노력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다가오는 10월 29일은 지방자치의 날이다. 경기도의 조례 제정 사례는 지방정부가 아동의 기본적 권리 보호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미등록 이주’라는 현실을 마주해야 했던 아이들에게 그 짐이 너무 버겁지 않도록 돕는 일은 모든 지방정부가 마땅히 실천해야 할 책무가 아닐까.
양경은 성공회대 사회융합학부 사회복지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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