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도의 정치적 혼돈… 재정 적자 못 줄일 것”
마크롱 취임 후 8년 동안 총리 무려 7명 배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5대 상임이사국의 일원이자 2024년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7위 경제 대국인 프랑스의 추락이 점점 더 가속화하고 있다. 엄청난 액수의 재정 적자를 줄여야 할 판국에 정부 리더십은 실종되고 정치 불안은 더욱 심각해진 데 따른 결과다.
17일(현지시간) AFP 통신에 따르면 국제 신용 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이날 프랑스 국가 신용 등급을 기존 AA-에서 A+로 한 단계 하향 조정했다. S&P가 올해 4월 한국의 국가 신용 등급을 종전과 같은 AA로 유지한 점에 비춰보면 세계적 강대국이자 경제 대국으로 통하는 프랑스의 요즘 처지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짐작이 간다.

2024년 국제통화기금(IMF)이 집계한 GDP 규모로 따져 프랑스는 세계 7위, 한국은 14위에 각각 해당한다.
S&P가 프랑스의 신용 등급을 내린 것은 프랑스 정부가 2026년에도 재정 적자를 대폭 줄이지 못할 위험이 크다고 봤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총리가 사표를 내 대통령실에 의해 수리가 됐다가 다시 번복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최근 정부가 2026년도 예산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정부 재정을 둘러싼 불확실성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는 것이 시장의 냉정한 평가다.
당장 S&P는 “프랑스가 GDP의 5.4%라는 2025년도 일반 정부 재정 적자 목표는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상당한 추가 예산 적자 감축 조치가 없다면 재정 건전화는 이전의 예상보다 느려질 것”이라고 밝혔다. 요즘 프랑스가 겪고 있는 극심한 혼돈을 신용 등급 조정에 반영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프랑스 정부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집권 2기 들어 급증하는 재정 적자를 줄이기 위해 긴축에 나섰다. 근로자 정년을 62세에서 64세로 연장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연금 개혁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2024년 7월 하원의원 총선거에서 여당이 야권에 참패하며 제동이 걸렸다. 마크롱의 연금 개혁안을 지지하는 세력이 원내 과반 다수를 점하지 못함에 따라 개혁의 정치적 동력은 사라지고 말았다.
당장 마크롱이 집권 2기 들어 새롭게 임명한 미셸 바르니에, 프랑수아 바이루 2명의 총리가 여소야대 의회의 불신임으로 연거푸 낙마했다. 최근에는 바이루의 뒤를 이은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총리가 임명 27일 만에 사임했다가 나흘 만에 다시 임명되는 코미디 같은 일까지 벌어졌다.
S&P가 프랑스의 국가 신용 등급을 하향하기 하루 전인 16일 여소야대 의회는 르코르뉘에 대해서도 불신임 투표를 강행했다. 비록 르코르뉘가 마크롱 연금 개혁안 추진 중단을 선언하고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사회당이 야권 연대에서 이탈함으로써 불신임안은 부결됐다. 하지만 향후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긴축’을 외치는 정부·여당과 ‘복지 수준 유지 또는 확대’를 요구하는 야권이 충돌하는 경우 여소야대 의회는 언제든 총리 불신임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르코르뉘는 마크롱 집권 2기 들어 의회 불신임으로 물러나는 3번째 총리가 된다. 2017년 5월 시작한 마크롱 재임 기간을 감안하면 8년 좀 넘는 기간 동안 7명, 거의 1년에 1명꼴로 총리가 바뀌는 셈이다. 영국 BBC는 이를 두고 “프랑스가 1958년 이전 제4공화국으로 되돌아갔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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