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오만 버리고 러시아와 협상 택해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기 위한 미·러 정상회담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개최할 뜻을 밝히자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가 “평화를 위한 좋은 소식”이라며 반겼다. 오르반은 개인적으로 트럼프는 물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도 절친한 사이다. 헝가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및 유럽연합(EU) 회원국이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에도 러시아와 사이좋게 지내고 있다.

16일(현지시간) BBC 방송에 따르면 오르반은 이날 트럼프가 “푸틴과 전화 통화를 했으며, 헝가리에서 대면 회담을 갖기로 합의했다”고 밝힌 직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환영의 게시물을 올렸다. 트럼프는 ‘헝가리’라고만 했을 뿐 도시 이름을 특정하진 않았으나, 오르반은 헝가리 수도이자 국제 도시인 부다페스트가 회담장이 될 것으로 확신하는 모습이다.
그는 SNS 글에서 “부다페스트 회담 계획은 평화를 사랑하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큰 소식”이란 말로 운을 뗐다. 이어 “평화에는 인내, 힘, 겸손이 필요하다”며 “유럽은 입장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간 국제사회의 대(對)러시아 경제 제재를 주도해 온 EU를 향해 훈계를 한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헝가리는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후에도 에너지 수입 등 경제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으며, EU 차원의 대러 제재에도 동참하지 않고 있다.
오르반은 러시아에 강경한 입장을 취해 온 EU의 양대 지도국 독일·프랑스를 비난하는 듯한 발언도 했다. 그는 “우리는 오만함과 끝없는 전쟁의 불길을 부채질하는 대신 러시아와의 협상할 필요가 있다”며 “오직 대화만이 우리 대륙(유럽)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헝가리는 EU 회원국인 동시에 나토 동맹국으로 서방의 일원이다. 하지만 EU의 대러 제재 확대에 홀로 반대 입장을 내는가 하면 우크라이나를 EU 회원국으로 받아들이려는 움직임도 비판하는 등 서방과 러시아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펼치고 있다. 2023년 12월 우크라이나의 EU 가입 협상 개시를 결정한 EU 정상회의 당시 오르반이 표결 직전 혼자 회의장을 떠나는 형태로 기권한 것이 대표적이다.
2010년 총리에 취임해 벌써 1년 넘게 장기 집권 중인 오르반이 ‘유럽의 이단아’로 불리는 이유다.
EU와 나토 회원국들은 “헝가리가 서방의 단결을 저해한다”고 비난한다. 반면 오르반은 “러시아와도 대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
한편 트럼프는 이날 마코 루비오 국무부 장관이 이끄는 미국 대표단이 조만간 러시아 대표단과 만나 고위급 회담을 가질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를 통해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향후 2주일 안에 그가 헝가리에서 직접 푸틴과 만나 담판을 짓겠다는 것이다. 크레믈궁도 푸틴·트럼프 통화 사실을 시인하며 “양국 간 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작업이 곧 시작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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