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62세→64세 늘리는 연금 개혁안 옹호
“일하는 시간 늘리면 적자 줄고 GDP 증가”
마크롱 “수상 축하… 프랑스 국가적 자부심”
오늘날 프랑스가 겪는 정치·경제 위기의 근본 원인은 프랑스의 낡은 연금 제도, 그리고 이를 혁파하기 위해 2023년 단행된 연금 개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입 기간 평균 소득 대비 수령액 비율, 즉 소득대체율이 세계 최상위권인 프랑스 연금 제도는 심각한 재정 적자를 초래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야당·노동조합·시민단체 등 모두의 반대 속에 연금 개혁을 강행했다가 프랑스에서 가장 인기 없는 정치인이 되었고, 그가 임명한 총리는 여소야대 의회에서 잇따라 불신임을 당했다.

13일(현지시간)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가 필리프 아기옹(69) 프랑스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를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노벨위원회에 따르면 아기옹은 ‘창조적 파괴, 곧 혁신이 경제 성장을 이끈다’는 이론을 수학적 모델로 입증한 공로가 인정됐다. 아기옹과 공동 수상자가 된 조엘 모키어(79·네덜란드)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 피터 하윗(79·캐나다) 미 브라운대 교수 역시 신기술이 어떻게 지속적 성장을 견인하는지 보여준 점이 중대한 수상 사유로 작용했다.
아기옹은 원래 사회당 그리고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2012년 5월∼2017년 5월 재임)이 이끈 사회당 정부 지지자였다. 마크롱은 올랑드 정부에서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2014)과 경제산업부 장관(2014∼2016)을 지냈다. 아기옹과 마크롱의 인연은 이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크롱이 사회당과 결별하고 독자 정치 세력화를 추진하고 나섰을 때, 또 2017년 및 2022년 대선에 출마했을 때 아기옹은 매번 마크롱을 옹호했다. 그는 자신의 평생에 걸친 연구 성과인 ‘혁신과 성장’ 이론을 마크롱에게 주입하는 일종의 경제 가정교사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프랑스 언론은 그런 아기옹을 ‘대통령의 경제 책사’라고 불렀다.

2023년 마크롱이 인기 없는 연금 개혁 추진을 본격화하고 나서자 아기옹은 그 필요성을 프랑스 국내는 물론 외국 언론에도 널리 알리는 전도사 역할을 했다. 마크롱 연금 개혁안은 연금 수령을 위한 법정 은퇴 연령(정년)을 62세에서 64세로 늦추고, 완전 연금 수령 기여 기간을 42년에서 43년으로 늘리는 내용이 핵심이다. 그는 심지어 한국 언론과도 인터뷰를 했는데 “연금 적자에 대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평생 일하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라며 마크롱 정부의 논리를 대변했다. 아기옹은 “은퇴 연령을 62세에서 64세로 상향 조정하자는 마크롱 대통령의 제안은 곧 고갈될 공적 연금 준비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적의 해결책”이라고 적극 옹호했다. 이어 “연금 개혁은 고용률을 높이는 또 다른 방법”이라며 “고용률이 올라가면 프랑스 국내총생산(GDP)이 증가하기 때문에 거시경제적 관점에서 매우 좋다”고 덧붙였다.
프랑스 정가에서 ‘여소야대 의회의 반발 속에 연금 개혁 후퇴는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제기되는 가운데 마크롱은 아기옹의 노벨경제학상 수상 소식을 크게 반기는 모습이다. 정치적 위기를 초래한 것과 별개로 연금 개혁의 방향성은 분명히 옳았다는 확신을 얻은 듯한 모습이다. 마크롱은 노벨위원회의 발표 직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글에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필립 아기옹에게 축하를 전한다”며 “그는 프랑스의 자부심이자 전 세계에 영감을 주는 인물”이라고 적었다. 이어 “그는 ‘혁신을 통한 성장’이라는 비전을 통해 미래를 밝힘과 동시에 프랑스 사상이 계속해서 세상을 계몽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찬사를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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