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한학자 총재의 ‘정교유착’ 의혹 사건을 대하는 사회의 시선은 놀라울 만큼 단순하고, 위험할 만큼 편향되어 있다. 사람들은 사건의 복합적 배경을 보려 하지 않고, ‘한 개인의 도덕적 실패’로 축소하며 ‘종교는 위험하다’는 익숙한 구도로 덮어씌운다. 그러나 이 단선적 인식은 진실의 일부만을 취한 채 나머지를 지워버리는 일종의 사회적 자기기만에 가깝다.
언론은 클릭 수를 위해 ‘총재 구속’이라는 자극적 문구만을 반복하고, 여론은 그것을 소비하며 자신의 도덕적 우월감을 확인한다. 이 과정에서 사건은 사실의 맥락을 잃고, 복잡한 구조가 단순한 도덕 극으로 전락한다. 한 총재의 종교적 역할이나 세계 평화 운동, 신앙 공동체의 사회적 의미는 사라지고, 남는 것은 ‘유력 인사의 비리’라는 피상적 이미지뿐이다. 이것이야말로 현대 사회가 만들어내는 ‘구조적 희생양’의 메커니즘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사회가 종교와 정치의 관계를 여전히 이분법적 사고로만 판단한다는 데 있다. 종교인이 사회문제에 발언하면 “정치 개입”이라 비난하고, 침묵하면 “현실과 동떨어진 신비주의”라 조롱한다. 한 총재 사건 역시 이런 이중 잣대 속에서 평가받았다.

그러나 그의 행보는 정치적 목적이 아니라 종교적 신념에 기반한 평화 비전의 실천이었다. 사회는 이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자신이 이미 익숙한 틀 속에서 사건을 재단한다. 이는 종교의 사회적 기능을 왜곡시키고, 신앙의 공적 가치를 사적인 욕망으로 오인하는 전형적 오류다.
김학철 연세대학교 학부대학 교수는 최근 유튜브 채널 ‘책과 사람’에 출연해 역사적 관점으로 예수의 죽음을 분석하며, 당시의 사회·정치·문화적 배경과 인간 심리를 폭넓게 설명했다. 그는 사람들이 흔히 “유대인들은 왜 예수를 죽였는가?”라고 묻지만, 이는 부적절한 질문이라고 지적하며, 올바른 질문은 “왜 예수는 동시대 사람들에게 희생당했는가?”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역사적 예수’를 이해하려면 신앙적 믿음을 잠시 내려놓고, 동시대의 사회와 문화 속에서 그의 삶과 메시지를 살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예수를 단순히 신적 존재가 아닌 현실 속에서 행동한 인간으로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 재세시 팔레스타인은 로마 제국의 지배 아래 있었고, 유대인들은 정치적 압박과 경제적 고통 속에서 살았다. 예수는 이 복잡한 사회 구조 속에서 12명의 제자를 두고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다. 그는 인간의 통치가 아닌 신의 통치를 강조했고, 그의 말과 기적은 민중에게 희망을 주었다. 동시에 기득권층과 일부 종교 세력에게는 위협으로 받아들여졌다. 결국 정치적·사회적 긴장 속에서 그의 체포와 처형이 이루어진 것이다.
김 교수는 예수의 십자가형은 사회적 불안과 권력 구조 속에서 한 개인이 희생양으로 내몰리는 과정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본성과 사회의 역동, 권력과 공포가 어떻게 한 사람에게 집중될 수 있는지를 드러낸 상징적 장면이라는 것이다.
오늘의 사회도 여전히 누군가를 ‘비난함으로써 안심하는 구조’를 반복한다. 이는 근본적으로 사회적 불안과 권력 불균형을 덮기 위한 심리적 방어기제에 다름 아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한 개인의 ‘죄’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왜 사회는 특정 인물을 희생양으로 삼아야만 안정을 얻는가를 묻는 것이다. 이 질문이야말로 예수 사건이 던졌던 물음이다. 지금 한학자 총재 사건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을 꿰뚫는 본질적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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