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자 아베 신조’로 불리는 다카이치 사나에 신임 일본 자민당 총재는 한·일 협력의 중요성을 직시해야 한다. 다카이치 총재가 군국주의 상징이자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다면 양국 관계는 다시 격랑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2001년 8월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참배, 2013년 12월 아베 총리 참배가 한국·중국 등 주변국 반발은 물론 미국의 비판을 야기한 것처럼 상당한 파장을 무릅써야 할 것이다. 다행히도 야스쿠니의 추계예대제(가을 제사, 17∼19일) 참배는 일단 보류하는 쪽으로 논의 중이라고 한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외국인 배척에 문제를 제기하는 연립여당 파트너 공명당을 배려했다거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이펙) 정상회의 참석에 앞서 방일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의식했다고 한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동아시아 정세에 가져올 파장이 만만치 않은 만큼 최소한 재임 중엔 삼가기 바란다.
다카이치 총재는 극우적 정치 성향이나, 평소 공언, 보수층의 희망을 감안하면 결코 방심할 수 없는 인물이다. 실제 총리로 선출되면 정치적 레거시나 지지층 결집을 위해 언제든지 야스쿠니에 참배할 수 있는 인물이다. 특히 평소 독도나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반한 세력의 목소리를 대변해왔다는 점에서 우리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한·일 관계가 새로운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다카이치 총재에게 묻고 싶다. 한·일 공조 필요성이 지금보다 높은 적이 있었나.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고도화, 중국의 부상, 미국의 동맹국 경시와 무역 전쟁 등에 양국 모두 착잡한 상황이다. 민주주의와 자유무역의 가치를 공유하는 양국이 반목한다면 국제사회에서 외교적 공간이 축소되고 발언력은 작아질 수밖에 없다. 다카이치 총재는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의기투합해 모처럼 마련한 협력과 공존의 길을 막아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이 일본 국익과 일본 국민 이익에 부합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 정부는 계속 유동적일 일본 정국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과거사 문제와는 별개로 안보·경제협력 및 문화·인적교류 확대를 추구한다는 실용외교의 투트랙 기조를 확고히 유지해야 한다. 동아시아 정세의 대국(大局)을 조망하면서 에이펙 기간 한·일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동시에 이 대통령의 방일 차례가 된 셔틀 외교도 흔들림 없이 이어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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