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같은 지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친구들과 어릴 때 보낸 추석 얘기를 했다. 친구 중 직장이 있던 애들은 대부분 이른 정년을 맞이했거나 정년을 준비하고 있다. 또 어떤 친구는 도시를 떠나 아예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살고, 어떤 친구는 평생 해본 적 없지만 바닷가에서 어부로 살고 있다. 우리는 각자 받고 싶은 추석 선물을 하나씩 말해보자고 했다. 우리끼리 언젠가 해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오디오, 똑딱이 카메라, 자동차, 혼자만의 여행, 비싼 술, 비싼 악기, 비싼 캠핑 용구, 요트 등 나온 얘기는 많았다. 그러나 뭘 받아도 어릴 때만큼 감동적이지는 않을 것 같다고들 했다.
떠올려보면 어릴 때는 명절에만 옷 선물을 받았다. 옷 선물은 흔하게 받을 수 있는 게 아니어서 명절 전부터 기대가 컸다. 추석날 아침에 머리맡에 새 옷이 놓여 있으면 일어나자마자 입어보고 또 입어보고, 방안을 몇 바퀴씩 돌면서 즐거워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옷이 너무 흔해져서 명절이 아니어도 살 수 있는 물건이 되었지만 말이다. 책도 마찬가지다. 어릴 때는 책이 흔하지 않았기에 책은 정말 소중한 선물이었다. 요즘 어린이들은 책을 받으면 어떻게 반응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책을 꼭 끌어안고 그 자리에서 껑충껑충 뛰었다.
같이 소설을 쓰는 친구로부터 손뜨개로 뜬 목도리를 선물받았다. 이른 저녁 창밖의 색깔처럼 차가운 푸른색에 실이 유기농 소재라서 따갑지도 않고 촉감이 좋았다. 내가 즐겨 입는 검은색 코트에 매치하기 좋은 더할 수 없이 멋진 목도리여서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친구가 직접 떠준 거라서 더욱 소중하게 생각됐다. 소설 쓸 시간을 빼앗은 거니까 죄책감이 들 정도로 미안했다.
난 이미 좋은 선물을 받아서 더는 받고 싶은 선물이 없는 걸까. 아니 있다. 정말 받을 수 있다면 말이다. 이건 순전히 망상이지만 나 자신을 사랑할 힘이 남아있는, 다름 아닌 온전히 나 혼자인 나 자신을 선물받고 싶다면 이상한가. 누군가 그런 선물도 기획해 주면 좋겠다.
강영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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