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 폐지로 물러나는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달 30일 “대한민국의 법치는 오늘 죽었다”고 밝혔다.

이 위원장은 이날 오후 정부과천청사를 떠나는 마지막 퇴근길에서 기자들과 만나 소회를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변했다.
그는 “현행 법대로 되지 않으면 법을 바꿔서 사람을 제거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방통위를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로 바꿔서 사람을 잘라낼 수 있다. 그럼 다음에 어느 정부가 될지는 몰라도 기획재정부 장관이 마음에 들지 않고, 여성가족부 장관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잘라낼 수 있는 첫번째 사례가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취임 사흘 만에 탄핵을 했고 그런 선례를 만들어냈는데 방미통위라는 새 기관을 만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을 또 했다”며 “정말 참 대단하구나 생각한다. 오늘 이진숙이라는 사람은 숙청되지만 제 생각에는 이런 것을 참지 못하는 또 다른 이진숙이, 저항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 자리는 물러난다”고 언급했다.
이 위원장은 헌법소원을 예고한 상태다. 법적 대응을 준비하는 상황에서 어떤 결정이 나오더라도 받아들이겠냐는 질문에는 “가정적인 질문을 했기 때문에 다시 만나면 답변하겠다”고 밝혔다.
새로운 위원장에게 당부할 말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통령 말을 안 듣는다고 잘라내는데 아무래도 대통령 말을 잘 듣는 분이 오지 않겠냐”고 덧붙였다.

이 위원장은 이날 출근해 직원들과 월례조회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기자일 때) 주로 미국과 중동에 있었는데 미국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며 “미국은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을 수도 워싱턴DC에 이름을 붙이고 수많은 장소에 남기지만 대한민국의 영웅은 없다. 세종대왕, 이순신 등 조선시대 영웅만 이야기하는데 현대의 대한민국 영웅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소개했다.
이 위원장은 마지막에 차량에 올라타면서 기자들에게 “수고 많았다. 굿바이 앤 씨유(Good bye and see you)”라고 했다.
한편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설치·운영 법안 및 정부조직법 개편안이 이날 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가운데, 법은 공포 절차를 거쳐 1일부터 시행된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설립된 방통위는 새 정부 들어 첫 정부조직개편안에 따라 폐지되고, 대통령 소속의 새로운 중앙행정기관인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로 재편된다. 정부는 방송·통신 정책이 과기정통부와 방통위로 나뉘어 효율성과 책임성이 떨어지고, 미디어 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를 이유로 개편을 추진했다.

새 위원회는 위원장과 부위원장, 상임위원 1명을 포함한 7명 체제로 꾸려진다. 대통령이 위원장과 위원 1명을 지명하고, 국회 교섭단체가 5명을 추천해 대통령이 임명한다. 이 과정에서 기존 여야 3대2 구도가 4대3으로 바뀐다. 회의는 4명 이상이 출석해야 열리고, 안건은 출석위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된다. 기존 방통위의 2명 출석 요건과 비교하면 문턱이 높아진 것이다.
소관 사무도 확대된다. 유료방송, 뉴미디어, 디지털방송 정책이 추가돼 방송 진흥 기능이 강화됐고, 심의·의결해야 하는 안건은 29개에서 33개로 늘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직원 35명이 전입해 조직 규모도 소폭 커진다.
다만 부칙에 따라 정무직 공무원은 새 조직에 승계되지 않는다. 이에 내년 8월까지 임기가 남아 있는 이진숙 방통위원장은 법 시행과 동시에 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이 위원장은 법 추진에 반발해 전날 방통위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내일 헌법소원 진행을 예고한 바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도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로 바뀐다. 기존에는 민간 자격으로 선출되던 위원장이 새 법에 따라 국회 인사청문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는 정무직 공무원으로 바뀐다. 이에 따라 국회의 탄핵소추 대상에도 포함된다.
이번 법 시행에 따라 방송법과 전기통신사업법 등 관련 48개 법률의 ‘방송통신위원회’ 명칭도 모두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로 변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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