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사건 등 면소 목적 의심받아
대체입법 마련해 사법 공백 없애야

당정은 어제 ‘경제형벌 민사책임 합리화 태스크포스’ 협의에서 “형법상 배임죄 폐지를 기본 방향으로 정했다”고 밝혔다. 정상적인 경영 판단에 따르거나 충분한 주의 의무를 다했다면 배임죄로 처벌해선 안 된다는 게 당정의 설명이다. 1953년부터 70년 넘게 이어져 온 우리나라 배임죄는 적용 범위가 지나치게 넓고, 처벌 강도도 세 ‘형벌 만능주의 규제’로 작용해 왔다. 기업의 정상적인 경영마저 위축시켰던 배임죄의 폐지는 늦었지만 당연한 조치라 하겠다.
현재 배임죄는 ‘타인을 위해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되는 행위로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에게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재산상의 손해를 가하는 범죄’로 정의된다. 먼저 그 주체인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부터 지나치게 포괄적이다. 지시를 받고 실무를 수행한 일반 직원까지 처벌될 수 있다. 행위요건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도 추상적이라 광범위하게 해석될 소지가 크다. 법원에선 행위 결과 손해는 나지 않고 그럴 위험만 발생해도 종종 배임 성립으로 인정됐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배임죄 기소율은 전체 사건 평균(39.1)의 절반도 안 되는 14.8에 그쳤다. 고소·고발이 무분별해 망신주기 목적으로 악용된다는 지적을 받는 배경이다.
배임죄는 그간 상법·형법·특경법을 통해 기업 임직원뿐만 아니라 교회, 학교, 공무원, 미성년 후견인까지 포괄적으로 적용돼왔다. 당장 형법상 배임죄가 폐지된다면 대장동·백현동·성남FC 사건에서 관련 혐의로 기소됐거나 재판이 진행 중인 이재명 대통령과 그 측근의 면소(免訴)를 노린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중요 범죄에 대한 사법 집행 공백이 없도록 당정이 약속한 대로 대체입법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할 것이다. 주체 및 행위요건 등을 구체화해 적용 범위를 축소하되 도덕적 해이는 예방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구나 대체입법을 보고 본인 행위가 저촉되는지 바로 판단할 수 있도록 예측 가능성도 높여야 할 것이다.
당정은 기업 경영에서 발생한 손해 등에 대한 민사책임을 강화하고 피해자가 실질적으로 구제받도록 증거개시(디스커버리) 제도, 집단소송제 도입 확대 등도 검토하기로 했다. 최근 여당이 강행한 상법 개정 결과 회사 임원 상대 소송이 급증할 우려가 큰 상황에서 현재 증권 분야에만 허용된 집단소송제를 확대한다면 기업 활력을 떨어뜨릴 게 뻔하다. 공론화를 거쳐 신중히 접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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