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한국 조폭 영화 향수 자극 ‘보스’
전형적인 상상서 벗어나 새로운 재미 안겨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그저 사고였을 뿐’
거장 감독들의 묵직한 존재감 느끼기 제격
애니메이션 영화 ‘연의 편지’ 가족 힐링 안겨
추석 밥상에 올라가는 갈비찜, 토란국, 오색 송편, 식혜처럼, 올해 추석 극장가는 그 어느 해보다 다채롭다. 한국과 미국, 이란을 대표하는 거장 감독들의 야심작부터 전통적 조폭 코미디, 무해한 애니메이션까지 장르와 결이 각기 다른 작품들이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이번 연휴가 유난히 긴 만큼, 연휴 후반부 개봉하는 작품들도 주목할 만하다.

◆각양각색 웃음의 향연
추석 극장가답게 코미디 장르 영화들이 대거 포진했지만, 그 면면은 확연히 다르다.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는 25년간 일한 회사에서 해고당한 주인공이 재취업을 하기 위해 잠재적 경쟁자들을 살해한다는 설정 자체가 쓴웃음을 자아내는 블랙 코미디다. 박 감독의 이전 작품들이 유머를 은근히 녹여냈다면, 이번 영화는 노골적으로 웃음을 유도하며 슬랩스틱 장면도 풍부하다. 자신이 누리던 윤택한 삶을 지키기 위해 발버둥 치다 도덕적 파산에 이르는 주인공 ‘만수’(이병헌)는 과연 한심한가, 측은한가, 아니면 우리와 닮았는가. 관객마다 다른 의견을 가질 것이며, 영화관을 나서는 순간부터 이야기꽃이 피어날 것이다.
‘보스’(3일 개봉)는 조직 폭력배 ‘식구파’의 차기 보스 선출을 앞두고, 보스가 되지 않으려 경쟁하는 조직원들의 필사적인 대결을 그린 코믹 액션 영화다. 유력 보스 후보 ‘순태’(조우진)는 중식 셰프로 성장하는 것이 꿈이고, ‘강표’(정경호)는 주먹질 대신 탱고에 빠져 있다. 보스 자리를 원하지만, 조직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판호’(박지환)는 그 곁에서 이를 간다. ‘보스’는 2000년대 한국 조폭 영화의 향수를 자극하면서도 전형성에서는 벗어나 새로운 웃음을 선사한다.
한국계 미국인 앤드루 안 감독의 ‘결혼 피로연’은 두 동성 커플의 가짜 결혼 계획에 ‘눈치 100단’ K할머니 ‘자영’(윤여정)이 끼어들며 벌어지는 코미디다. 이 작품은 대만계 미국인 이안 감독의 1993년 동명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퀴어 커플이 한국 할머니 앞에서 정체성을 숨기고 결혼하려는 설정은 여전히 유효한 웃음을 만들어낸다. 두 커플의 복잡하게 얽힌 ‘가족의 탄생’을 지켜보고 나면,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쯤 어느새 살며시 미소가 번진다.
◆거장의 귀환, 뜻깊은 시선
거장 감독들의 묵직한 존재감을 느끼고 싶다면 이 작품을 주목하자. 미국 거장 폴 토마스 앤더슨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1일 개봉)는 파시스트 경찰국가로 전락한 미국의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이민자들은 체포돼 구금 시설에 수용되고, 경찰과 군대는 냉혹한 권위주의 세력을 이루며, 기독교 민족주의자들의 비밀 조직이 주요 결정을 좌우한다. 반정부 게릴라들은 폭탄 테러와 은행 강도 등으로 체제 전복을 시도한다. 드라마, 스릴러, 블랙 코미디가 혼재된 이 작품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왕년의 게릴라 출신 중년 아버지’라는 새로운 얼굴을 선보인다.
같은 날 개봉하는 ‘그저 사고였을 뿐’은 이란 감독 자파르 파나히의 제78회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다. 부당하게 감옥에 수감돼 모진 고문을 겪은 후 일상으로 돌아간 소시민 ‘바히드’가 자신을 고문했던 남자를 의족 소리로 찾아내지만, 그의 존재를 의심하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오랜 시간 이란 정부의 정치 탄압을 받아온 파나히 감독의 수감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복수심에 사로잡힌 작품만은 아니다. 오히려 노동자, 신혼부부, 사진작가 등 다양한 고문 피해자들이 의견 차이로 갈등을 빚고, 그 갈등이 익살스러운 방식으로 해소되면서 유쾌한 웃음을 선사한다.

◆온 가족 따뜻한 힐링
어린 관객들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청정하고 무해한 12세 관람가 영화들도 준비되어 있다. 국산 애니메이션 영화 ‘연의 편지’(1일 개봉)는 교실 책상 서랍에서 발견한 의문의 편지를 계기로, 전학생 ‘소리’가 편지 속 단서를 따라 다음 편지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다. 동명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현실과 판타지를 넘나드는 감성적인 이야기를 담았다. 악뮤 이수현이 ‘소리’ 역으로 목소리 연기를 맡았으며, 주제가를 불러 청아한 목소리로 극의 감성을 한층 끌어올린다.
같은 날 개봉하는 뮤지컬 영화 ‘어쩌면 해피엔딩’은 미국 토니상 6관왕에 빛나는 동명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다. 대학로 무대에서 호흡을 맞췄던 배우 신주협과 강혜인이 각각 헬퍼봇 ‘올리버’와 호기심 가득한 ‘클레어’ 역을 맡았다. 두 로봇이 우연히 여행을 떠나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게 되는 이야기를 따뜻한 앙상블로 전한다.
◆연휴 끝자락, 극장으로 도피
긴 추석 연휴의 끝자락, 직장과 학교로 복귀를 앞두고 우울하다면 극장 나들이로 기분 전환을 하는 건 어떨까. 8일 개봉하는 ‘트론: 아레스’는 가상 세계에서 현실 세계로 넘어온 고도 지능 인공지능(AI) 병기 ‘아레스’로 인해 촉발된 통제 불가의 위기를 그린 액션 블록버스터다. 한국계 배우 그레타 리는 극 중 최고의 프로그래머 ‘이브 킴’ 역으로 출연해 강렬한 존재감을 선보인다.
애니메이션 영화 ‘나쁜계집애: 달려라 하니’(7일 개봉)는 1980년대 인기 TV 애니메이션 ‘달려라 하니’ IP를 기반으로 제작된 첫 극장판 애니메이션이다. 기존 시리즈와 달리, 하니가 아닌 라이벌 나애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눈길을 끈다. 원작의 3년 후를 배경으로, 전국을 제패한 육상 스타 나애리와 달리기 천재 소녀 하니가 고등학생이 되어 다시 만나 펼치는 경쟁과 성장을 그린 스포츠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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