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시리아 내전 등 난민 100만명 수용
”극우 정당 AfD 약진은 내가 퇴임한 이후”
정계 은퇴 후 정치적 발언을 최대한 자제하며 조용하게 지내는 앙겔라 메르켈(71) 전 독일 총리가 모처럼 입을 열었다. 독일에서 무서운 기세로 급성장하는 극우 정당 독일대안당(AfD)을 키워준 것이 바로 자신이라는 일각의 비판적 시선에 억울함을 토로한 것으로 풀이된다.

24일(현지시간) dpa 통신에 따르면 메르켈은 최근 독일의 유력 시사 주간지 ‘슈피겔’과 인터뷰를 했다. 이날 오후 공개된 인터뷰 일부 내용을 보면 메르켈은 “2015년의 난민 정책이 AfD가 부상하는 한 요인이 되었으나 그것이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보수 성향의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을 이끈 메르켈은 2005년 11월 총리에 올라 연거푸 4연임에 성공하며 2021년 12월까지 16년가량 재직했다. 그가 말한 ‘2015년 난민 정책’이란 당시 시리아 내전 등으로 발생한 중동 및 아프리카 지역의 난민 약 100만명을 독일이 수용하기로 한 과감한 결정을 뜻한다.
메르켈은 “내가 총리를 그만둘 당시 AfD의 지지율은 11∼12%였다”며 “우리 정부의 이민 정책이 AfD의 당세 확장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다른 원인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 ‘다른 원인’이 무엇인지에 관해선 언급을 회피했다고 dpa는 전했다.
메르켈이 물러날 당시 AfD는 10%대 초반의 지지율을 기록했으나 국회의원은 한 명도 보유하지 못한 원외 정당이었다. 그런데 올라프 숄츠 총리의 사회민주당(SPD)이 이끈 좌파 정부 임기(2021년 12월~2025년 5월) 동안 극우 정당의 한계를 넘어 강력한 정치 세력으로 발돋움했다. 올해 2월 하원 총선거에선 무려 152석을 얻으며 여당인 CDU·CSU 연합(208석)의 뒤를 잇는 원내 2당이 되었다. 요즘 각종 여론조사에서 AfD는 24∼27%의 지지율을 달리고 있으며, 일부 조사에선 지지율이 여당인 CDU·CSU 연합보다 높게 나타나기도 한다.

프리드리히 메르츠(69) 현 총리는 메르켈과 같은 CDU·CSU 연합에 속한 정치인이나 메르켈이 총리이던 시절 그와 사이가 무척 나빴다. 두 사람은 심지어 ‘정적’, ‘앙숙’으로 불리기도 했다. 굳이 따지자면 메르츠가 강성 보수, 메르켈은 온건·중도 보수에 가깝다고 하겠다.
다만 메르켈은 현 메르츠 내각의 국정 운영에 대해 후한 점수를 매겼다. 메르츠는 대외적으로 ‘강력한 독일’을 내세우고 국방력 강화에 열을 올리는 한편 이민 정책에선 상대적으로 엄격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메르켈은 인터뷰에서 “메르츠 총리 취임 후 독일이 다시금 유럽과 전 세계에서 자신만의 매력을 발산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을 보면서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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