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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D 의미·선후관계 불명확… ‘북핵 용인’ 초래 가능성” [李, 유엔총회 참석]

입력 : 2025-09-24 18:15:00 수정 : 2025-09-24 22:45:06
김병관·정지혜·이도형 기자, 뉴욕=박영준 기자, 워싱턴=홍주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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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한반도 평화 구상’ 분석

“비핵화 실현 전 관계 정상화 땐
北 핵 보유 인정하는 셈 될 수도
北 호응 확률 0%… 비현실적” 지적

위성락 “우선순위 있는 것 아냐
남북관계 신뢰 관계로 변경 의지”
정동영 “평화적 두 국가로” 밝혀

이재명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총회 연설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상으로 내놓은 ‘E.N.D 이니셔티브’의 핵심은 비핵화를 남북 교류나 북·미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삼지 않겠다는 것이다. 북한의 핵 능력 고도화와 완강한 태도로 단기간 내 비핵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을 반영한 접근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교류(Exchange)·관계 정상화(Normalization)·비핵화(Denuclearization)’ 각각의 의미와 선후관계가 명확하지 않아 자칫 북핵을 용인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20분간 연설 이재명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80차 유엔 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하는 모습이 대형 화면을 통해 송출되고 있다. 이 대통령은 20분간의 연설로 세계 최대 다자외교 무대인 유엔총회 데뷔전을 치렀다. 뉴욕=뉴시스

가장 큰 쟁점은 END 구상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관계 정상화와 비핵화 목표 중 무엇이 단계적으로 앞서냐는 점이다. 비핵화 실현 이전에 관계 정상화가 추진된다면, 북한의 핵 보유를 결과적으로 인정하는 셈이 될 수 있어서다. 특히 관계 정상화가 북·미 관계 정상화까지 포함하는 표현이라면 북핵 용인 우려는 더욱 커진다. 북·미 관계 정상화는 대북 제재 해제와 북·미 수교를 뜻하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연설에서 “북·미 사이를 비롯한 국제사회와의 관계 정상화 노력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협력하겠다”고 언급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미국 뉴욕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END의) 세 요소 간 우선순위나 선후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대통령은 이 원칙들을 중심으로 한 포괄적 접근법으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목표를 밝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선언에서도 ‘북·미의 새로운 관계 수립’과 ‘평화체제 구축’, ‘비핵화’가 1∼3번 번호를 달고 병렬로 배치됐지만, 이행 순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더라도 관계 정상화와 비핵화 각 세부 단계 간 선후관계를 명확히 할 필요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장은 END에 대해 “관계 개선 이후에도 북한은 비핵화할 의지가 전혀 없는 상황이 된다면, 한국은 북핵을 이고 살아야 하는 기간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위험성이 내포돼 있다”고 했다.

 

관계 정상화가 의미하는 바도 논쟁 지점이다. 외교 문법에서 관계 정상화는 적대하던 두 국가가 수교를 맺는 것을 뜻한다. 이 대통령이 이를 남북관계 목표로 제시한 것이라면 북한의 두 국가론을 한국도 수용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국제사회에 줄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이날 대통령실과 정부가 각기 다른 설명을 내놓으며 혼선을 노출하기도 했다. 위 실장은 남북 적대 관계를 신뢰 관계로 바꾸겠다는 뜻이라며 “두 국가를 지지하거나 인정하는 입장에 서 있지 않다”고 했지만,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24일 한 세미나 축사에서 “적대적 두 국가론을 평화적 두 국가로 전환해야 한다”면서 “남북관계 정상화 조치를 일관되게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평화적 두 국가론은 결국 두 국가 관계를 수용한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기초한 통일 정책을 추진하게 돼 있는 헌법에 정면 배치되는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위 실장과 정 장관의 이견을 두고 동맹파와 자주파 간 엇박자가 되풀이되고 있다는 시선도 있다.

최고인민회의서 연설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평양=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END가 남북 교류·협력 확대를 첫 단계로 삼고 있는 점을 두고 비현실적 구상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23년 12월 적대적 두 국가론을 선언한 이후 최근까지도 “한국과 그 무엇도 함께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는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 원장은 “북한이 (END에) 호응할 가능성은 0%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이 대통령의 유엔 연설에 더불어민주당은 “대한민국이 민주주의와 평화, 경제 협력의 중심국으로 자리매김하는 출발점”이라고 치켜세운 반면, 국민의힘은 “장밋빛 환상만이 가득하다”고 깎아내렸다.

 

이 대통령은 대화에 적극적이지만 북한이 상대로 지목한 미국은 일단 신중 모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번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로이터통신은 “지금 당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지도자(김 위원장)를 만날 계획이 없다”고 보도했다.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총회에 참석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FP연합뉴스

한편 외교부는 전날 한·미·일 외교장관회의 공동성명의 ‘북한 비핵화’ 문구를 보도자료에서 ‘한반도 비핵화’로 표현한 데 대해 “‘북한 비핵화’와 같은 의미로 쓴 것”이라고 이날 확인했다. 이를 두고 북핵 해법을 둘러싼 한국과 미·일 간 시각차가 반영된 게 아니냐는 의문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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